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검증/홍정순
그가 다녀간 것 같다 없는 나를 다행히 여겼을지도 모를 일 딱히 뭘 살 일도 없이 가게에 들러 날 분명히 찾지도 못하고 족대나 하나 사갔다는 그, 뭔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남편이 눈치챘듯 배신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내 스타일이 아닌 사람을 골랐다는 것을 감 잡았을지도 모를 일 그 자리 없길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은 대체 뭔 심사? 그인 것 같다 앙가조촘 철물점 담장의 꽃밭이나 보고 갔을 지도 모를 일 동창들에게 내 안부나 훔치다가, 고향서 눌러앉아 철물점 아줌마가 돼 애가 셋이나 딸렸다는 말을 들었을 지도 모를 일 죄짐에 미루다 지나가는 길에 혹시나 해서 들었을지도 모를 일
애들과 마누라를 데리고 족대를 메고 어느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을라나 장미꽃 한 아름을 들고 교문에 와 학교를 들었다 놨던 그 그가 다녀갔다 아들과 동명인 그 자식이
-『유심』(2010, 9-10월호)
사랑하다 헤어진 것이 뭐가 죄가 될까. 남자가 버린 것은 죄고 여자가 버린 것은 죄가 아닐까. 눈물과 순정은 여자만의 소유물이 아닌데 남자에겐 인색할까. 누군 사랑 한번 안 해보고 시집 장가 간 사람이 있을까. 사랑도 사랑 나름이라고 너 아니면 죽는다는 사랑을 못해본 사람이 뭘 아냐 힐책하면 할말없지만 어중이떠중이 사랑을 해서 어질더분 애 놓고 그렇게 한 세월 보내는 것이 소실한 사랑 아닐까. 돌아서 세월 흐르고 나면 사랑은 길가의 돌멩이보담도 소통이 안 되는 것은 아닐까.
길고 긴 만리장성 같은 사연이야 알리 없지만 그렇다고 아들의 이름을 전 애인의 이름으로까지 지어서 부르면 속이 시원할까. 진짜로 그렇게 지은 것인지, 시속에서 그렇게 지은지 그 또한 알길 없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전 애인의 이름을 마음대로 고소하게 실컷 오독오독 씹어보면 그 맛이 떫을까, 쓸까, 달까.
'시를♠읽고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질(同質)/조은 (0) | 2011.07.08 |
---|---|
1920년 인기 시인 노자영 시 세 편, 1950년 인기 시인 공중인 시 두 편 (0) | 2011.07.05 |
산문에 기대어/송수권 (0) | 2011.05.28 |
낙타와 상인 1/한길수 (0) | 2011.05.28 |
운우지정(雲雨之情)/이선이 (0) | 2011.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