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 모음
금잔디
김소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 산천에 붙는 봄은
가신 임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 산천에도 금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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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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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혼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멀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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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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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화(山有花)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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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동새
접도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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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후일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후일 그 때에 "잊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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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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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어제도 하룻밤
나그네 집에
까마귀 까악까악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
차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 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은 있어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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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는 눈
땅 위에 새하얗게 오시는 눈
기다리는 날에만 오시는 눈
오늘도 저 안 은 날 오시는 눈
저녁불 켤 때마다 오시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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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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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또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려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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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 산골
영 넘어갈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히네
오늘도 하룻길은
칠팔십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 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 년 정분을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 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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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끝
불현듯
집을 나서 산을 치달아
바다를 내다보는 나의 신세여!
배는 떠나 하늘로 끝을 가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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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노래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내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 밖에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 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들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랫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 누워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 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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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
들가에 떨어져 나가앉은 메 기슭의
넓은 바다의 물가 뒤에
나는 지으리, 나의 집을
다시금 큰길을 앞에다 두고
길로 지나가는 그 사람들은
제가끔 떨어져서 혼자 가는 길
하이얀 여울턱에 날은 저물 때
나는 문간에 서서 기다리리
새벽 새가 울며 지새는 그늘로
세상은 희게 또는 고요하게
반짝이며 오는 아침부터
지나가는 길손을 눈여겨보며
그대인가고 그대인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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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눈을 감고 잠잠히 생각하라.
무거운 짐에 우는 목숨에는
받아 가질 안식을 더하려고
반드시 힘있는 도움의 손이
그대들을 위하여 매밀어지리.
그러나 길은 다하고 날은 저무는가
애처로운 인생이여
종소리는 배바삐 흔들리고
애꿎은 죄(弔旗)는 비껴 울 때
머리 수그리며 그대 탄식하라.
그러나 꿇어앉아 고요히
빌라, 힘있게 경건하게,
그대의 밤 가운데
그대를 지키고 있는 아름다운 신을
멍에는 괴롭고 짐은 무거워도
두드리던 문은 멀지 않아 열릴지니
가슴에 품고 있는 명멸(明滅)의 그 등잔을
부드러운 예지의 기름으로
채우고 또 채우라.
그리하면 목숨의 봄 둔덕의
삶을 감사하는 높은 가지
잊었던 진리의 몽우리에 잎은 피며
신앙의 불붙는 고운 잔디
그대의 헐벗은 영을 싸 덮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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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으로 오는 한 사람
나이 차지면서 가지게 되었노라
숨어 있던 한 사람이 언제나 나의
다시 깊은 잠 속의 꿈으로 와라
불그렷한 얼굴에 가늣한 손가락의
모르는 듯한 거동도 전날의 모양대로
그는 야젓이 나의 팔 위에 누워라
그러나 그래도 그러나!
말할 아무것이 다시 없는가!
그냥 먹먹할 뿐 그대로
그는 일어라. 닭의 홰치는 소리
깨어서도 늘 길거리엣 사람을
밝은 대낮에 빗보고는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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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저뭅니다.
해가 산마루에 올라와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밝은 아침이라고 할 것입니다.
땅이 꺼져도 하늘이 무너져도
내게 두고는 끝까지 모두 다 당신 때문에 있습니다.
다시는, 나으 l이러한 맘뿐은, 때가 되면,
그림자같이 당신한테로 가오리다.
오오, 나의 애인이었던 당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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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紙鳶)
오후의 네길거리 해가 들었다
시정(市井)의 첫 겨우르이 적막함이여
우둑히 문 어구에 혼자 섰으면
흰 눈의 잎사귀 지연이 뜬다.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2012-03-06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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