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기일식/서안나
한 입술이 한 입술과 겹쳐진다, 물뱀처럼 캄캄하다, 한 남자의 입술이 한 여자의 캄캄한 사랑을 누르고 있다
맞은편의, 불붙는, 더듬거리는, 건너가는, 멈추는, 걸어가다 멈추는, 뼈를 감춘, 입술만 남은, 내가 잡지 못하는, 뒤돌아서는, 등 뒤에서 깨무는, 피처럼 붉은, 당신이란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갔을 때 아름다운 여자는 조금씩 사라졌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위해 눈과 코를 지우고
형용사처럼 혀를 버리는 것
사라지는 여자의 눈썹이 서늘하다
어느 쪽이 슬픔의 정면인지
하루가 백년 같은 뜨거운 이마
당신과 내가 삼켜버린 낡은 입술들,
한 입술과 한 입술이 쌓인다,
고요하다 입술들은,
울음과 울음이 겹쳐진다,
캄캄하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8년 11-12월호
2010-08-14 / 아침 8시 36분
황홀하기 그지없는 광활한 우주의 두 입술이다.
입술/허수경
너의 입술이 나에게로 왔다
너는 세기말이라고, 했다
나의 입술이 네 볼 언저리를 지나갔다
나는 세기초라고, 했다
그때 우리의 입김이 우리를 흐렸다
너의 입술이 내 눈썹을 지나가자
하얀 당나귀 한 마리가 설원을 걷고 있었다
나의 입술이 너의 귀 언저리를 지나가자
검은 당나귀 한 마리가 석유밭을 걷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거리의 모든 쓰레기를 몰고 가는 바람
너의 입술이 내 가슴에서 멈추었다
나의 입술이 네 심장에서 멈추었다
너의 입술이 내 여성을 지나갔다
나의 입술이 네 남성을 지나갔다
그때 우리의 성은 얼어붙었다
말하지 않았다
입술만 있었다
-『현대문학』 2005년 11월호
2010-08-14 / 아침 8시 42분
남녀의 사랑을 표현한 육감적인 시.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던가 유행가 가사를 불러올 것도 없이 진득한 시이다.
그럼 아래 시는 어떠한가.
젖이라는 이름의 좆/김민정
네게 좆이 있다면
내겐 젖이 있다
그러니 과시하지 마라
유치하다면
시작은 다 너로부터 비롯함이니
어쨌거나 우리 쥐면 한 손이라는 공통점
어쨌거나 우리 빨면 한 입이라는 공통점
어쨌거나 우리 썰면 한 접시라는 공통점
섹스를 나눈 뒤
등은 맞대고 잠든 우리
저마다의 심장을 향해 도넛처럼
완전 도-우-넛처럼 잔뜩 오그라들 때
거기 침대 위 큼지막하게 던져진
두 짝의 가슴
두 짝의 불알
어머 착해
-시집『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문학과지성사. 2009)
2010-08-14 / 14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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