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와 상인 1/한길수
남대문 상가에서 지게 품팔이 하던 남자
폼 나게 살겠다고 처자식 데리고 건너 온 미국
주말 땡볕 공터에다 천막치고 신발 펼친다
이국인의 눈에도, 그의 눈에도 짚은 눈썹의 낙타
닳아 빠진 신발 벗겨내자 땀에 젖은 이십 불짜리
코 잡고 찡그리자 흰 이 드러내며 내미는 손
오징어 말리듯 벤 트럭 천장에 걸어놓고 말린다
하나 둘 열이 되면 인턴과정 밟는 아들 도구를 사고
스물에 스물이면 한 달 월세 내고 생활비가 되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하나 둘 옆머리부터 희어진 머리
환갑 지나 천막 노점을 접고 상가에다 점포를 차렸다
살 만하니 불쑥 찾아온 불청객 돌볼 겨를 없던 몸 덮쳐도
왼쪽 다리 절뚝이며 뒤틀린 입에서 반쪽을 살았단다
창살로 만든 가게 문이 비틀거리면 아침 열 시를 맞는다
-『붉은 흉터가 있던 낙타의 생애처럼』(천년의시작, 2010)
한창 박세리 골프가 전국민에게 전염병처럼 번지고 지나갈 때 아들을 골프에 입문시킨 한 이웃이 있었다. 시장에서 건강식품 장사를 하면서 건물도 한 채 가지고 있어 충분하지는 않지만 더 많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나오는 세만으로도 한국에서 편안히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식솔들과 미국으로 떠났다.
처음에는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일년정도는 기러기 아빠로 살았다. 아내가 특별한 기술이 없어 몸노동으로 가계를 보탰지만 뭔가 기술이 있으면 몸고생을 덜한다고 생각했는지 한국에 잠시 나와 있는 동안 한 두 달만에 미용이나 세탁 같은 기술을 배우고 싶어했다. 그러나 기술이 어디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공장의 상품인가. 나중에 말을 들으니 지인의 밭에서 무도 뽑고 허드렛일을 도와주면서 아이들 뒷바라지를 한다고 했다.
나중에는 장사를 접고 집은 전세를 놓고 남편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는 미국에서 살아 볼만하다고 생각을 했는지 일년쯤 있다가 집을 처분하려 나왔는데 한국음식은 마켓에서 얼마든지 구입을 할 수 있으니까 미국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이 자판기의 막커피였다고 한다. 미국에는 자판기커피가 없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한국에 처음 나온 날 하루에 열 잔도 더 빼먹었다고 한다. 살면서 별별 생각을 다 했는지 자판기커피 기계를 미국에 들여놓고 싶다고도 했지만 우아한 향을 즐기는 사람에게 자판기막커피가 입맛에 맞겠는가.
어쨌든 그는 미국으로 떠났고 여지껏 소식을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오십이 넘어 행한 그의 미국행을 마음속으로 부러워하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젊음날에도 내게는 그만한 용기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런 모험을 할 정도의 대담한 가슴을 타고나지 못했다. 그런 내게도 젊은 날에 미국을 갈 수 있는 기회? 있기는 있었다. 닭공장이었다. 닭공장에 일년을 버티면 미국시민권이 나오고 그러면 마음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 큰애가 하나 있었고 아기였을 때이니까 까마득한 옛날이야기 같다. 당시 경비가 오백정도 들어간다고 했는데 당시 그만한 돈도 없었지만 믿을만한 이야기도 아닌 것 같았고 그 무엇보다도 성공에 대한 피 튀는 용기와 무엇인가를 붙잡아야 한다는 절박함도 정열에 불타는 의지도 내겐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20년 가까이 흘러 티브에서 보았다. 시민권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 등살에 못 이겨 남편이 미국의 닭공장에서 작업복을 입고 장화를 싣고 하루 8시간 내내 닭의 속을 뒤집어 창자를 꺼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대기업 임원이나 은행의 지점장을 한 사람도 있었는데 팔목이 빠져나가는 고통을 감내하며 시민권이 나올 때까지 참고 견딘다고 했다. 안 하고 싶지만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기에, 아니 아이가 시민권을 원한다고 했다.
시에서 화자는 중풍이 불청객처럼 찾아왔고 환갑이 넘어서도 비틀거리면서도 가게를 지키고 있다. 아이들도 다 컸고 더 이상의 큰돈이 필요하지 않아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 아침 10시에 가게를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인가 삶은. 자기자신을 위해서인가 식솔들을 위해서인가. 그는 오늘도 한 마리 낙타가 되어 사막의 모래언덕에서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의 모래를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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