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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함민복-부부/문정희-부부/오창렬-부부(夫婦)/김소월-부부/김석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6. 3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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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다』이문재 엮음. 이레 . 2007
2010-06-30 / 1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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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문정희

 


부부란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둘이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 꽃만 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어디 나머지를 바를 만한 곳이 없나 찾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어 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달에 너무 많이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문득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내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보는 그런 사이이다

 

부부란 서로를 묶는 것이 쇠사슬인지
거미줄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묶여 있는 것만이 확실하다고 느끼며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이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내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보는 그런 사이이다  

 


- 계간 『문학수첩』 2008년 가을호
29190-96030 / 1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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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오창렬

 

 

늘 허투루 나지 않은 고향 길

장에 나갔다 오는지 보퉁이를 든 부부가

이차선 도로의 양끝을 팽팽하게 잡고 걷는다

이차로 간격의 지나친 내외가

도시 사는 내 눈에는 한 없이 촌스러웠다

속절없는 촌스러움 한참 웃다가

인도가 없는 탓인지도 모르지

사거니 팔거니 말싸움을 했을지도 몰라

나는 또 혼자 생각에 자동차를 세웠다

차가 드물어 한가한 시골길은

늙어 가는 부부는 여전히 한쪽씩 맡아 걷는다

뒤돌아봄도 없는 걸음이 경행經行 같아서

말싸움 같은 것은 흔적도 없다

남편이 한쪽을 맡고 또 한쪽은 아내가 맡아

탓도 상처도 밟아 가는 양 날개

안팎으로 침묵과 위로가 나란하다

이런저런 궁리를 따라 길이 구불거리고

묵묵한 동행은 멀리 언덕을 넘는다

소실점 가까이 한 점 된 부부

언덕도 힘들지 않다


 

 

―안도현 엮음『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이가서, 2006)

다음카페 너에게편지를 : 조회 173 | 2010.05.21. 22:14 http://cafe.daum.net/spdprpvuswlfmf/1lRo/2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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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夫婦)

 

김소월


오오 안해여, 나의 사랑!
하늘이 묶어준 짝이라고
믿고 살음이 마땅치 아니한가.
아직 다시 그러랴, 안 그러랴?
이상하고 별나운 사람의 맘,
저 몰라라, 참인지, 거짓인지?
정분(情分)으로 얽은 딴 두 몸이라면,
서로 어그점인들 또 있으랴.
한평생(限平生)이라도 반백년(半白年)
못 사는 이 인생(人生)에!
연분(緣分)의 긴 실이 그 무엇이랴?
나는 말하려노라, 아무려나,
죽어서도 한 곳에 묻히더라.


08.0206/ 저녁 6시 27분
▷ 묶어준 : [동] 묶다(관계를 맺어주다)의 활용형.
▷ 별나운 : [형] 별납다(보통 것과 매우 다르다)의 활용형.
▷ 어그점인들 : '어긋난 점인들'을 줄여서 표현한 말.
▷ 한평생(限平生) : [명] 일평생.
▷ 연분(緣分)의 긴 실 : 사람들 사이에서 맺어지는 깊은 관계. 하늘이 베푼 인연. 전설상의 노인인 월하노인(月下老人)이 남녀의 인연을 맺어주는 실. 월하빙인(月下氷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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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김석

 


비 오는 날
길을 걸으며 알았다


구멍이 난 신발
밑창 사이로 물은 스며들고
젖은 양말 속
발가락이 말랑말랑하다


비가 고인 물 덤벙 지나
바닥을 뚫고
올라온 질퍽질퍽한 물과
딱딱한 발이
하나가 되어 촉촉하다


길을 걸으며
구멍이 난 줄 모르고 산
날들의 밑창은 새고
서로가 젖어 있다는 것을

 
눈물은 상처를 적지고
상처는 눈물 속에 스며들어
하나가 된다는 것을


비 오는 날
길을 걸으며 나는 알았다
 
 

-『대구문학』(2012. 1·2월호)
2012-02-17 / 금요일, 13시 0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