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햇살검객 / 박승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1. 5. 2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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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검객 / 박승류

 

 

 

햇살은 가끔 날이 설 때가 있다
날을 세워 다가올 때가 있다
칼날처럼 날이 선 햇살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리고 어쩌다, 깊숙이 베일 때가 있다
칼날은 계절마다 다른 검법으로 다가온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폭염검법에
차갑게 부서지는 혹한검법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춘추검법까지도
모두 경험을 해 봤다
칼날에는 칼잡이의 혼이 들어 있어, 어떨 때는
한번 휘두른 칼날에 가슴을 철렁 베일 때가 있다
또 어떨 때는 마음이 동강날 때도 있다
모르는 사이 눈동자를 쓱싹 베일 때도 있다
우멍한 눈을 파고드는 우수憂愁검법은
춘추검법의 한 지류이지만
오랜 기간 숙련되어 으뜸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나는 우수검법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불혹을 지나 지천명으로 가는 길에
아차, 또 만나고 만 햇살검객
피할 방법을 찾지 못 했다 오늘도 나는
눈이 베였다
말간 피로 눈동자를 씻었다
배후는 늘 허공이었다

 

 

[2007년 월간 <우리시> 신인작품 당선작 중 / 5월호]

 

 

 

많은 시들이 비슷한 방법으로 제작되는 것을 본다. 비유, 상징, 알레고리, 풍유, 패러디, 종교, 철학, 교육, 지식 등 여러 권법으로 동원해 보아도 우수검법은 쉽게 터득되지를 않는다. 한편 어느 정도 숙련이 되어 우수검법을 사용하는 데도 경계를 소훌히 하면 육신의 곳곳에 상처를 입고 속에는 피멍이 고이고 만다. 결정타를 맞으면 기사회생이 돼도 비몽사몽이 된다.

 

임영조의 갈대는 배후가 없었고 촛불집회의 배후는 아고라였는데 박승류의 배후는 늘 허공이라고 한다. 북쪽에서 날아온 짝잃은 기러기, 청계천 물 속 피래미와 물풀, 막다른 골목의 바람 등 엉뚱한 곳을 마구잡이로 들쑤시는 것을 보았다. 시를 쓰는데 무슨 특별한 배후가 필요할까. 박승류 식 권법으로 허공을 가르면 하늘이 쫘악 갈라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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