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외국시♠시를 읽어야 할 시간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 잊혀진 여자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1. 9. 2. 08:04
728x90

 

잊혀진 여자        


- 마리 로랑생


권태로운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슬픈 여자

슬픈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불행한 여자

불행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버려진 여자

버려진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떠도는 여자

떠도는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쫓겨난 여자

쫓겨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죽은 여자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잊혀진 여자

잊혀진다는건          
가장 슬픈 일

*

최승자의 <외로운 여자들은>을 읽고 생각난 김에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여성 화가, 프랑스)의 <잊혀진 여자>를 읽는다. 마리 로랑생은 잊혀진 여자가 가장 슬프다고 말했는데, 사람들의 기억 속에 많이 남아있는 구절이지만 마리 로랑생, 스스로가 염려했던 것처럼 정작 이 말을 했던 것이 그녀였다는 사실은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는 편이다. '권태-> 슬픔-> 불행-> 버려짐-> 떠돔-> 쫓겨남-> 죽음-> 잊혀짐' 마리 로랑생이 이야기하는 불쌍한 여자의 순서다. 그녀는 잊혀진다는 것이 가장 슬픈 일이라고 했다. 어째서 일까? 남자와 여자의 차이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화가로서의 마리 로랑생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냥 일반인의 개념으로는 지금도 저 맥락이 가슴에 와 닿지는 않는다.

얼마 전 모 결혼정보회사에서 미혼남녀 593명을 대상으로 통계를 내어보니 10명 중 8명이 연인과 헤어질 때 거짓말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연인과 헤어질 때 남성의 92%, 여성의 77%가 거짓말을 한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연인과 헤어지는 이유 중 가장 말하기 곤란한 것은 남녀 33.5%가 '다른 사람이 생겼기 때문에'이고, 뒤를 이어 26%가 '질려서', 16%가 '사랑한 적이 없다', 14.5%가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불과 7%만이 '서로가 맞지 않는다'로 답했다.

남성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절반에 가까운 46%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라 답했고, 여성의 33%가 '상대방에게 상처주기 싫어서'라고 했는데, 남성이 거짓말하는 이유의 2번째(22%)에 해당하기도 한다. 여성이 거짓말하는 두 번째 이유는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어서(31%)'인데 비해 이 같은 응답비율에 비해 남성은 12%이다. 남녀의 통계수치가 매우 다른 듯 보이면서도 사실 꼼꼼이 따져보고 생각해보면 응답의 형식이나 내용은 달라도 이유는 사실 흡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굳이 별로 신용이 가지도 않는 이 통계를 인용한 까닭은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차이를 보이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남성이 거짓말하는 이유 중 상당 부분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상대방의 평가에 연연한다는 것이고, 그에 비해 여성은 상대의 마음이나 처지에 집중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인격적으로 좀더 훌륭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어차피 헤어지려고 꾸며낸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인 데다 여성이 거짓말하는 이유 중 두 번째인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어서(31%)'란 말이나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남성들의 이유나 어찌보면 거기서 거기이긴 하니까. 미묘한 차이이긴 하지만 남성은 여성을 통해 자신을 비춰보고 평가하는 존재란 것이고, 여성은 가치 평가보다 존재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차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마리 로랑생의 시가 이해될 수 있다. 그녀의 시를 역순으로 살펴보면 '존재(存在, being), 그 자체'에게 있어 죽음보다 무서운 일은 '망각'이니까. 사랑했던 사람을 잊겠다고 발버둥쳐 본 사람은 '망각(존재의 죽음)'이 주는 달콤함을 알 것이다. 그래서 '망각'은 에로스가 아니라 타나토스다.

 

 

<가져온 곳>

http://windshoes.khan.kr/597

 

 

---------------------

죽은 여자보다 더욱 가여운 것은 잊혀진 여자다 - Marie Laurencin 마리 로랑생


♣ 미라보 다리의 여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불후의 명시 <미라보 다리>에서 노래한 것은 연인 마리 로랑생과의 이별의 아픔이었다.

주로 소녀나 여인들을 그린 파스텔 색조의 독특한 수채화들로 알려진 이 여성 화가는 자신의 그림 만큼이나 독특한 삶을 살았다.
그녀는 사생아로 태어났다. 어머니 멜라니-폴린 로랑생은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어촌 출신으로 스무 살 무렵 파리로 상경, 가정부와 식당 종업원을 거쳐 수 놓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았다.



♣ 아버지의 이중생활, 어머니의 영향력



아버지는 부유한 남자로, 유력한 가문의 여자와 결혼한 채 멜라니-폴린과 이중생활을 했다. "숨겨진 여자"가 된 어머니는 고향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일체의 사회적 관계들을 끊은 채 고독하고 비밀스러운 생활을 영위했다.

이처럼 남다른 출생과 성장기는 로랑생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어머니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 브라크의 격려 속에 화가로



그 어머니는 딸이 안정된 장래가 보장되는 여교사가 되기를 바랐고, 화가가 되기를 원하는 딸에게 그럴 만한 재능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래서 갈등 끝에 데생 학교에 다니게 된 마리는 도자기의 도안 정도로 꿈을 제한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곳에서 만난 조르주 브라크의 격려로 정식 그림을 그리기 위해 욍베르 아카데미로 옮기게 되었고, 이어 1905년에는 저 유명한 바토-라부아르(Bateau-Lavoir)에 소개되었다. 피카소, 막스 자코브 등 위시한 전위적 화가 및 시인들이 가난한 공동 생활을 하던 그곳에서 마리는 아폴리네르를 만났다. 사생아라는 공통점을 지녔던 이 두 사람은 곧장 사랑에 빠졌고, 서로의 예술 세계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정신적 반려가 되었다.



♣ 조국에 갈 수 없는 유랑자



그들이 바토-라부아르에 출입하던 5년의 기간은 두 사람 모두의 예술적 재능이 만개한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다.

마리는 1907년의 첫 전시회 이후로 재능을 인정 받기 시작했고, 우여곡절 끝에 1914년 결별을 맞이할 무렵에는 두 사람 모두 영광과 명성의 절정에 있었다. 지배적인 어머니들의 영향과 각자의 강한 개성 때문에 둘 사이가 좀처럼 풀리지 않게 되자, 마리는 돌연 독일 사람인 오토 폰 바트겐과 결혼해버렸다.

그리고 불과 한달여만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 독일인으로 국적이 바뀌었던 마리는 더 이상 조국에 발 붙일 수 없는 신분이 되고 말았다.



♣ "그림만이 나의 가치"



전쟁 동안에는 스페인에서, 종전 후에는 독일에서, 유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끝에 마침내 귀국을 허락 받은 것은
1920년, 그녀가 37살 때의 일이었다. 아폴리네르는 전쟁 중에 세상을 떠났었고, 귀국한 이듬해에 독일에 있는 남편과도 이혼한 마리에게 남은 것은 친구들과 그림뿐이었다. 이후 세상을 떠나기까지 30년 이상의 세월 동안 그녀는 여러 차례의 만남과 이별을 겪으면서 변함없이 그림에 몰두했다.



"나를 열광시키는 것은 오직 그림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림만이 영원토록 나를 괴롭히는 진정한 가치이다."



♣ "나에게 재능이 있기를"



로랑생은 "야수파의 소녀"(로댕), "야수파와 입체파 사이의 덫에 걸린 불쌍한 암사슴"(콕토) 등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결국 그 어느쪽도 아닌 자기 자신일 뿐이었다. 평생을 그림에 바친 뒤 70세가 다 되어서도 "나에게 진정한 재능이 있기를" 소원했던 것은 단지 어린 시절 절대로 화가가 될 만한 재능이 없다는 어머니의 말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화가란 당연히 남성이고 "여성 화가"는 희귀한 예외적 존재였던 시절에 살았다. 그녀의 예술 세계가 남성 화가들의 세계와 같은 척도로 평가될 수 없다 해서, 그녀의 재능이 절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감정, 삶의 방식, 그리고 재능에서 그녀는 독특한 인물이었고, 그녀의 예술 세계는 시대를 초월하여 독창적인 것이었다.

그녀는 "새로움을 창조한 이 시대의 위대한 발명가"(앙드레 살몽)라는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