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의 저작권에 대해 말씀드리자면/손택수
구름 5% 먼지 3.5% 나무 20% 논 10%
강 10% 새 5%바람 8% 나비 2.55% 먼지 1%
돌 15% 노을 1.99% 낮잠 11% 달 2%
(여기에 끼지 못한 당나귀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함)
(아차, 지렁이도 있음)
제게도 저작권을 묻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작가의 저작권은 물론이고 출판사의 출판권까지 낼 용의가 있다고도 합니다. 시를 가지고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한 어느 방송국 피디는 대놓고 사용료 흥정을 하기까지 했답니다 그때 제 가슴이 얼마나 벌렁거렸는지 모르실 겁니다 불로소득이라도 생긴 양 한참을 달떠 있었지요 그럴 때마다 참 염치가 없습니다 사실 제 시에 가장 많이 나오는 게 나무와 새인데 그들에게 저는 한 번도 출연료를 지불한 적이 없습니다 마땅히 공동저자라고 해야 할 구름과 바람과 노을의 동의를 한 번도 구한 적 없이 매번 제 이름으로 뻔뻔스럽게 책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작자미상인 풀과 수많은 무명씨인 풀벌레들의 노래들을 받아쓰면서 초청 강의도 다니고 시 낭송 같은 데도 빠지지 않고 다닙니다 오늘은 세 번째 시집 계약서를 쓰러 가는 날 악덕 기업주마냥 실컷 착취한 말들을 원고 속에 가두고 오랫동안 나를 먹여 살린 강물 대신 사인을 합니다 표절에 관한 대목을 읽다 뜨끔해하면서도 초판은 몇 부나 찍을 건가요, 묻는 걸 잊지 않습니다 알량한 인세를 챙기기 위해 은행 계좌번호를 꾸욱 꾹 눌러 적으면서 말입니다
-시집『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 2010)
2010-09-09 / 낮 12시 1분
시어(詩語) 가게에서/최승호
수평선 900원
구름 500원
아지랑이 1000원
저녁 어스름 800원
길 300원
마음 500원
나라 100원
풀잎 400원
아스팔트 100원
빌딩 100원
노을 900원
바다 700원
고래 600원
욕망 100
하나님 200원
시궁쥐 400원
절간 200원
이슬 900원
천둥 500
미소 800원
깨달음 100원
발톱 300원
배꼽 1000원
따오기 900
북회귀선 400원
변기 200원
물푸레나무 700원
침대 300원
폐허 600원
섹스 100원
냉이꽃 900원
허무 200원
밤 두 시 800원
개똥 900원
다이아몬드 200원
늑대 700원
공룡 400원
여울 1000원
하루살이 900원
바보 800원
귀뿔 100원
은하수 600원
달빛 900원
조개껍질 300원
모래톱 1000원
파도 소리 700
섬 200원
저의 詩語 가게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날마다 좋은 시 쓰세요.
-『시평』(2005 가을호)
2010-09-09 / 오전 11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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