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근위병/하이네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1. 5. 28.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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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위병/하이네

 


프랑스로 돌아가는 두 근위병.
그들은 러시아의 포로였었다.
독일의 병영에 막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고개를 떨구었다.

 

거기에서 슬픈 소문을 듣게 되었나니
프랑스는 전쟁에 패배하였고
대군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황제께서, 황제께서 잡히셨단다.

 

두 사람은 서로 힘껏 끌어안으며
슬픈 소식에 함께 울었다
하나가 말하기를 너무너무 슬퍼지니
나의 옛 상처가 다시 쑤신다.

 

다른 병사 말하기를 끝장 난거야,
너와 함께 그대로 죽고 싶지만,
집에는 처자가 기다리고 있다네.
나 없으면 그들은 굶어 죽는다네-.

 

아내와 자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내게는 그보다 큰 열망이 있나니,
처자야 굶주리면 동냥이나 다니라지,
황제께서, 황제께서 잡혀가지 않았는가!

 

전우여, 내 부탁을 들어주게나,
내가 이제 여기서 죽게 된다면
내 시체를 프랑스로 가지고 가서
조국의 땅 속에 나를 묻어 다오.

 

빨간 리본이 달린 십자훈장은
내 가슴 위에다 매달아 다오.
내 손에는 반드시 총을 쥐여 주고
허리에는 군도를 차게 해 다오.

 

준비를 갖춘 뒤에 무덤 속에 누워서
보초처럼 숨죽이고 귀 기울이리니.
언젠가 대포소리 천지를 뒤흔들고
말발굽소리 우렁차게 들려 오리라.

 

황제께서 내 위로 말을 달리시며
수많은 창검이 철컥대며 번쩍이면
나는 무장하고 무덤에서 다시 나와
황제를, 황제를 호위하리라.

 


-「世界의 名詩」김희보 편저. 종로서적

 

  
늦은 밤 시간에 티브에서 '낭독의 발견'을 시청했다. 한때 자주 시청하는 프로 중에 하나였는데 시간대도 시간대지만 흥미가 덜해져서 한동안 보지를 않았었다. 아침 신문을 보다가   지나가는 기사에서 문정희 시인의 이름이 돋보기로 잡혀서 본 프로였다. 문정희 시인은 '나쁜 시인' 을 낭송했다. '나는 아무래도 나쁜 시인인가 봐/민중시인 K는 유럽을 돌며/분수와 조각과 성벽 앞에서/귀족에게 착취당한 노동을 생각하며/피 끓는 분노를 느꼈다고 하는데// 1연에서 보는 것처럼 아는 시인과 술을 먹다가 유럽여행을 다녀온 한 시인이 절대왕정의 폭군 앞에 세워진 문명에 많은 민중이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피 끓는 분노를 느꼈다고 하자 자신은 유럽을 돌면서 내내 사랑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쁜 시인이라고 말을 꺼내자 그럼 그걸로 시를 써보라고 해서 집에 돌아와 쓴 시가 '나쁜 시인' 이라고 한다.

 

그리스 문명과 라틴문명, 그리고 어둡고 긴 헤브라이즘이라는 신의 터널을 빠져 나와 르네상스를 꽃피운 유럽문명이 봉건시대의 착취물이긴 하지만 역사가 흘러가는 거대한 물줄기를 인위적으로 돌린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동로마 서로마로 갈라지고 다시 여러나라로 쪼개지고 합쳐지면서 동서 이민족과 문명충돌을 일으키며 자유사상이 싹이 트는 와중에 억눌렀던 민중의 힘은 자꾸만 커져 간다. 신흥 상공업 시민계급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힘을 축적하여 정치적 발언권이 강해져가면서 왕권 신수설을 내세우는 왕이나 성직자, 귀족처럼 사람의 신분은 본디부터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개념이 의식에 자리를 잡는다. 그런 시대에 프랑스 영토가 된지 일년밖에 되지 않은 코르시카 섬에서 나폴레옹이 태어난다.

 

아버지가 프랑스 세력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프랑스 사관학교에 들어간 나폴레옹은 우수한 학생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배우는 즐거움과 사람들을 통솔하는 데에는 흥미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16세에 소위가 되어 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자 고향인 코르시카 섬의 자치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나 코르시카의 민족주의자들과 사이가 나빠져서 혁명을 지지하게 된다.


통솔력과 정치수완이 좋은 나폴레옹은 놀랄만큼 빠른 출세를 한다. 25세에 장군이 되면서 총재정부에 대항하는 왕당파를 진압하고 총재주변의 세력들과 교제를 시작한다. 27세에 이탈리아 지역사령관으로 부임하면서 굶주리고 헐벗은 지리멸렬한 부대에 용기와 결단을 촉구하며 불타는 사기를 불어넣어 단 3주만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연합군을 무찌른다. 몇 년째 질질 끌고 있던 전투를 단순에 마무리 짓고 오스트리아 대군을 꺾으며 이탈리아를 수중에 넣으면서부터 그의 이름은 유럽에 널리 퍼져나간다.


부뤼메르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싸움에 승승장구, 연전연승을 하던 나폴레옹은 국민투표로 종신 통령이 되었다가 내쳐 황제로 등극을 하는데 나폴레옹의 발목을 잡은 나라는 영국이었다. 영국본토를 침공하기 위해 대함대를 만들어 쳐들어갔으나 영국 해군 제독 넬슨이 이끄는 트라팔가르에서 산산이 부셔져버린다. 이 해전에서 영국은 넬슨을 잃기는 했으나 프랑스로부터 다시는 바다를 넘볼 수 없게 만들었다.

 

바다의 지배권을 얻지 못한 나폴레옹은 영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대륙봉쇄령을 내리는데 이 봉쇄령으로 가장 고통을 받은 나라가 러시아였다. 농업국인 러시아는 농산물을 수출하고 생활필수품을 수입을 해야했기 때문에 공공연하게 영국과 무역을 재개를 한다. 이에 격분한 나폴레옹은 8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길에 나섰는데 프랑스군에 도저히 맞설 수 없었던 러시아는 후퇴를 하면서 들판의 곡식과 숙소가 될만한 것들을 초토화 시켜버린다.

 

추위와 굶주림에 프랑스로 돌아온 병사가 만여 명만이 남았을 뿐이라 하니 한 사람의 영웅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랐을까. 하이네는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 대패하고 엘바섬으로 귀양간 것을 시화하였는데 그 당시 나폴레옹을 근접 경호하던 근위병들의 처, 자식보다 우러러 받드는 황제를 위한 마음이 절절히 잘 드러나 있다.

 

엘바섬을 탈출한 뒤 워털루 싸움에서 져 백일천하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머나먼 대서양의 조그만 섬 '세인트헬레나' 로 유배를 간다. 이 섬 영주의 푸대접과 주치의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52세의 나이로 쓸쓸히 죽었는데 '나의 영화는 40회의 걸친 전쟁의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구히 남을 것은 법전뿐이다.' 라고 말했듯이 나폴레옹 황제의 치적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나폴레옹 법전>의 편찬이라고 한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에 입각하여 법률상의 평등, 개인의 자유, 사유 재산의 존중, 계약의 자유를 규정한 이 법전은 오늘날까지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으며 세계각국의 법률, 특히 민법에 큰 영향을 끼쳤다. 벨기에는 이를 현행 법전으로 삼고 있고, 이탈리아·에스파냐·포르투갈 및 라틴 아메리카 여라 나라의 민법은 이를 본보기로 하였으며 우리 나라와 일본의 현행 민법에도 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고 엘바 섬에 유배되자 프랑스 국내에 다시 특권 계층이 생기려 하고  빈 회의에 따라 유럽 각국의 세력다툼이 벌어지자 나풀레옹은 다시 집권할 것을 결심하고  엘바섬을 탈출하는데 당시의 나폴레옹의 동정을 보도한 언론의 표제가 파리에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악마가 유형지를 탈출' , '코르시카 태생의 이리가 칸에 상륙' , '맹호가 갓푸에 나타났다.' , '전제 황제 리옹에 들어오다. ' , '보나파르트는 북방으로 진격 중' , '황제 폐하, 어제 저녁 튈르리 궁전에 도착하심, ' . 이렇게 보도를 하고 있다. 권력과 불가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언론의 한 모습인데 언론의 자유를 한껏 향유를 하는 요즘에도 권력에 빌붙는 언론들이 없지 않는 것을 보면 요즘의 언론이나 당시의 언론이나 권력 앞에 힘을 못쓰는 것은 언론의 태생적인 한계는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