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행방불명 되신 하느님께 보내는 출소장/고정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9. 7.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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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 되신 하느님께 보내는 출소장/고정희

 

 


  무릇 너희가 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에서 나온
말씀으로 거듭나리라, 수수께끼를 주신 하느님, 우리
가 영에서 나온 말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미사일 핵
무기고에서 나오는 살인능력 보유자와 우리들 밥줄을
틀어진 자를 구세주로 받드는 오늘날 이 세상 절반의
살겁과 기아선상의 대하여 어떤 비상정책을 수립하고
계신지요
  한나절을 일한 자나 하루 종일 일한 자나 똑같이 최
대 생계비를 지불함이 하늘나라 은총이다 선포하셨건
만, 반평생을 뼈빠지게 일한 자나 일년으로 혼빠지게 일
한 자나 똑같이 임금을 채불당한 채 밀린 품삯 받으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다국적기업 뒤꽁무니 쫓아간 우리
딸들이 임금 대신 똥물을 뒤집어쓰고 울부짖을 때 당
신의 말씀은 침묵했습니다
  온갖 제국주의 음모와 죽음의 쓰레기들이 자유와 정
의와 평화라는 식품 상표를 달고, 당신의 이름으로,
배고픈 나라의 백성을 향하여 무한대로 수출되고 있는
작금에도 당신의 말씀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아아 살인병기를 자처하는 다국적군이 실로 처참하
고 참혹하게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땅을 피바다로 싹쓸
이할 때도 당신의 말씀은 침묵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
까 “미국은 새로운 전쟁시대의 첫 승리자이다”부시가
오만불손하게 음성을 높일 때, 그리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스무 번씩 기립박수를 칠 때도 당신은
온전히 침묵했습니다

 

  대답해 주시지요 하느님, 당신은 지금 어디 계신지
요 세상이 너무 재미없어 쟈니 윤의 쇼 프로그램에서
미국식 웃는 법을 익히고 계십니까, 아니면 힘이 무지
무지 센 나라의 현대판 노예 수출선에 팔려가고 계십
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용용 죽겠지 꼭꼭 숨어라 목하
종말론이 생산중인 페르시아 만이나 바빌론의 무기창
고에서 재고를 헤아리는 무기 상인들을 격려하고 계십
니까? 아니아니 당신의 이름을 교수형에 처한 공산대
륙이나 모스끄바 뻬레스뜨로이까 전철 속에 앉아 이단
의 풍물을 감상하고 계십니까? 대답해 주시지요 하느
님, 당신을 교회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을 교
회의 창고부터 열어야 합니다

 

 이 곤궁한 시대에
 교회는 실로 너무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교회는 너무 많은 재물을 가졌고 너무 많은 거짓을 가졌고
 너무 많은 보태기 십자가를 가졌고
 너무 많은 권위와 너무 많은 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파당과 너무 많은 미움과
 너무 많은 철조망과 벽을 가졌습니다
 빼앗긴 백성들이 갖지 못한 것을 교회는 다 가졌습니다
 잘못된 권력이 가진 것을 교회는 다 가졌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벙어리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장님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귀머거리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오직 침묵으로 번창합니다
 의인의 변절을 탓하던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
 옳은 자들이 당신의 이름을 더 이상 부르지 않는 시대가 오기 전에
 하느님, 가버나움을 후려치듯 후려지듯
 교회를 옮음의 땅으로 되돌려
 참회의 강물이 온갖 살겁의 무기들을 휩쓸어가게 하소서
 새로운 참소리 태어나게 하소서
 거기에 창세기의 빛이 있사옵니다 아멘......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고정희 유고시집 창비시선 104

 

 

 


실화인지는 모르지만 한 부산여대생이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로 애인과 함께 지리산 칠선골에 몸을 던졌다고 하는데 그 후부터 칠선골에서는 유능하고 아까운 인재들이 조난이나 실족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계속 실족사가 일어나니까 원혼을 달래려고 무속인을 불러서 재를 올리고 난 후 실족이나 조난사가 없어졌다고 하는데 그전인지 그후인지는 모르나 고정희 시인도 뱀사골에서 폭우로 인해 실족사를 했다고 합니다.

 

육천 매듭 풀려나간 모세혈관에서 철철 넘치는 샘물을 먹고 만개한 오랑캐꽃 웃음소리를 들으며 구름처럼 바람처럼이라는 싯귀처럼 승천한 시인, 지리산을 사랑하여 지리산 연작시를 쓰고 현충일이 되면 매년 연중행사처럼 지리산을 찾았던 시인이 수많은 희생자를 남기고 고착상태에 빠져있는 이라크 전쟁을 보았다면 어떤 글로 심정을 피력했을까요. 독실한 기독교도인 고정희 시인은 성경대로 되지 않는 세상의 부조리에 많은 절망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 세상에 없는 고정희 시인이 이 시를 쓸 때는 아버지 부시가 다국적군을 결성하여 이라크를 침공했었고 그 13년 뒤 03년 아들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이라크라는 나라는 부시의 부자와 전생에 어떤 악연을 가졌기에 이토록 참혹한 일이 부자간에 대를 이어 일어나게 만들었을까요. 

 

물리적으로 땅덩어리만 점령하고 이겼다고 종전선언을 했지만 이라크 국민은 승복을 하지 않았고 지금도 전쟁은 계속중입니다. 지금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는 전쟁후윳증으로 엄청난 경제난으로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그 모두가 전쟁탓은 아니겠지만 부시가 믿는 하느님은 그동안 돈이 너무 많았었나 봅니다. 돈이 없었다면 무기도 살 수 없었을텐데.

<정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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