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개기일식/서안나-입술/허수경-젖이라는 이름의 좆/김민정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8. 14. 14:17
728x90

개기일식/서안나

 


  한 입술이 한 입술과 겹쳐진다, 물뱀처럼 캄캄하다, 한 남자의 입술이 한 여자의 캄캄한 사랑을 누르고 있다


  맞은편의, 불붙는, 더듬거리는, 건너가는, 멈추는, 걸어가다 멈추는, 뼈를 감춘, 입술만 남은, 내가 잡지 못하는, 뒤돌아서는, 등 뒤에서 깨무는, 피처럼 붉은, 당신이란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갔을 때 아름다운 여자는 조금씩 사라졌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위해 눈과 코를 지우고
  형용사처럼 혀를 버리는 것
  사라지는 여자의 눈썹이 서늘하다
  어느 쪽이 슬픔의 정면인지
  하루가 백년 같은 뜨거운 이마


  당신과 내가 삼켜버린 낡은 입술들,
  한 입술과 한 입술이 쌓인다,
  고요하다 입술들은,
  울음과 울음이 겹쳐진다,
  캄캄하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8년 11-12월호
2010-08-14 / 아침 8시 36분

 

황홀하기 그지없는 광활한 우주의 두 입술이다.

 

 

 


입술/허수경

 

 


너의 입술이 나에게로 왔다
너는 세기말이라고, 했다

나의 입술이 네 볼 언저리를 지나갔다
나는 세기초라고, 했다

그때 우리의 입김이 우리를 흐렸다

너의 입술이 내 눈썹을 지나가자
하얀 당나귀 한 마리가 설원을 걷고 있었다

나의 입술이 너의 귀 언저리를 지나가자
검은 당나귀 한 마리가 석유밭을 걷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거리의 모든 쓰레기를 몰고 가는 바람

너의 입술이 내 가슴에서 멈추었다
나의 입술이 네 심장에서 멈추었다

너의 입술이 내 여성을 지나갔다
나의 입술이 네 남성을 지나갔다

그때 우리의 성은 얼어붙었다

말하지 않았다
입술만 있었다

 


 
-『현대문학』 2005년 11월호
2010-08-14 / 아침 8시 42분

 

남녀의 사랑을 표현한 육감적인 시.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던가 유행가 가사를 불러올 것도 없이 진득한 시이다.


그럼 아래 시는 어떠한가.

 

 


젖이라는 이름의 좆/김민정

 

 

네게 좆이 있다면
내겐 젖이 있다
그러니 과시하지 마라


유치하다면
시작은 다 너로부터 비롯함이니


어쨌거나 우리 쥐면 한 손이라는 공통점
어쨌거나 우리 빨면 한 입이라는 공통점
어쨌거나 우리 썰면 한 접시라는 공통점


섹스를 나눈 뒤
등은 맞대고 잠든 우리
저마다의 심장을 향해 도넛처럼
완전 도-우-넛처럼 잔뜩 오그라들 때
거기 침대 위 큼지막하게 던져진


두 짝의 가슴
두 짝의 불알
 

어머 착해

 


-시집『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문학과지성사. 2009)
2010-08-14 / 14시 0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