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김소월의 시(詩)

팔벼개 노래調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5. 6.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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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벼개 노래調


자, 각지(各地)서 오신 많은 씨름꾼 여러분, 이제 대중소(大中小) 차서(次序)대로, 웅장쾌활(雄壯快活)한 재주를 각기 자랑하여 주십시오. 너무, 아릿자릿한 판에 구경(求景)하시던 분네들 바지에 오줌 누지 마십시오. 하하, 무투리 없는 말대로 개회사(開會辭)라고 두어마디 여쭈었드니, 혹시 잘못된 말이 있어도 씨름판 인사(人事)냐고, 책망은 말아 주십시오.이러구러 제돐이 왔구나. 지난 갑자년(甲子年) 가을이러라. 내가 일찍이 일이 있어 영변읍(寧邊邑)에 갔을 때 내 성벽(性癖)에 맞추어 성내(城內)치고도 어떤 외따른 집을 찾아 묵고 있으려니 그 곳에 한낱 친지(親知)도 없는지라, 할 수 없이 밤이면 추야장(秋夜長) 나그네 방(房) 찬자리에 갇히어 마주보나니 잦는듯한 등(燈)불이 그물러질까 겁나고, 하느니 생각은 근심되어 이리 뒤적 저리 뒤적 잠 못들어 할 제, 그 쓸쓸한 정경(情境)이 실로 견디어 지내기 어려웠을레라. 다만 때때로 시멋없이 그늘진 뜰가를 혼자 두루 거닐고는 할 뿐이었노라.

그렇게 지내기를 며칠에 하루는 때도 짙어가는 초밤, 어둑한 네거리 잠자는 집들은 인기(人氣)가 끊겼고 초년(初年)의 갈구리달 재 너머 걸렸으매 다만 이따금씩 지내는 한 두사람의 발자취 소리가 고요한 골목길 시커먼 밤빛을 드둘출 뿐이러니 문득 격장(隔墻)에 가만히 부르는 노래 노래 청원처절(淸怨凄絶)하여 사뭇 오는 찬 서리 밤빛을 재촉하는 듯, 고요히 귀를 기울이매 그 가사(歌詞)됨이 새롭고도 질박(質朴)함은 이른 봄의 지새는 새벽 적막(寂寞)한 상두(狀頭)의 그늘진 화병(花甁)에 분분(芬芬)하는 홍매(紅梅)꽃 한 가지일시 분명(分明)하고 율조(律調)의 고저(高低)와 단속(斷續)에 따르는 풍부(豊富)한 풍정(風情)은 마치 천석(泉石)의 우멍구멍한 산(山)길을 허방지방 오르내리는 듯한 감(感)이 바이 없지 않은지라, 꽤 사정(事情)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윽한 눈물에 옷깃 젖음을 깨닫지 못하게 하였을레라.

이윽고 그 한밤은 더더구나 빨리도 자취없이 잃어진 그 노래의 여운(餘韻)이 외로운 벼개머리 귀밑을 울리는 듯하여 본래(本來)부터 꿈많은 선잠도 슬픔에 지치도록 밤이 밝아 먼동이 훤하게 눈터올 때에야 비로소 고달픈 내 눈을 잠시 붙였었노라.

두어 열흘 동안에 그 노래 주인(主人)과 숙면(熟面)을 이루니 금년(今年)으로 하면 스물 하나, 당년에 갓스물, 몸은 기생(妓生)이었을레라.

하루는 그 기녀(妓女) 저녁에 찾아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밤 보내던 끝에 말이 자기(自己) 신세(新勢)에 미침에 잠간 낯을 붉히고 하는 말이, 내 고향(故鄕)은 진주(晉州)요, 아버지는 정신(情神)없는 사람되어 간 곳을 모르고, 그러노라니 제 나이가 열세살에 어머니가 제 몸을 어떤 호남행상(湖南行商)에게 팔아 당신의 후살의 밑천을 삼으니 그로부터 뿌리 없는 한 몸이 청루(靑樓)에 영락(零落)하여 동표서박(東漂西泊)할 제 얼울 없는 종적이 남(南)으로 문사(門司), 향항(香港)이며, 북(北)으로 대련(大連), 천진(天津)에 화조월석(花朝月夕)의 눈물 궂은 생애(生涯)가 예까지 굴러 온 지도 이미 반년(半年) 가까이 되었노라 하며 하던 말끝을 미처 거두지 못하고 걷잡지 못할 서름에 엎드러져 느껴가며 울었을러니, 이 마치 길이 자 한치 날카로운 칼로 사나이 몸의 아홉구비 굵은 심상(心腸)을 끊고 찌르는 애닯은 뜬 세상(世相)일의 한가지 못보기라고 할런가.

있다가 이윽고 밤이 깊어 돌아갈 즈음에 다시 이르되 기명(妓名)은 채란이로라 하였더니라.

이 팔벼개 노래조(調)는 채란이가 부르던 노래니 내가 영변(寧邊)을 떠날 임시(臨時)하여 빌어 그의 친수(親手)로써 기록(記錄)하여 가지고 돌아왔음이라. 무슨 내가 이 노래를 가져 감(敢)히 제대방가(諸大方家)의 시적(詩的) 안목(眼目)을 욕(辱)되게 하고자 함도 아닐진댄 하물며 이맛 정성위음(鄭聲衛音)의 현란스러움으로써 예술(藝術)의 신엄(神嚴)한 관전(官展)에야 하마 그 문전(門前)에 첫발걸음을 건들어 놓아보고자 하는 참람(僭濫)한 의사(意思)를 어찌 바늘만큼인들 염두(念頭)에 둘 리(理) 있으리오마는 역시(亦是)이 노래 야비(野卑)한 세속(世俗)의 부경(浮輕)한 일단(一端)을 칭도(稱道)함에 지나지 못한다는 비난(非難)에 마출지라도 나 또한 구태여 그에 대(對)한 둔사(遁辭)도 하지 아니하려니와, 그 이상(以上) 무엇이든지 사양없이 받으려 하나니, 다만 지금(只今)도 매양 내 잠 아니오는 긴 밤에 와 나 홀로 거닐으는 감도는 들길에서 가만히 이 노래를 읊으면 스스로 금(禁)치 못할 가련(可憐)한 느낌이 있음을 취(取)하였을 뿐이라 이에 그대로 내어버리랴 버리지 못하고 이 노래를 세상(世上)에 전(傳)하노니 지금(只今) 이 자리에 지내간 그 옛날 일을 다시 한번 끌어내어 생각하지 아니치 못하여 하노라.

첫날에 길동무
만나기 쉬운가
가다가 만나서
길동무 되지요.

날끊다 말어라
가장(家長)님만 님이랴
오다가다 만나도
정붙으면 님이지.

화문석(花紋席) 돗자리
놋촉대(燭臺) 그늘엔
칠십년(七十年) 고락(苦樂)을
다짐둔 팔벼개.

드나는 곁방의
미닫이 소리라
우리는 하루밤
빌어얻은 팔벼개.

조선(朝鮮)의 강산(江山)아
네가 그리 좁더냐
삼천리(三千里) 서도(西道)를
끝까지 왔노라.

삼천리(三千里) 서도(西道)를
내가 여기 왜 왔나
남포(南浦)의 사공님
날 실어다 주었소.

집 뒷산(山) 솔밭에
버섯 따던 동무야
어느 뉘집 가문(家門)에
시집 가서 사느냐.

영남(嶺南)의 진주(晉州)는
자라난 내 고향(故鄕)
부모(父母)없는
고향(故鄕)이라우.

오늘은 하루밤
단잠의 팔벼개
내일(來日)은 상사(想思)의
거문고 벼개라.

첫닭아 꼬꾸요
목놓지 말아라
품 속에 있던 님
길차비 차릴라.

두루두로 살펴도
금강(金剛) 단발령(斷髮令)
고개길도 없는몸
나는 어찌 하라우.

영남(嶺南)의 진주(晉州)는
자라난 내 고향(故鄕)
돌아갈 고향(故鄕)은
우리 님의 팔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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