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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기일식/서안나-입술/허수경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8. 1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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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기일식/서안나

 

 

  한 입술이 한 입술과 겹쳐진다, 물뱀처럼 캄캄하다, 한 남자의 입술이 한 여자의 캄캄한 사랑을 누르고 있다


  맞은편의, 불붙는, 더듬거리는, 건너가는, 멈추는, 걸어가다 멈추는, 뼈를 감춘, 입술만 남은, 내가 잡지 못하는, 뒤돌아서는, 등 뒤에서 깨무는, 피처럼 붉은, 당신이란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갔을 때 아름다운 여자는 조금씩 사라졌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위해 눈과 코를 지우고
  형용사처럼 혀를 버리는 것
  사라지는 여자의 눈썹이 서늘하다
  어느 쪽이 슬픔의 정면인지
  하루가 백년 같은 뜨거운 이마


  당신과 내가 삼켜버린 낡은 입술들,
  한 입술과 한 입술이 쌓인다,
  고요하다 입술들은,
  울음과 울음이 겹쳐진다,
  캄캄하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8년 11-12월호

2010-08-14 / 아침 8시 36분

 

 


입술/허수경

 


너의 입술이 나에게로 왔다
너는 세기말이라고, 했다


나의 입술이 네 볼 언저리를 지나갔다
나는 세기초라고, 했다


그때 우리의 입김이 우리를 흐렸다


너의 입술이 내 눈썹을 지나가자
하얀 당나귀 한 마리가 설원을 걷고 있었다


나의 입술이 너의 귀 언저리를 지나가자
검은 당나귀 한 마리가 석유밭을 걷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거리의 모든 쓰레기를 몰고 가는 바람


너의 입술이 내 가슴에서 멈추었다
나의 입술이 네 심장에서 멈추었다


너의 입술이 내 여성을 지나갔다
나의 입술이 네 남성을 지나갔다


그때 우리의 성은 얼어붙었다


말하지 않았다
입술만 있었다

 


 
-『현대문학』 2005년 11월호
2010-08-14 / 아침 8시 42분

 


남녀의 사랑을 표현한 육감적인 시.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던가 유행가 가사를 불러올 것도 없이 진득한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