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물마름
주으린 새무리는 마른 나무의.
해지는 가지에서 재갈이던 때.
온종일 흐르던 물 그도 곤(昆)하여
놀지는 골짜기에 목이 매던 때.
그 누가 알았으랴 한쪽 구름도
걸려서 흐느끼는 외로운 영(嶺)을
숨차게 올라서는 여윈 길손이
달고 쓴 맛이라면 다 겪은 줄을.
그곳이 어디드냐 남이장군(南怡將軍)이
말 먹여 물 찌었던 푸른 강(江)물이
지금에 다시 흘러 뚝을 넘치는
천백리(千百里) 두만강(豆滿江)이 예서 백십리(百十里).
무산(茂山)의 고개가 예가 아니냐
누구나 예로부터 의(義)를 위하여
싸우나 못 이기면 몸을 숨겨서
한때의 못난이가 되는 법이라.
그 누가 생각하랴 삼백년래(三百年來)에
참아 받지 다 못할 한(限)과 모욕(侮辱)을
못 이겨 칼을 잡고 일어섰다가
인력(人力)의 다함에서 쓰러진 줄을.
부러진 대쪽으로 활을 메우고
녹슬은 호미쇠로 칼을 별러서
도둑(毒)된 삼천리(三千里)에 북을 울리며
정의(正意)의 기(旗)를 들던 그 사람이여.
그 누가 기억(記憶)하랴 다복동(多福洞)에서
피물든 옷을 입고 외치던 일을
정주성(定州城) 하룻밤의 지는 달빛에
애그친 그 가슴이 숫기 된 줄을.
물위의 뜬 마름에 아침 이슬을
불붙는 산(山)마루에 피었던 꽃을
지금에 우러르며 나는 우노라
이루며 못 이룸에 박(薄)한 이름을.
08.0206/아침 9시 14분
▷ 재갈이던 : 재깔대던. 재깔거리던. 재잘거리던. 평북방언.
▷ 메던 : [동] 메다. 막히다.
▷ 남이장군(南怡將軍) : 조선시대의 장군(1441-68) 17세에 무과(武科)에 장원 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였고, 28세에 병조판서가 되었다. 유자광(柳子光)의 모함을 받아 주살(誅殺)되었다.
▷ 찌었던 : [동] 찌다. 줄어들다.
▷ 무산(茂山) : 함경북도 무산군의 군청 소재지. 두만강을 넘으면 중국 간도지방에 다다르는 국경의 요충지대.
▷ 별러서 : [동] 벼르다. 무딘 연장의 날을 갈아 날카롭게 만듬.
▷ 도독(?莞?)된 : [명] 씀바귀의 독. 심하게 해독(害毒)된.
▷ 다복동(多福洞) : 홍경래(洪景來:1780-1812)가 거사(擧事)의 본거지로 삼았던 가산(嘉山)의 동(洞) 이름.
▷ 정주성(定州城) : 평안북도 남서해안에 위치한 정주군 내의 성(城). 1881년(순조 11) 12월 2천여 병력을 동원하여 평서대원수(平西大元帥)를 자칭하며 난을 일으켰던 홍경래가 정주성에서 최후를 마쳤다.
▷ 애그친 : 애그친. 애(哀)와 그치다의 결합형.
▷ 숫기 : [명] 숯. 함경방언
▷ 우러르며 : [동] 우러르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다.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 김소월의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다가 변(變)하여 뽕나무밭 된다고 (0) | 2010.04.08 |
---|---|
바다 (0) | 2010.04.08 |
묵년(默念) (0) | 2010.04.06 |
무심(無心) (0) | 2010.04.06 |
무신(無信) (0) | 2010.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