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에 누워/박정만
나 이 세상에 있을 땐 한 칸 방 없어서 서러웠으나
이제 저 세상의 구중궁궐 대청에 누워
청모시 적삼으로 한 낮잠을 뻐드러져서
산뻐꾸기 울음도 큰댓자로 들을 참이네.
어차피 한참이면 오시는 세상
그곳 대청마루 화문석도 찬물로 씻고
언뜻언뜻 보이는 죽순도 따다 놓을 터이니
딸기 잎 사이로 빨간 노을이 질 때
그냥 빈 손으로 방문하시게.
우리들 생은 다 정답고 아름다웠지.
어깨동무 들판 길에 소나기 오고
꼴망태 지고 가던 저녁나절 그리운 마음,
어찌 이승의 무지개로 다할 것인가.
신발 부서져서 낡고 험해도
한 산 떼밀고 올라가는 겨울 눈도 있었고
마늘밭에 북새더미 있는 한철은
뒤엄 속의 김 하나로 맘을 달랬지.
이것이 다 내 생의 밑거름 되어
저 세상의 육간대청 툇마루까지 이어져 있네.
우리 나날의 저문 일로 다시 만날 때
기필코 서러운 손으로는 만나지 말고
마음 속 꽃그늘로 다시 만나세.
어차피 저 세상의 봄날은 우리들 세상.
-시집『박정만 시전집』. 외길사. 1990.
박정만 시인은 술을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술이 원인이 되어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고는 하지만 이 시인은 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엄청난 고문으로 휴유증을 앓았다고 합니다.
박정만은 소설가 한수산을 만난 것은 책을 출판하려는 목적으로 한두 번 만난 일밖에 없다고 하는데 아주 억울한 일이었지요. 대가 좀 센 문인들은 의리를 지키고 그 보다도 자존심을 지키려고 버티다가 인두질을 당하곤 했는데 연약한 시인들은 엄포만 줘도 시키는 대로 불었다고 합니다. 그 바람에 애꿎은 사람들이 불려가서 곤욕을 치루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80년 초기 군부독재가 권력을 잡으려고 발판을 닦던 시절에는 언론탄압이 극심하여 기사 중간 중간이 지워진 신문이 발행되기도 하였습니다.
고문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생사람 잡는 억울함이 술을 안 먹을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고 결국 알콜중독으로 망신창이가 되어 43살이라는 아까운 젊은 나이에 시인 박정만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죽음을 예감했는지 20여일 동안에 300여편이나 되는 시를 공장에서 상품 찍어내듯이 쏟아냈다고 합니다.
이 시 [대청에 누워]도 죽음 직전 그 때에 쓴 시라고 합니다. 분노가 치받아 올라 거칠고 강한 억양을 토해내야할 것 같은데 죽음 직전에 모두를 용서하고 가자고 마음을 먹었는지 내면을 다스리는 어조가 차분하여 오히려 짙은 슬픔과 아픔이 배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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