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작은 짐승/신석정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4. 3. 17:47
728x90

작은 짐승/신석정

 


'난(蘭)' 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난' 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난' 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 가는
붉은 산모와 흰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 빛 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즈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난' 이의 머리칼레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난' 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에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디순한 짐승이었다.

 

 

《문장》7호 (1939. 8) 수록.
-시선집 『한국의 명시』김희보 엮음
 <최남선에서 기형도까지 1005편 총수록>
2010. 03.31 / 오후 21시 3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