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외국시♠시를 읽어야 할 시간

장갑/실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6. 11.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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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실러

 


사자의 광장을 앞에 두고
프란츠 왕은 자리에 앉아
투기를 기다린다.
주위에는 귀족들이 줄지어 있고
높은 발코니에는 귀부인들이
꽃과 고움을 다투고 있다.


이윽고 왕이 손 들어 신호하자
커다란 우리의 문이 열리며
한 마리 사자가 나타났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밖에 나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더니,
커다란 입을 한껏 벌리고
목덜미 털을 부르르 털고난 뒤
길게 사지를 쭉 뻗어
그 자리에 몸을 눕히었다.


왕이 새로이 신호를 내리자
재빨리 둘째 우리의 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무서운 기세로 호랑이 한 마리가 뛰어 나왔다.
사자가 눈앞에 있음을 보고
커다란 소리로 으르렁거리며
꼬리를 흔들면서
둥그런 동그라미를 그리고
불타는 혓바닥을 내민 채,
무시무시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사자 주위를 빙빙 돌더니,
울름소리 계속 멈추지 않고
사자 옆에 몸을 눕혔다.


왕은 세 번째 신호를 내렸다.
우리의 문이 두 군데 열리면서
두 마리 표범이 함께 뛰어나왔다.
표범들은 살기가 넘쳐 흘러
호랑이를 향하여 달려들었고,
호랑이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표범을 붙들자,
사자가 위엄스러운 모습으로 일어나
울부짖었다 - 모든 것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원을 이루면서
살기를 품은 채
사나운 맹수들은 자리에 누웠다.


그때 발코니 윗자리 한 구석에서
장갑 한 짝이 아름다운 손에서 떠나
호랑이와 사자가 앉아 있는
한가운데 떨어졌다.
쿠니군데 공주는 비웃는 듯이
기사 데롤게스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기사님 당신의 사랑이 열렬하고
늘 내게 맹세한 말씀이 정말이라면
저 장갑을 주워 줄 수 있겠지요.”


기사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힘찬 걸음으로 투기장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맹수들이 앉아 있는 한가운데서
겁없이 장갑을 주워 들었다.
놀람과 몸서리쳐짐을 느끼면서
모든 기사와 귀부인들은 그것을 보았다.
태연히 장갑을 가지고 돌아오는 그에게
모든 사람들은 칭송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중에도 참다운 행복을 약속하는
부드러운 사랑의 눈동자로써
쿠니군데 공주는 그를 맞이하였다.
기사는 장갑을 공주의 얼굴에 집어던지며,
“공주여, 나는 감사의 말을 바라지 않소.”
기사는 그 자리에서 공주를 버렸다.

 

 


-시선집 『世界의 名詩』김희보 편저
2009-01-07 / 아침 08 :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