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늦은 밤 2호선/한수재
한참을 돌고 돌다 보면
서는 곳마다
그곳이 그곳인 듯
열리는 문이 다
집으로 가는 문 같은
목요일은 인생의 사십
가던 방향을 다시 보는 때
늘 다니던 길이 낯설어지는 때
서둘러 내리고 싶다가도 낯선 길이 두려워
어디로 어떻게 풀리든 기대고 싶은 때다
얼굴을 기대고
이마를 기대고
어깨를 기댄 사람들
내 집 식구 같이
털어 주고 싶은 사람들
계단 같은 사람들
그렇게 기댄 채
같은 길
기껏 등을 기대고 곤히 잠들
몇 평 안 되는 바닥에 닿기 위해
그렇게 올라가는 것일까
결국 기어가는 것일까
어둠에 덮인
계단 앞에 서면
계단이 사람처럼 보여
숨을 몰아쉬면
딱딱한 곳이 아니라도
사방이 아프다
한수재 시집 <싶다가도> 우리글
서울 매트로 2호선은 순환선이다. 지선이 2개 있어 여객선 역할이 추가되었지만 차량기지의 차량을 위한 노선일뿐 오르로 외로 돌고돈다. 순환선은 깃점과 종점이 없다. 타고 있으면 시작과 끝이 없이 돌다가 인연처럼 제자리로 돌아온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만이 어디 인연일까. 한 사물과 사물간의 만남을 매일 갖게 된다면 그것도 인연일텐데 인연이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자기 인생의 의지와 관계없이 어느 날 느닷없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지하철 2호선이 지나가는 곳에 직장을 얻었다거나 2호선이 닿는 곳에 둥지가 생겼다면 지하철 2호선과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내 집 식구 같은 사람들 모두가 인연이다.
내 인생에 전혀 아무관계도 없을 것 같은 인연들을 바라본다. 일주일을 인생으로 치면 목요일은 장년쯤일까. 한창 의욕적으로 일을 할 나이지만 까닭없이 사물이 슬프게 보이고 무언가 모자라는 것 같기도 하고 허방에 빠진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등을 내주고 싶기도 하고 기대고 싶기도 하다. 이유는 없다. 몸 한 두군데서 나사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조바심이 난다고 할까. 괜히 궁금해지고 간접하고 말을 걸고 싶을뿐이다. 그들 또한 나와 같이 지구별에 떨어진 이 시대 동시대인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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