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그륵/정일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 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찿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 있도록 불러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아침의 노래 저녁의 시(나희덕엮음) 08. 7월 삼인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어머니께서/한 소식 던지신다" 이정록 시인의 <의자>의 1연이다. 어머니의 말씀이 시가 되었다.
경상도 출신인 정일근 시인은 경상도 사투리로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적었고 전라도 출신인 이대흠 시인은 전라도 사투리(동그라미)로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적었다.
‘표준어는 한 나라의 그 나라를 대표하는 언어로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어 표준어발음으로 보면 '그륵'은 '그릇'을 습관적으로 쓰는 잘못된 표현이지만 시에서 사투리는 타향사람에게는 낯설음과 함께 참신함을, 고향사람에게는 향수와 더불한 아늑한 정서를 맛보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에서 사투리가 주는 언어의 낯선 효과도 '신전' 이나, '경전' 의 어휘처럼 넘쳐나서 상투성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마을 하나가 없어지면 박물관 하나가 없어지는 거와 같고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처럼 사라지는 향토어를 발굴하고 널리 알려서 언어를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도 시인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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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는 외풍을 '우풍' 이라고 발음하시고 형제간에 주먹질하고 싸우면 '띠앗머리' 없다고 야단치셨다.
'의사무사하다'를 아사무사하다고 들려서 말귀는 대충 알아들으면서도 정확한 뜻을 몰랐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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