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기/박재희
끝나지 않은 노동이 헛간에 걸려
먼지 쌓인 시간을 갈고 있다
우직한 황소의
붉은 근육이 비틀리던
저 군살 박힌 삶들
거미줄 엉킨 텁텁한 헛간에서
그날의 노동이 경련처럼 일어난다
봄이면 제일 먼저
쟁기를 손질하시던 아버지
막걸리 한 사발에
쟁기 걸고 황소 앞세우면
날 끝에서 갈증을 토해내며
일어서는 밭이랑
황소의 헉헉거림,
쟁기로 전해오는 아버지의 땀과 근육,
그 꿈틀거림이......갇힌,
주인 잃은 헛간 위로
오늘은 봄비가 온다
이랴!
내 마음 묵정밭을 갈고 오는 아버지
-<시하늘 겨울호에서>
영화 '워낭소리' 가 화제를 뿌리고 있다. '워낭소리' 는 37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데 이어 개봉 46일만에 200만 돌파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인기 질주를 계속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관객 천 몇백만을 돌파하며 기록 1, 2위를 지키고 있는 '괴물' 이나 '왕의 남자' 를 따라가자면 한참이나 멀었지만 저예산 다큐멘터리 영화이기에 더욱 화제만발이다.
보통 소는 13년이 지나면 이빨이 다 빠지고 자연적인 수명은 대략 20년 내외라고 하는데. 전남 장흥에서는 1975년에 집에서 기르던 어미소가 나은 새끼를 2대에 걸쳐 지금까지 자식처럼 동거동락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우리나라 최고령 한우의 나이는 경남 거창군의 김모씨 농가의 소로 현재 39살이라고 한다. 이 나이를 사람으로 환산을 하면 몇 살쯤 될까.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약 120세에 해당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한우들은 27∼28개월 정도면 도축장 신세가 되어 제 수명대로 살다가 가는 소가 거의 없는데 '워낭소리' 의 주인공 소나 장흥, 거창의 소는 먹고 자고 하는 육우들에 비해 논밭을 가는 힘든 노동을 하였지만 주인을 잘 만나고 수명복을 타고 난 것만은 틀림이 없다.
화제꽃을 피우다보니 티브에서도 자주 소식을 전해주는데 옆에서 뉴스를 같이 보던 아들이 '워낭소리' 가 뭐냐고 물어본다. 그러다 문득 이 영화의 제목이 '워낭소리' 가 아니고 쟁기였어도 이렇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을까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쟁기는 소에게 있어 멍에이기 때문에 서정성이 짙은 워낭소리에 비해 너무 무겁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슬픈 정서를 향유하면서도 은연중 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소에게 있어 멍에나 다름없는 쟁기를 영화제목으로 했다면 다른 독립영화들처럼 몇 개의 영화관에서 상영을 하다가 얼마 못가 간판을 내리지는 않았을까. 올해는 마침 소의 해이고 감독이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의도적인 기획이나 장면이 안 들어가겠냐만은 서정적인 제목만큼은 영화와 잘 맞아떨어졌다고 본다.
사람한테 이름이 있고 상점에도 간판이 있듯 영화 뿐 아니라 시에서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제목이 중요한테 가끔 의도적으로 시의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시들을 본다. 연관성이 있더라도 제목이 무거우냐 가벼우냐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의도에 따라 선택을 해야지 전혀 관계가 없는 이름을 붙인다면 제목 때문에 시도 실패를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시의 제목인 '쟁기' 도 잘 지어진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아마 이 시의 제목이 '워낭소리' 였다면 한 평생 힘든 농사일을 하신 아버지의 멍에가 잘 살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쟁기는 논밭을 가는 농기구의 한가지로 술, 성에, 한마루의 세 가지 부분을 삼각으로 맞춘 것이다. 술 끝에는 보습을 끼우고 그 위에 한마루 몸에 의지하여 볏을 덧대고 성에 앞 끝에 줄을 매어 소에 멍에를 걸게 되어 있다. 이 멍에를 걸치는 순간 소도 아버지도 힘든 노동이 시작된다. 일이 끝나야 멍에를 벗을 수 있기에 소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쟁기는 평생의 멍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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