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어느 비대칭 장단/권순진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1. 5. 28. 19:26
728x90

 

어느 비대칭 장단/권순진

 


어느 보험회사 직원들의 멀리 소풍 갔다 돌아오는 길이다
방향이 같은 김 과장과 이 여사가 카풀로 동승했고
박 여사도 이웃인 강 대리의 승용차 옆자리에 올라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둑하게 서쪽 하늘이 물들 듯 피곤이 내려와 앉았다
김 과장은 깍듯하고도 나긋하게 '좀 쉬었다 갈까요?'
옆자리의 이 여사에게 쿡 말을 건넨다.
이 여자는 잠시 뜸을 들이나 했는데
상큼하고 쿨하게 대꾸한다 '그러죠 뭐'
힘을 받은 차는 가야 할 길이 분명하다는 태도와
순간의 가속으로 '늘봄모델' 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니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차 어서 돌려요'


비슷한 시간 강 대리 역시 피곤하긴 마찬가지였다
잠시 쉬었다 갈 요량으로 박 여사에게 공손한 제의를 했다
하지만 젊은 호흡으로 단호히 '잠시 쉬었다 가실까요?'
박 여사의 볼이 잠시 상기되는가 싶더니
'그럼 그럴까요, 그렇잖아도 피곤해 뵈시던데……'
차는 잽싸게 핸들을 꺾어 막 네온이 깜박이기 시작한
'드림모텔'을 횡 하니 지나 간이 휴게소 자판기 앞에 섰다.
'아니 이게 뭐예요 쉬었다 가자는 게 그럼……'

 

 

 

-계간『詩하늘』(2010. 여름호)

-시집『낙법落法』(문학공원, 2011)


비대칭이라는 제목이 눈길이 가서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은 대칭보다 비대칭을 좋아해서 궁궐이나 정원이 대칭이 거의 없고 비대칭의 조화를 이룬다고 합니다. 건축의 기둥을 세울 때 그레질 공법으로 하듯 정원을 만들어도 산을 깎아 규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끌어다 뒷산을 정원으로 삼는데 직선이 다소 있다고 해도 그것은 거슬리지 않는 직선이라고 합니다.
 

시나위는 전라도 굿판에서 무지렁이들이 하는 음악이라고 합니다. 이 시나위 음악은 속악이라 악보가 없어 시작하자마자 여기서 삑 저기서 삑 하며 맞지를 않는데 어느 순간 에 이르면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뤄 절정에 이른다고 합니다. 바로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또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삑, 삑 하며 제 멋대로 간다고 합니다. 가다가 맞다가 안 맞다가 하는 시나위는 그레질이 몇 십년 경험의 대목수가 대충 감으로 해도 척척 맞는 것처럼 그냥 감에서 나오는 것이라서 족히 몇 십 년은 돼야 좀 하는 것이지 초짜는 그야말로 흉내도 낼 수 없는 망아의 음악이라고 합니다.


정악이 대칭의 음악이라면 살풀이. 향악, 굿거리 음악인 시나위는 비대칭의 음악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정문 아닌 후문의 남녀의 애정행각을 비대칭으로 옭아서 한 모서리에 잘 붙어 놓으셨습니다.

 

 

'시를♠읽고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행/이진수  (0) 2011.05.28
대청에 누워/박정만   (0) 2011.05.28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권혁웅   (0) 2011.05.28
어머니/박성우   (0) 2011.05.28
근위병/하이네  (0) 2011.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