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우지정(雲雨之情)/이선이
뒤꼍에서
서로의 똥구멍을 핥아주는 개를 보면
개는 개지 싶다가도
이 세상에 아름다운 사랑이란 저리 더러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머물러서는
마음도 미끄러진다
평생 바람처럼 활달하셔서
평지풍파로 일가(一家)를 이루셨지만
그 바람이 몸에 들어서는 온종일 마룻바닥만 쳐다보시는 아버지
병 수발에 지친 어머니 야윈 발목 만지작거리는 손등을
희미한 새벽빛이 새겨두곤 할 때
미운 정 고운 정을 지나면 알게 된다는
더러운 정이라는 것이 내게도 바람처럼 스며드는 것이다
그런 날 창 밖에는 어김없이 비가 내려
춘향이와 이도령이 나누었다는 그 밤이 기웃거려지기도 하지만
그 사랑자리도 지나고 나면
아픈 마나님 발목 속으로
불구의 사랑이 녹아드는 빗소리에 갇히기도 하는데
미웁고 더럽고 서러운 사람의 정(情)이란 게 있어
한바탕 된비 쏟아내고는 아무 일 없는 듯 몰려가는
구름의 한 생(生)을 머금어 보곤 한다
-『정신과표현』(2002년 11-12월호)
어느 부부 무슨 사랑이 그리 많아 고븐 사랑으로 한 평생을 살까 만은 고은 짓 하면서 살아도 이뻐 보이지만 않을텐데 평지풍파로 일가를 이루신 아버지는 자식에게 아내에게 미운 털이 박힐 대로 박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독재의 검을 바람처럼 마음껏 휘두르다가 어느 날 덜컥 그 바람의 칼에 자기가 베여 제 몸 하나도 간수를 못해 어머니의 병 수발을 받는 아버지. 긴 병은 환자보다 보호자가 지친다는 말처럼 부부라는 거룩한 이름에 묶여 아버지 돌보느라 어머니는 야위어 가고 그것을 보는 화자의 마음은 그저 착잡하기만 합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자기 땜에 힘들어하는 아내 보기가 미안했던지 발목을 만지작거립니다. 미운 정, 서러운 정, 더러운 정까지도 세월이 바람처럼 스미고 갔다지만 미처 용해하지 못한 아픔이 가슴 한켠에 머무르고 있을 것 같은데 발을 맡기고 있는 어머니나 주물러주는 아버지나 지지리도 못나 보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 못나 보이는 모습에서 화자는 자기도 잘 알지 못하는 부부사이의 더러운 정이 애틋한 정일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짐작을 해보는 것입니다.
부부싸움이 지금이라고 해서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옛날 시골에서는 부부싸움이 잦았던 것 같습니다. 마치 다시는 안 살 것처럼 과격하게 싸울 때는 문짝이 부서지고 장독이 깨지고 살림살이 그릇이 마당으로 팽개쳐지는 것도 보았는데 그렇게 싸웠으면서도 요즘처럼 이혼이 없었습니다. 밉니, 꼴사납니, 보기 싫으니 해도 오랜 세월 살아온 부부사이에는 자식들이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는 오롯한 정 하나가 가슴에 새겨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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