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엘뤼아르
나의 대학 노우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그리고 눈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읽은 책장 페이지마다
하얀 책장 공백마다
돌과 피와 종이와 잿가루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정글에도 사막에도
새둥지 위에 개나리 위에
내 어릴 때의 메아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밤의 신비스러움 위에
낮의 하얀 빵조각 위에
약혼하였던 시절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하늘 빛 헝겁 조각 위에
태양이 이끼 낀 연못 위에
달빛이 흐르는 호수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각 위에
병사의 총칼 위에
임금의 왕관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늘진 풍차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먼동 트는 새벽 입김에
바다 위에 모든 배 위에
미친 듯 불 뿜는 산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뭉게 구름의 하얀 거품 위에
소나기의 땀방울 위에
굵다란 김 빠진 빗방울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빛나는 모든 형태 위에
모든 빛깔의 종이 위에
물리적인 진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잠이 깬 오솔길 위에
환히 뻗은 행길 위에
넘쳐 있는 광장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불 켜진 등불 위에
불 꺼진 등불 위에
모인 내 집 식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돌로 쪼갠 과일 위에
텅 빈 조개껍질 내 침대 위에
내 방과 거울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귀여이 까부는 강아지 위에
똑 곧추 선 그 양쪽 귀 위에
어설픈 그 두 다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조화된 모든 육체들 위에
네 모든 친구의 이마 위에
악수를 청하는 모든 손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놀라움의 창문 위에
기다리는 입술 위에
침묵보다 훨씬 높은 곳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나의 피신처 위에
무너진 나의 등대들 위에
권태를 주는 담벽돌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욕망이 없는 곧은 마음씨 위에
발가벗은 이 고독 위에
죽음의 이 행진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그리고 한 마디 말의 위력으로
내 인생을 다시금 마련한다.
너를 알기 위에 나는 태어났고
너를 이름짓기 위해 있느니
오 "자유"여!
-김희보 엮음『世界의 名詩』(종로서적, 1987)
2012-03-28 / 수요일, 22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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