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김소월의 시(詩)

소월 시/따라 써보기 -1998년 2월 2일 -2월 26일 (125편 필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0. 7. 2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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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 시 따라 쓰기

ㄱ 제목의 시

1
가는 길/소월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番)……

저 산(山)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깁니다

앞강(江)물, 뒷 강(江)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98.02.02/ 오후 3시 55분
▷ 연달아 : 연(連)달아. 연이어. 계속해서 이어지는.
▷ 흐릅디다려 : '흐릅디다'와 '그려'의 융합형

2
가을 아침에


어둑한 퍼스렷한 하늘 아래서
회색(灰色)의 지붕들은 번쩍거리며,
성깃한 섶나무의 드문 수풀을
바람은 오다가다 울며 만날 때,
보일락말락하는 멧골에서는
안개가 어스러히 흘러쌓여라.

아아 이는 찬비 온 새벽이러라.
냇물도 잎새 아래 얼어붙누나.
눈물에 쌓여 오는 모든 기억( 記憶)은
피흘린 상처(傷處)조차 아직 새로운
가주난 아기같이 울며 서두는
내 영(靈)을 에워싸고 속살거려라.

그대의 가슴속이 가볍던 날
그리운 그 한때는 언제였었노!
아아 어루만지는 고운 그 소리
쓰라린 가슴에서 속살거리는,
미움도 부끄럼도 잊은 소리에,
끝없이 하염없이 나는 울어라.

08.02.02/ 오후 4시 14분
▷ 퍼스렷한 - [형용사]푸르스름하다.
▷ 섶나무 - [명사]잎나무, 풋나무, 물거리 따위의 땔나무를 통틀어서 일컫는 말.
▷ 멧골 - 산골
▷ 가주난 - [동사]갓나다. 금방나다. '가주난 아기' 는 '갓난아이' 라는 뜻.
▷ 가늘라. 갓난애. 갓난이. 갓난아이 - 난 지 얼마되지 않는 아이./ 신생아
▷ 속살거려라 - [동사]속살거리다. 잇달아 속닥거리는 소리가 나다.

3
가을 저녁에

물은 희고 길구나, 하늘보다도.
구름은 붉구나, 해보다도.
서럽다, 높아가는 긴 들 끝에
나는 떠돌며 울며 생각한다, 그대를.

그늘 깊이 오르는 발 앞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길은 앞으로.
키 높은 나무 아래로, 물 마을은
성긋한 가지가지 새로 오른다

그 누가 온다고 한 언약(言約)도 없건마는!
기다려 볼 사람도 없건마는!
나는 오히려 못 물가를 싸고 떠돈다.
그 못물로는 놀이 잦을 때.

08.02.02/오후 4시 20분
▷ 성긋한 - [동사]성긋하다 - 이리저리로 사이가 떠서 빈 자리가 많다. 의 활용형
▷ 잦을 - ]동사]잦다 - 설레이던 기운이 잠잠해지거나 가라앉다. 의 활용형


4
강촌(江村)

날 저물고 돋는 날에
흰 물은 솰솰……
금모래는 반짝…….

청(靑)노새 몰고 가는 낭군(郎君)!
여기는 강촌(江村)
강촌(江村)에 내 몸은 홀로 사네.
말하자면 나도 나도
늦은 봄 오늘 다 진(盡)토록
백년처권(百年妻眷)을 울고 가네
길세 저문 나는 선비,
당신은 강촌(江村)에 홀로 된 몸.


▷ 청(靑)노새 : [명] 푸른빛을 띤 노새.
▷ 백년처권(百年妻眷) : 처권은 아내와 친족(親族)을 뜻함. 백년가족. 백년식구.
▷ 저문 : 날이 저문. 날씨가 저물은. 평북방언 길쎄는 날씨를 뜻한다.

08.02.03/ 아침 8시 47분


5
개아미

진달래 꽃이 피고
바람은 버들가지에서 울 때,
개아미는
허리 나긋한 개아미는
봄날의 한나절, 오늘 하루도
고달피 부지런히 집을 지어라.

08.02.03/ 아침 8시 55분
▷ 개아미 : [명] 개미.



6
개여울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히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물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 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約束)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08.02.03/오후 3시 8분
개여울 - 개울의 여울
개울 - 골짜기에서 흐르는 작은 내.
여울 - 강이나 바다에 물살이 세게 흐르는 얕은 곳.
헤적이다 - 무엇을 들추거나 벌리며 헤치다. 해작이다.
바람이 낙엽을 헤적이다. 헤작이기만 하고 밥을 먹지는 않았다.


▷ 않노라심은 : '않노라'와 '하심은'의 융합형.


7
개여울의 노래

그대가 바람으로 생겨났으면!
달 돋는 개여울의 빈 들 속에서
내 옷의 앞자락을 불기나 하지.

우리가 굼벵이로 생겨났으면!
비오는 저녁 캄캄한 영 기슭의
미욱한 꿈이나 꾸어를 보지.

만일에 그대가 바다 난끝의
벼랑에 돌로나 생겨났으면
둘이 안고 굴며 떨어나지지.

만일에 나의 몸이 불귀신(鬼神)이면
그대의 가슴속을 밤도와 태와
둘이 함께 재 되어 스러지지.

08.0203/오후 3시 21분
미욱하다 - 됨됨이나 하는 짓이 어리석고 미련하다.
매욱하다 - 어리석고 아둔하다.
우치愚癡 - 매우 어리석고 미욱함.

▷ 개여울 : 개와 여울의 결합형. 개는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 혹은 개울을 뜻 한다. 여울은 물살이 세고 빠르게 흐르는 곳을 말한다.
▷ 영 : [명] 영(嶺). 재.
▷ 미욱한 : [형] 미욱하다. 됨됨이가 어리석고 미련하다.
▷ 굴며 : [동] 구르다. 구르며.
▷ 불귀신(鬼神) : [명] 불을 맡아 다스리거나 불을 낸다고 하는 귀신.
▷ 밤도아 : 밤새도록.
▷ 태와 : 태워.


8
구름

저기 저 구름을 잡아타면
붉게도 피로 물든 저 구름을,
밤이면 새카만 저 구름을.
잡아타고 내 몸은 저 멀리로
구만리(九萬里) 긴 하늘을 날아 건너
그대 잠든 품속에 안기렸더니,
애스러라, 그리는 못한대서,
그대여, 들으라 비가 되어
저 구름이 그대한테 내리거든
생각하라, 밤저녁, 내 눈물을

08.02.03/ 오후 3시 31분
▷ 애스러라 : 애(哀)스럽다(가엽고 애처럽다)의 활용형.
▷ 못한대서 : 못한다고 하여서.


9
귀뚜라미
산(山)바람 소리
찬비 뜯는 소리.
그대가 세상(世上) 고락(苦樂) 말하는 날 밤에,
순막집 불도 지고 귀뚜라미 울어라.

08.02.03/ 오후 3시 33분
▷ 뜯는 : [동] 뜯다. 내리다.
▷ 순막집 : [명] 주막집.


10
그를 꿈꾼 밤

야밤중, 불빛이 발갛게
어렴풋이 보여라.

들리는 듯, 마는 듯,
발자국 소리.
스러져 가는 발자국 소리.

아무리 혼자 누어 몸을 뒤재도
잃어버린 잠은 다시 안와라.

야밤중, 불빛이 발갛게
어렴풋이 보여라.

08.02.03/ 저녁 7시 50분
▷ 야밤중 : [명] 한밤중. 야(夜)밤중(中).
▷ 뒤재도 : [동] 뒤척이다. 뒤척여도.



11
금(金)잔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深深山川)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深深山川)에도 금잔디에.


08.02.03/ 저녁 7시 55분


12
기억(記憶)

달 아래 시멋 없이 섰던 그 여자(女子),
서있던 그 여자(女子)의 해쓱한 얼굴,
해쓱한 그 얼굴 적이 파릇함.
다시금 실 뻗듯한 가지 아래서
시커먼 머리낄은 번쩍거리며,
다시금 하룻밤의 식는 강(江)물을
평양(平壤)의 긴 단장은 슷고 가던 때.
오오 그 시멋 없이 섰던 여자(女子)여!

그립다 그 한밤을 내게 가깝던
그대여 꿈이 깊던 그 한동안을
슬픔에 귀여움에 다시 사랑의
눈물에 우리 몸이 맡기웠던 때.
다시금 고즈넉한 성(城)밖 골목의
사월(四月)의 늦어가는 뜬눈의 밤을
한두 개(個) 등(登)불 빛은 울어 새던 때.
오오 그 시멋 없이 섰던 여자(女子)여!


▷ 시멋 없이 : 생각없이 멍하니.
▷ 적이 : [부] 적잖이. 얼마간.
▷ 머리낄 : [명] 머리카락.
▷ 단장 : [명] 단장(短墻). 나지막한 담.
▷ 슷고 : [동] 스치다.




13


어제도 하룻밤
나그네 집에
까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리(十里)
어디로 갈까.

산(山)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곽산(定州郭山)
차(車)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저 기러기
열 (十字)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길은 없소.


▷ 정주곽산(定州郭山) : 정주와 곽산. 곽산군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주군에 통 합되었다. 정주군 곽산면.


14
깊고 깊은 언약

몹쓸은 꿈을 깨어 돌아누을 때,
봄이 와서 멧나물 돋아나올 때,
아름다운 젊음이 앞을 지날 때,
잊어버렸던 듯이 저도 모르게,
얼결에 생각나는 깊고 깊은 언약

▷ 멧나물 : [명] 산나물.
▷ 얼결 : [부] 엉겁결. 갑자기, 얼떨결.



15
깊이 믿던 심성(心誠)

깊이 믿던 심성(心誠)이 황량(荒凉)한 내 가슴 속에,
오고사는 두서너 구우(舊友)를 보면서 하는 말이
이제는, 당신네들도 다 쓸데없구려!


▷ 심성(心誠) : [명] 성심(誠心). 정성스러운 마음.
▷ 구우(舊友) : [명] 옛날의 친구. 옛날의 벗.

16
꽃(촉燭)불 켜는 밤


꽃촉(燭)불 켜는 밤, 깊은 골방에서 만나라.
아직 젊어 모를 몸, 그래도 그들은
해와 같이 밝은 맘, 저저마다 있노라.
그러나 사랑은 한두 번(番)만 아니라, 그들은 모르고.

꽃촉(燭)불 켜는 밤, 어스러한 창(窓) 아래 만나라.
아직 앞길 모를 몸, 그래도 그들은
솔대 같이 굳은 맘, 저저마다 있노라
그러나 세상은, 눈물날 일 많아라, 그들은 모르고.


▷ 저저마다 있노라 : 저마다 각각 있노라.
▷ 솔대 : 소나무와 대나무


17
꿈(1)


닭 개 짐승조차도 꿈이 있다고
이르는 말이야 있지 않은가.
그러하다, 봄날은 꿈 꿀 때.
내 몸에야 꿈이야 있으랴,
아아 내 세상의 끝이여,
나는 꿈이 그리워, 꿈이 그리워.

08.02.03/밤 8시 22분

18
꿈(2)


꿈? 영(靈)의 헤적임. 설움의 고향(故鄕).
울자, 내 사랑, 꽃 지고 저무는 봄.


▷ 헤적임 : 헤적이다(들추거나 파서 헤치다)의 명사형.

08.02.03/ 밤 8시 24분


19
꿈길

물구슬의 봄 새벽 아득한 길
하늘이며 들 사이에 넓은 숲
젖은 향기(香氣) 불긋한 잎 위의 길
실그물의 바람 비쳐 젖은 숲
나는 걸어가노라 이러한 길
밤저녁의 그늘진 그대의 꿈
흔들리는 다리 위 무지개 길
바람조차 가을 봄 걷히는 꿈


08.02.03/ 밤 8시 26분


20
꿈꾼 그 옛날

밖에는 눈, 눈이 와라,
고요히 창(窓) 아래로는 달빛이 들어라.
어스름 타고서 오신 그 여자(女子)는
내 꿈의 품속으로 들어와 안겨라.

나의 베개는 눈물로 함빡히 젖었어라.
그만 그 여자(女子)는 가고 말았느냐.
다만 고요한 새벽, 별 그림자 하나가
창(窓)틈을 엿보아라.

08.02.03/ 밤 8시 29분
▷ 어스름 : [명] 새벽이나 저녁의 어스레한 빛.
▷ 함빡히 : [부] 함빡. 흠뻑의 작은 말.

21
꿈으로 오는 한 사람

나이 차라지면서 가지게 되었노라
숨어 있던 한 사람이, 언제나 나의,
다시 깊은 잠속의 꿈으로 와라
붉으렷한 얼굴에 가늣한 손가락의,
모르는 듯한 거동(擧動)도 전(前)날의 모양대로
그는 야젓이 나의 팔 위에 누워라
그러나 그래도 그러나!
말할 아무것이 다시 없는가!
그냥 먹먹할 뿐, 그대로
그는 일어라. 닭의 홰치는 소리.
깨어서도 늘, 길거리에 사람을
밝은 대낮에 빗보고는 하노라


08.02.03/ 밤 8시 34분
▷ 차라지면서 : 나이가 차지면서. 나이 들면서.
▷ 가늣한 : [형] 가느다란.
▷ 야젓이 : [부] 의젓이의 작은 말.
▷ 일어라. : 일어나라.
▷ 홰치는 소리 : 닭이나 새가 날개를 탁탁치는 소리.
▷ 빗보고는 : 빗보다. 실제와 다르게 보다. 착각하여 잘못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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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제목의 시
22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萬壽山)을 나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도
오늘 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苦樂)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怜悧)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스랴.
재석산(帝釋山)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의
무덤에 풀이라도 태웠으면!


08.02.03/ 밤 8시 43분
▷ 만수산(萬壽山) : 개성 송악산의 다른 이름. 중국 북경시 북서쪽 교외에 있는 산.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명승지로서 완소우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태종 이방원의 시조에도 만수산이 등장한다. 소월의 고향 근처 산을 지칭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정주 근방의 산이름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 제석산(帝釋山) : 높이 218m의 잔구(殘丘)로서 정주평야에 있는 작은 산.
잔구殘丘 - 준평원 위에 홀로 남아 있는 언덕. 주위의 땅이 낮아짐으로써 이루어진다.


23
나의 집

들가에 떨어져 나가 앉은 메기슭의
넓은 바다의 물가 뒤에,
나는 지으리, 나의 집을,
다시금 큰길을 앞에다 두고.
길로 지나가는 그 사람들은
제각금 떨어져서 혼자 가는 길.
하이얀 여울턱에 날은 저물 때.
나는 문(門)간에 서서 기다리리
새벽새가 울며 지새는 그늘로
세상은 희게, 또는 고요하게,
번쩍이며 오는 아침부터,
지나가는 길손을 눈여겨보며,
그대인가고, 그대인가고.

08.02.03/밤 8시 48분
▷ 메기슭 : [명] 산기슭.
▷ 그대인가고 : '그대인가 하고'를 줄인말.

내가 좋아하는 소월 시

24
낙천(樂天)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맘을 그렇게나 먹어야지,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꽃 지고 잎 진 가지에 바람이 운다.

08.02.03/ 밤 11시 9분
▷ 낙천(樂天) : 하는 일에 긍정적이며, 어려움을 예상하지 않는 태도를 말함.



25
남의 나라 땅

돌아다 보이는 무쇠다리
얼결에 띄워 건너서서
숨 고르고 발 놓는 남의 나라 땅.


08.02.03/밤 11시 11분
▷ 무쇠다리 : [명] 무쇠로 만든 다리. 주철(鑄鐵)로 된 다리.
▷ 숨 고르고 : 숨을 고르다(정상적인 상태로 순조롭게 하다)의 활용형.


26


성촌(城村)의 아가씨들
널 뛰노나
초파일 날이라고
널을 뛰지요

바람 불어요
바람이 분다고!
담 안에는 수양(垂楊)의 버드나무
채색(彩色)줄 층층(層層) 그네 매지를 말아요

담밖에는 수양(垂楊)의 늘어진 가지
늘어진 가지는
오오 누나!
휘젓이 늘어져서 그늘이 깊소.

좋다 봄날은
몸에 겹지
널 뛰는 성촌(城村)의 아가씨네들
널은 사랑의 버릇이라오


08.02.03/11시 17분
▷ 초파일 : 본음은 초팔일. 불교에서는 팔일(八日)을 파일이라 한다.
▷ 수양(垂楊) : [명] 수양버들의 준말.
▷ 휘젓이 늘어져서 : 휘청이듯이 길게 늘어진 모양을 나타내는 말.
▷ 겹지 : 겹다(정도가 지나쳐 배겨내기 어려운 기분. 북받쳐 누를 수 없는 감정상태를 나타 내는 말)의 활용형.


27


새하얀 흰눈, 가비엽게 밟을 눈,
재가 타서 날릴 듯 꺼질 듯한 눈,
바람엔 흩어져도 불길에야 녹을 눈,
계집의 마음, 님의 마음,


▷ 가비엽게 : 가볍게.

28
눈 오는 저녁

바람 자는 이 저녁
흰눈은 퍼붓는데
무엇하고 계시노
같은 저녁 금년(今年)은……

꿈이라도 꾸면은!
잠들면 만날련가.
잊었던 그 사람은
흰 눈 타고 오시네.

저녁때. 흰눈은 퍼부어라

08.02.03/ 11시 29분


29
님과 벗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꽃 피어서 향기(香氣)로운 때를
고초(苦草)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08.02.03/ 밤 11시 29분
▷ 고초(苦草) : [명] '고추'의 원말.


30
님에게

한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당신 생각에
추거운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낯모를 딴 세상의 네길거리에
애달피 날 저무는 갓 스물이요
캄캄한 어두운 밤 들에 헤매도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당신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비오는 모래밭에 오는 눈물의
추거운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08.02.03/밤 11시 32분
▷ 추거운 : [형] 축축한. 평안방언.


31
님의 노래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門) 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들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래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孤寂)한 잠자리에 홀로 누어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 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08.02.03/ 밤 11시 37분
▷ 고적(孤寂)한 : 외롭고 적적함.


32
님의 말씀

세월이 물과 같이 흐른 두 달은
길어 둔 독엣물도 찌었지만은
가면서 함께 가자 하던 말씀은
살아서 살을 맞는 표적이외다

봄풀은 봄이 되면 돋아나지만
나무는 밑그루를 꺾은 셈이요
새라면 두 죽지가 상(傷)한 셈이라
내 몸에 꽃필 날은 다시 없구나

밤마다 닭 소리라 날이 첫시(時)면
당신의 넋맞이로 나가볼 때요
그믐에 지는 달이 산(山)에 걸리면
당신의 길신가리 차릴 때외다

세월은 물과 같이 흘러가지만
가면서 함께 가자 하던 말씀은
당신을 아주 잊던 말씀이지만
죽기 전(前) 또 못 잊을 말씀이외다

08.02.04/ 아침 8시 51분
▷ 독엣물 : [명] 독(물동이)에 담아 놓은 물.
▷ 찌었지마는 : [동] 말라서 줄어들다.
▷ 살 : [명] 화살.
▷ 표적이외다 : 표적입니다.
▷ 죽지 : 날개.
▷ 길신가리 : 길일(吉日)을 정해 죽은 사람의 복을 빌어주는 것. '길신(吉辰)'과 '가리'의 결합형.
길신吉辰 - 좋은 날.


33
달맞이

정원(正月) 대보름달 달맞이,
달맞이 달마중을, 가자고!
새라 새 옷은 갈아입고도
가슴엔 묵은 설움 그대로,
달맞이 달마중을, 가자고!
달마중 가자고 이웃집들!
산(山)위에 수면(水面)에 달 솟을 때,
돌아들 가자고, 이웃집들!
모작별 삼성이 떨어질 때.
달맞이 달마중을 가자고!
다니던 옛동무 무덤가에
정월(正月) 대보름날 달맞이!

0.02.04/ 아침 8시 59분
▷ 새라 : 새로운.
▷ 삼성 : [명] 삼성(參星). 오리온(Orion) 자리에 있는 삼성(參星). 오리온 자리는 겨울철 남 쪽 하늘의 별자리인데, 눈에 띠기 쉬워 겨울 밤하늘의 왕자라고 할 수 있는 별자리이다. 그리스 신화의 용사 오리온을 상징하며, 3개의 별은 용사의 띠에 해당한다.



34
닭소리

그대만 없게 되면
가슴 뛰는 닭소리 늘 들어라.

밤은 아주 새어올 때
잠은 아주 달아날 때

꿈은 이루기 어려워라.

저리고 아픔이여
살기가 왜 이리 고달프냐.

새벽 그림자 산란(散亂)한 들풀 위를
혼자서 거닐어라.

08.02.04/아침 9시 2분
▷ 새어올 : [동] 새다. 새어오다. 밝아오다.
▷ 산란(散亂)한 : 어지럽고 어수선하다. 산란은 파동(波動)이나 입자선(粒子線)이 물체에 부 딪쳐 여러 방향으로 불규칙하게 흩어진 모습을 말한다.


35
담배

나의 긴 한숨을 동무하는
못 잊게 생각나는 나의 담배!
내력(來歷)을 잊어버린 옛시절(時節)에
낳다가 새 없이 몸이 가신
아씨님 무덤 위의 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어라.
어물어물 눈앞에 쓰러지는 검은 연기(煙氣)
다만 타붙고 없어지는 불꽃.
아 나의 괴로운 이 맘이여.
나의 하염없이 쓸쓸한 많은 날은
너와 한가지로 지나가라.

08.02.04/ 오전 11시 38분
▷ 내력(來歷) : [명] 겪어온 자취. 지나온 경로(經路).
▷ 새 없이 : '-할 사이 없이'. 경황없이. 곧바로


36
두 사람

흰눈은 한 잎
또 한 잎
영(嶺) 기슭을 덮을 때.
짚신에 감발하고 길심매고
우뚝 일어나면서 돌아서도……
다시금 또 보이는
다시금 또 보이는.


▷ 감발 : [명] 발감개. 발감개를 한 차림새.
▷ 길심매고 : [동] 길을 떠날 때 옷의 차림새를 단단하게 여미다.
▷ 다시금 : '다시'와 '-금'의 결합형. -금은 중세국어의 -곰에 해당한다. -곰은 강조를 나 타내는 특수조사였다.


37
들돌이

들꽃은
피어
흩어졌어라.

들풀은
들로 한 벌 가득히 자라 높았는데
뱀이 헐벗은 묵은 옷은
길 분전의 바람에 날아 돌아라.

저 봐아, 곳곳이 모든 것은
번쩍이며 살아 있어라.
두 나래 펼쳐 떨며
소리개도 높이 떴어라.

때에 이내 몸
가다가 또 다시 쉬기도 하며,
숨에 찬 내 가슴은
기쁨으로 채워져 사뭇 넘쳐라.

걸음은 다시금 또 더 앞으로……


08.02.4/ 밤 11시 35분
▷ 들돌이 : 들(野)과 돌(回)과 명사파생접사 -이의 결합형으로 산과 들을 돌며 노는 일을 뜻하는 말.
▷ 분전 : 분전(焚田). 화전(火田).
▷ 소리개 : [명] 솔개. 수릿과의 새. 몸빛은 암갈색이며 가슴에 흑색의 세로 무늬가 있다.


38
마른 강(江)두덕에서

서리맞은 잎들만 쌔울지라도
그 밑에야 강(江)물의 자취 아니랴
잎새 위에 밤마다 우는 달빛이
흘러가던 강(江)물의 자취 아니랴

빨래 소리 물소리 선녀(仙女)의 노래
물 스치던 돌 위엔 물 때 뿐이랴
물 때 묻은 조약돌 마른 갈숲이
이제라고 강(江)물의 터야 아니랴

빨래 소리 물소리 선녀(仙女)의 노래
물 스치던 돌 위엔 물 때 뿐이라


▷ 강(江)두덕 : : [명] 강의 둔덕.
▷ 쌔울지라도 : [동] 쌓이다. 쌓일지라도. 소월시에서 '쌓다'의 피동형 '쌓이다'는 '쌔우다' 로 나타난다.
▷ 터야 아니랴 : 터가 아니겠는가.

08.0204/ 밤 11시 55분



39
만나려는 심사(心思)

저녁해는 지고서 어스름의 길,
저 먼 산(山)엔 어두워 잃어진 구름,
만나려는 심사는 웬 셈일까요,
그 사람이야 올 길 바이없는데,
발길은 누 마중을 가잔 말이냐.
하늘엔 달 오르며 우는 기러기.


08.02.04/ 오전 00시 08분
▷ 심사(心思) : 마음. 생각.
▷ 바이없는데 : 바이없다(전혀 없다, 아주 없다)의 활용형.
▷ 누 : [명] '누구'의 바뀐말.


40
만리성(萬里城)


밤마다 밤마다
온 하루밤!
쌓았다 헐었다
긴 만리성(萬里城)

08.02.05/ 오전 00시 30분


41
맘 켕기는 날

오실 날
아니 오시는 사람!
오시는 것 같게도
맘 켕기는 날!
어느덧 해도 지고 날이 저무네!

08.02045/ 오전 00시 32분


42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 보냐

하소연하며 한숨을 지으며
세상을 괴로워 하는 사람들이여!
말을 나쁘지 않도록 좋게 꾸밈은
달라진 이 세상의 버릇이라고, 오오 그대들!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보냐.
두세 번(番) 생각하라, 위선(僞先) 그것이
저부터 밑지고 들어가는 장사일진댄.
사는 법(法)이 근심은 못 같은다고,
남의 설움을 남은 몰라라.
말 마라, 세상, 세상 사람은
세상에 좋은 이름 좋은 말로써
한 사람을 속옷마저 벗긴 뒤에는
그를 네길거리에 세워 놓아라, 장승도 마찬가지.
이 무슨 일이냐, 그날로부터,
세상 사람들은 제각금 제 비위(脾胃)의 헐한 값으로
그의 몸값을 매마쟈고 덤벼들어라.
오오 그러면, 그대들은 이후에라도
하늘을 우러르라, 그저 혼자, 섦거나 괴롭거나

08.0205/ 오전 00시 39분

▷ 위선(爲先) : [부] 우선.
▷ 못 같은다고 : 못 같다고. 같지 않다고.
▷ 제각금 : 저마다 각각. 사람마다 각각.
▷ 비위(脾胃) : [명] '지라와 위'를 아울러 부르는 말에서 온 말로, 무엇을 먹고 싶거나 하 고 싶은 기분이나 생각. 잘 삭여 내거나 원만하게 상대하여 내는 성미를 나타낸다.
▷ 매마쟈고 : 매매(賣買)하자고. 팔고 사자고.



43
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08.02.05/ 오전 11시 59분

44
몹쓸 꿈

봄 새벽의 몹쓸 꿈
깨고 나면!
우짖는 까막소리, 놀라는 소리,
너희들은 눈에 무엇이 보이느냐.

봄철의 좋은 새벽, 풀이슬 맺혔어라.
불지어다, 세월(歲月)은 도무지 편안(便安)한데,
두새없는 저 까마귀, 새들게 우짖는 저 까치야,
나의 흉(凶)한 꿈 보이느냐?

고요히 또 봄바람은 봄의 빈 들을 지나가며,
이윽고 동산에서는 꽃잎들이 흩어질 때,
말 들어라, 애틋한 이 여자(女子)야, 사랑의 때문에는
모두다 사나운 조짐(兆朕)인 듯, 가슴을 뒤노아라.


▷ 까막까치 : [명] 오작(烏鵲) 즉 까마귀와 까치를 아우르는 말, 혹은 '까만 까치'를 뜻하는 말로 볼 수 있다.
▷ 두새없는 : '두서없는'이 변한 말로, '이랬다 저랬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의 뜻이다.
▷ 새들게 : 혼자 지껄이는. 들떠서 혼자 까불거리는.
▷ 애틋한 : [형] 애틋하다. 애가 타는 듯 하다. 아쉽고 은근하고 안타깝다.
▷ 뒤노아라 : 안정되지 않고 흔들리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새들게/새되다 - 목소리가 높고 날카롭다


45
못 잊어

못 잊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끝 이렇지요,
그리워 살틀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나지요?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08.02.05/밤 9시29분
▷ 한끝 : [부] 한편으로.
▷ 살틀히 : [부] 살뜰히.


46
무덤

그 누가 나를 헤내는 부르는 소리
붉으스름한 언덕, 여기저기
돌무더기도 움직이며, 달빛에
소리만 남은 사랑 서리워 엉겨라,
옛 조상(祖上)들의 기록(記錄)을 묻어둔 그곳!
나는 두루 찾노라, 그곳에서,
형적 없는 노래 흘러 퍼져,
그림자 가득한 언덕으로 여기저기,
그 누군가 나를 헤내는 부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내 넋을 잡아 끌어 헤내는 부르는 소리.

08.02.05/밤 9시34분

▷ 헤내는 : 헤어나게 하는. 벗어나게 하는.
▷ 서리워 : 서리다(김이나 안개가 끼거나 어리다. 나무 줄기나 가지가 얼키다.)의 활용형.
▷ 형적 없는 : 형적(形迹) 없다(형상과 자취가 없다. 모습의 흔적이 없다.)의 활용형.


47
무신(無信)

그대가 돌이켜 물을 줄도 내가 아노라,
무엇이 무신(無信)함이 있더냐? 하고,
그러나 무엇하랴 오늘날은
야속히도 당장에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그것을, 물과 같이
흘러가서 없어진 맘이라고 하면.

검은 구름은 메기슭에서 어정거리며,
애처롭게도 우는 산(山)의 사슴이
내 품에 속속들이 붙안기는 듯,
그러나 밀물도 쎄이고 밤은 어두워
닻 주었던 자리는 알 길이 없어라.
시정(市井)의 흥정 일은
외상(外上)으로 주고받기고 하건마는.


08.02.06/아침 8시 23분
▷ 야속히도 : 야속하게도.
▷ 속속들이 : [부] 깊은 속까지 샅샅이.
▷ 붙안기는 : 붙다와 안기다의 합성어. 꽉껴안은. 붙안은.
▷ 쎄이고 : 조수가 빠지고. 평북방언.


48
무심(無心)

시집 와서 삼년(三年)
오는 봄은
거친 벌 난벌에 왔습니다 -->난벌을 입고 난벌에 나가

거친 벌 난벌에 피는 꽃은
졌다가도 피노라 이릅디다
소식없이 기다린
이태 삼년(三年)

바로 가던 앞 강(江)이 간봄부터
구비 돌아 휘돌아 흐른다고
그러나 말 마소, 앞여울의
물빛은 예대로 푸르렀소

시집 와서 삼년(三年)
어느 때나
터진 개 개여울의 여울물은
거친 벌 난벌에 흘렀습니다.

08.02.06/아침 8시 34분
▷ 거친 : 거친. 황량(荒凉)한.
▷ 난벌 : 확 트인 넓은 벌판.
▷ 예대로 : [부] 예전대로..
▷ 개 : [명] 개울.


49
묵년(默念)

이슥한 밤, 밤기운 서늘할 제
홀로 창(窓)턱에 걸터앉아, 두 다리 늘이우고,
첫 머구리 소리를 들어라.
애처롭게도 그대는 먼첨 혼자서 잠드누나.

내 몸은 생각에 잠잠할 때, 희미한 수풀로써
촌가(村家)의 액(厄)막이 제(祭)지내는 불빛은 새어오며,
이윽고 비난수도 머구 소리와 함께 잦아져라.
가득히 차오는 내 심령(心靈)은 …… 하늘과 땅 사이에.

나는 무심히 일어 걸어 그대의 잠든 몸 위에 기대어라
움직임 다시없이, 만(萬)는 구적(俱寂)한테,
조요히 내려 비추는 별빛들이
내 몸을 이끌어라, 무한(無限)히 더 가깝게.

08.02.06/아침 8시 44분
▷ 걸어앉아 : 걸어앉다(높은 곳에 궁둥이를 붙이고 두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다)의 활용형.
▷ 늘이우고 : 늘이우다(늘리다. 아래로 두 다리를 길게 늘어지게 하다)의 활용형.
▷ 먼첨 : 먼저.
▷ 액(厄)막이 : [명] 앞으로 닥칠 액운(厄運)을 미리 막는 일.
▷ 비난수 : [명] 소망하는 것을 귀신에게 기원(祈願)하며 공을 드리는 일.
▷ 만뢰(萬??)는 구적(俱寂)한데 : 만뢰구적(萬?威蛔?: 밤이 깊어 아무 소리도 없이 적막하고 고요함)을 풀어 쓴 말.
▷ 조요(照耀)히 : [형] 빛이 밝게 비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비숙원/비손- 손을 비비면서 신에세 소원을 비는 일.


50
물마름

주으린 새무리는 마른 나무의.
해지는 가지에서 재갈이던 때.
온종일 흐르던 물 그도 곤(昆)하여
놀지는 골짜기에 목이 매던 때.

그 누가 알았으랴 한쪽 구름도
걸려서 흐느끼는 외로운 영(嶺)을
숨차게 올라서는 여윈 길손이
달고 쓴 맛이라면 다 겪은 줄을.

그곳이 어디드냐 남이장군(南怡將軍)이
말 먹여 물 찌었던 푸른 강(江)물이
지금에 다시 흘러 뚝을 넘치는
천백리(千百里) 두만강(豆滿江)이 예서 백십리(百十里).
무산(茂山)의 고개가 예가 아니냐
누구나 예로부터 의(義)를 위하여
싸우나 못 이기면 몸을 숨겨서
한때의 못난이가 되는 법이라.

그 누가 생각하랴 삼백년래(三百年來)에
참아 받지 다 못할 한(限)과 모욕(侮辱)을
못 이겨 칼을 잡고 일어섰다가
인력(人力)의 다함에서 쓰러진 줄을.

부러진 대쪽으로 활을 메우고
녹슬은 호미쇠로 칼을 별러서
도둑(毒)된 삼천리(三千里)에 북을 울리며
정의(正意)의 기(旗)를 들던 그 사람이여.
그 누가 기억(記憶)하랴 다복동(多福洞)에서
피물든 옷을 입고 외치던 일을
정주성(定州城) 하룻밤의 지는 달빛에
애그친 그 가슴이 숫기 된 줄을.

물위의 뜬 마름에 아침 이슬을
불붙는 산(山)마루에 피었던 꽃을
지금에 우러르며 나는 우노라
이루며 못 이룸에 박(薄)한 이름을.

08.0206/아침 9시 14분
▷ 재갈이던 : 재깔대던. 재깔거리던. 재잘거리던. 평북방언.
▷ 메던 : [동] 메다. 막히다.
▷ 남이장군(南怡將軍) : 조선시대의 장군(1441-68) 17세에 무과(武科)에 장원 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였고, 28세에 병조판서가 되었다. 유자광(柳子光)의 모함을 받아 주살(誅殺)되었다.
▷ 찌었던 : [동] 찌다. 줄어들다.
▷ 무산(茂山) : 함경북도 무산군의 군청 소재지. 두만강을 넘으면 중국 간도지방에 다다르는 국경의 요충지대.
▷ 별러서 : [동] 벼르다. 무딘 연장의 날을 갈아 날카롭게 만듬.
▷ 도독(?莞?)된 : [명] 씀바귀의 독. 심하게 해독(害毒)된.
▷ 다복동(多福洞) : 홍경래(洪景來:1780-1812)가 거사(擧事)의 본거지로 삼았던 가산(嘉山)의 동(洞) 이름.
▷ 정주성(定州城) : 평안북도 남서해안에 위치한 정주군 내의 성(城). 1881년(순조 11) 12월 2천여 병력을 동원하여 평서대원수(平西大元帥)를 자칭하며 난을 일으켰던 홍경래가 정주성에서 최후를 마쳤다.
▷ 애그친 : 애그친. 애(哀)와 그치다의 결합형.
▷ 숫기 : [명] 숯. 함경방언
▷ 우러르며 : [동] 우러르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다.


51
바다

뛰노는 흰물결이 일고 또 잦는
붉은 풀이 자라는 바다는 어디

고기잡이꾼들이 배 위에 앉아
사랑 노래 보르는 바다는 어디

파랗게 죠히 물든 남(藍)빛 하늘에
저녁놀 스러지는 바다는 어디

곳 없이 떠다니는 늙은 물새가
떼를 지어 좇니느 바다는 어디

건너서서 저편(便)은 딴 나라이라
가고 싶은 그리운 바다는 어디

곳 없이 떠다니는 늙은 물새가
떼를 지어 좇니는 바다는 어디


▷ 잦다 : [동] 잦아지다. 점점 줄어들어 잠잠해지다.
▷ 죠히 : 좋이. '좋게'라는 뜻이다.
▷ 남(藍)빛 : [동] 남색(藍色). 파랑과 보라의 중간색. 쪽빛.
▷ 스러지는 : [동] '사라지는' 혹은 '쓰러지는'의 이중적 뜻을 가진 말.
▷ 좇니는 : [동] 좇니다. 쫓아다니는.

52
바다가 변(變)하여 뽕나무밭 된다고

걷잡지 못할만한 나의 이 설움,
저무는 봄 저녁에 wu가는 꽃잎,
져가는 꽃잎들은 나부끼어라.
예로부터 일러오며 하는 말에도
바다가 변(變)하여 뽕나무밭 된다고.
그러하다, 아름다운 청춘(靑春)의 때에
있다던 온갖 것은 눈에 설고
다시금 낯 모르게 되나니,
보아라, 그대여, 서럽지 않은가,
봄에도 삼월(三月)의 져가는 날에
붉은 피같이도 쏟아쳐 내리는
저기 저 꽃잎들을, 저기 저 꽃잎들을.


08.0206/오전 10시 14분
▷ 바다가 변(變)하여 뽕나무밭 된다고 : 한자어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밭이 변하여 푸른 바닷가 된다)는 말을 풀어쓴 것으로, 세상의 변화가 크게 일어난 것을 비유하는 말.
▷ 져가는 : 저물어 가는.
▷ 쏟아쳐 : '쏟아져'의 거센말.


53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 대일 땅이 있었드면

나는 꿈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즈란히
벌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夕陽)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울,
즐거이, 꿈 가운데.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대일 땅이 있었드면!
이처럼 떠돌으랴, 아침에 저물손에
새로 새릅은 탄식(歎息)을 얻으면서.

동(東)이랴, 남북(南北)이랴,
내 몸은 떠가나니, 볼지어다,
희망(希望)의 반짝임은, 별빛이 아득임은.
물결뿐 떠올라라, 가슴에 팔다리에.

그러나 어쩌면 황송한 이 (心情)을! 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
자칫 가늘은 길이 이어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보이는 산(山)비탈엔
온 새벽 동무들 저저 혼자 …… 산경(山耕)을 김매이는.

08.02.06/ 낮 1시 54분

▷ 가즈란히 : [부] 가지런히. 나란히. 평북방언.
▷ 보섭 : [명] 보습. 평북방언.
▷ 저물손에 : 저물 무렵에.
▷ 새롭은 : 새롭고 새로운
▷ 저저 : 저마다. 저희들 각각이.

54
바람과 봄

봄에 부는 바람, 바람 부는 봄,
작은 가지 흔들리는 부는 봄바람,
내 가슴 흔들리는 바람, 부는 봄,
봄이라 바람이라 이내 몸에는
꽃이라 술잔(盞)이라 하며 우노라

08.02.06/ 낮 1시 57분

5
바리운 몸

꿈에 울고 일어나
들에
나와라.

들에는 소슬비
머구리는 울어라
들 그늘 어둔운데

뒷짐지고 땅 보며 머뭇거릴 때.

누가 반딧불 꾀어드는 수풀 속에서
간다 잘 살어라 하며, 노래 불러라.


08.02.06/ 낮 3시 3분
▷ 바리운 몸 : 버림받은 몸.
▷ 머구리 : [명] 개구리.
▷ 꾀어드는 : [동] 꾀다. 모여들다.


56
반(半)달

희멀끔하여 떠돈다, 하늘 위에,
빛 죽은 반(半)이 언제 올랐나!
바람은 나온다, 저녁은 춥구나,
흰 물가엔 뚜렷이 해가 드누나.

어두컴컴한 풀 없는 들은
찬 안개 위로 떠 흐른다.
아, 겨울은 깊었다, 내 몸에는,
가슴이 무너져 내려앉는 이 설움아!

가는 님은 가슴에 사랑까지 없애고 가고
젊음은 늙음으로 바뀌어 든다.
들가시나무의 밤드는 검은 가지
잎새들만 저녁빛에 희그무레히 꽃 지듯 한다.


▷ 들가시나무 : 들판에 있는 가시나무.
▷ 희그무레히 : [형] 희끄무레하다. 희끄무레하게.

57

홀로 잠들기가 참말 외로워요
맘에는 사무치도록 그리워요
이리도 무던히
아주 얼굴조차 잊힐 듯해요.

벌써 해가 지고 어둔운데요,
이곳은 인천(仁川)에 제물포(濟物浦), 이름난 곳,
부슬부슬 오는 비에 밤이 더디고
바다 바람이 춥기만 합니다.

다만 고요히 누워 들으면
다만 고요히 누어 들으면
하아얗게 밀어드는 봄 밀물이
눈앞을 가로막고 흐느낄 뿐이야요.

08.02.06/ 낮 3시 12분
▷ 제물포(濟物浦) : 제물(濟物)의 포구(浦口). '제물'은 인천의 옛이름이다.


58
밭고랑 위에서

우리 두 사람은
키 높이 가득 자란 보리밭, 밭고랑 위에 앉았어라.
일을 필(畢)하고 쉬이는 동안의 기쁨이여.
지금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꽃이 필 때.

오오 빛나는 태양(太陽)은 내려 쪼이며
새 무리들도 즐거운 노래, 노래 불러라.
오오 은혜)恩惠_여, 살아있는 몸에는 넘치는 은혜(恩惠)여,
모든 은근스러움이 우리의 맘속을 차지하여라.

세계(世界)의 끝은 어디? 자애(慈愛)의 하늘은 넓게도 덮혔는데,
우리 두 사람은 일하며, 살아 있어서,
하늘과 태양(太陽)을 바라보아라, 날마다 날마다도,
새라 새릅은 환희(歡喜)를 지어내며, 늘 같은 땅 위에서.

다시 한 번(番) 활기(活氣)있게 웃고 나서, 우리 두 사람은
바람에 일리우는 보리밭 속으로
호미 들고 들어갔어라, 가즈란히 가즈란히,
걸어 나아가는 기쁨이어, 오오 생명(生命)의 향상(向上)이여.

08.0206/ 낮 3시 18분
▷ 일리우는 : 일렁거리는.
▷ 가즈란히 : [부] 가지런히. 나란히. 평북방언.

59
봄밤

실버드나무의 검으스렷한 머리결인 낡은 가지에
제비의 넓은 깃 나래의 감색(紺色) 치마에
술집의 창(窓) 옆에, 보아라, 봄이 앉았지 않는가.

소리도 없이 바람은 불며, 울며, 한숨지워라
아무런 줄도 없이 섦고 그리운 새캄판 봄밤
보드라운 습기(濕氣)는 떠돌며 땅을 덮어라.


08.02006/ 낮 3시 57분
▷ 검으스렷한 : [형] 검은 듯한.

▷ 깃나래 : '깃'과 '날개'의 합성어.
▷ 감색(紺色) : [명] 검은빛을 띤 푸른 빛깔의 색. 청색(靑色)과 자색(紫色) 간색(間色).
▷ 줄도 없이 : 까닭도 없이.


60
봄비

어를 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를 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서럽다 이 나의 가슴속에는!
보라, 높은 구름 나무의 푸룻한 가지.
그러나 해 늦으니 어스름인가.
애달피 고운 비는 그어 오지만
내 몸은 꽃자리에 주저않아 우노라.

08.0206/ 오후 4시 2분
▷ 어룰 없이 : '어룰'은 얼굴과 대응하는 평안방언이다. '어룰 없이'는 '얼굴 없이'의 뜻이나 문맥상 '덧없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그어 : [동] 그쳐. 그치다. 멈추다.


61
부귀공명(富貴功名)


거울 들어 마주 온 내 얼굴을
좀더 미리부터 알았던들,
늙는 날 죽는 날을
사람은 다 모르고 사는 탓에,
오오 오직 이것이 참이라면,
그러나 내 세상이 어디인지?
지금부터 두여덟 좋은 연광(年光)
다시 와서 내게도 있을 말로
전(前)보다 좀더 전(前)보다 좀더
살음즉이 살련지 모르련만.
거울 들어 마주 온 내 얼굴을
좀더 미리부터 알았던들!

지금부터 두여덟 좋은 연광(年光)
다시 와서 내게도 있을 말로


▷ 두여덟 좋은 연광(年光) : '두여덟'은 2×8 즉 16을 뜻하며, '연광'은 나이를 뜻한다. 즉 16세의 좋은 나이라는 뜻이다.
▷ 살음즉이 : 사는 것 같이. 살은 듯이.

62
부모(父母)

낙엽(落葉)이 우수수 떠러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來日)날에
내가 부모(父母) 되어서 알아보랴?


63
부부(夫婦)

오오 안해여, 나의 사랑!
하늘이 묶어준 짝이라고
믿고 살음이 마땅치 아니한가.
아직 다시 그러랴, 안 그러랴?
이상하고 별나운 사람의 맘,
저 몰라라, 참인지, 거짓인지?
정분(情分)으로 얽은 딴 두 몸이라면,
서로 어그점인들 또 있으랴.
한평생(限平生)이라도 반백년(半白年)
못 사는 이 인생(人生)에!
연분(緣分)의 긴 실이 그 무엇이랴?
나는 말하려노라, 아무려나,
죽어서도 한 곳에 묻히더라.


08.0206/ 저녁 6시 27분
▷ 묶어준 : [동] 묶다(관계를 맺어주다)의 활용형.
▷ 별나운 : [형] 별납다(보통 것과 매우 다르다)의 활용형.
▷ 어그점인들 : '어긋난 점인들'을 줄여서 표현한 말.
▷ 한평생(限平生) : [명] 일평생.
▷ 연분(緣分)의 긴 실 : 사람들 사이에서 맺어지는 깊은 관계. 하늘이 베푼 인연. 전설상의 노인인 월하노인(月下老人)이 남녀의 인연을 맺어주는 실. 월하빙인(月下氷人).

64
부헝새

간밤에
뒷 창(窓) 밖에
부헝새가 와서 울더니,
하루를 바다 위에 구름이 캄캄.
오늘도 해 못 보고 날이 저무네.

▷ 부헝새 : [형] 서럽지.

08.020.06/ 저녁 6시 31분


65
분(紛) 얼굴

불빛에 떠오르는 새뽀얀 얼굴,
그 얼굴이 보내는 호젓한 냄새,
오고가는 입술의 주고받는 잔(盞),
가느스름한 손길은 아른대여라.

검으스러하면서도 붉으스러한
어렴풋하면서도 다시 분명(分明)한
줄 그늘 위에 그대의 목소리,
달빛이 수풀 위를 떠 흐르는가.

그대하고 나하고 또는 그 계집
밤에 노는 세사람, 밤의 세 사람,
다시금 술잔 위의 긴 봄밤은
소리도 없이 창(窓) 밖으로 새여 빠져라


08.02.06/저녁 8시 35분
▷ 호젓한 : [형] 호젓하다. 고요하고 쓸쓸하다.
▷ 아른대여라 : [동] 아른거리다.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다.
▷ 줄 그늘 위에 그대의 목소리 : 가야금 등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를 표현한 대목이다.

66
불운(不運)에 우는 그대여

불운(不運)에 우는 그대서, 나는 아노라
무엇이 그대의 불운(不運)을 지었는지도,
부는 바람에 날려,
밀물에 흘러,
굳어진 그대의 가슴속도,
모두 지나간 나의 일이면.
다시금 또 다시금
적황(赤黃)의 포말(泡沫)은 북고여라, 그대의 가슴속의
암청(暗靑)의 이끼여, 거치른 바위
치는 물가의.

08.02.06/ 저녁 6시 40분
▷ 북고여라 : 북고이다(물결이 기운차게 몰려와 거품을 일으키다)의 활용형.


67
붉은 조수(潮水)

바람에 밀려드는 저 붉는 조수(潮水)
저 붉은 조수(潮水)가 밀어들 때마다
나는 저 바람위에 올라서서
푸릇한 구름의 옷을 입고
불 같은 저 해를 품에 안고
저 붉은 조수(潮水)와 나는 함께
뛰놀고 싶구나, 저 붉은 조수(潮水)와.


조수.미세기 - 밀물과 썰물. 아침물과 저녁물.

▷ 조수(潮水) : [명] 달의 인력(引力)에 의해 바다물의 높이가 주기적으로 낮아졌다가 높아졌다가 하는 현상. 아침에 밀려들었다가 나가는 바닷물. 해조(海潮).
08.02.06/ 9시 45분


68
비난수 하는 맘

함께 하려노라, 비난수 하는 나의 맘,
모든 것을 한짐에 묶어 가지고 가기까지,
아침이면 이슬 맞은 바위의 붉은 줄로,
기어오르는 해를 바라다 보며, 입을 벌리고.

떠돌아라, 비난수하는 맘이어, 갈매기같이,
다만 무덤뿐이 그늘을 어른이는 하늘 위를,
바닷가의, 잃어버린 세상의 있다던 모든 것들은
차라리 내 몸이 죽어 가서 없어진 것만도 못하건만.

또는 비난수 하는 나의 맘, 헐벗은 산(山) 위에서,
떨어진 잎 타서 오르는, 냇내의 한줄기고,
바랍에 바부끼라 저녁은, 흩어진 거미줄의
밤에 매던 이슬은 곧 다시 덜어진다고 할지라도.

함께 하려 하노라, 오오 비난수 하는 나의 맘이여,
있다가 없어지는 세상에는
오직 날과 날이 닭 소리와 함께 달아나 버리며,
가까웁는, 오오 가까웁는 그대뿐이 내게 있거라!



비난수 - 귀신에게 바라는 바를 빌면서 지껄임.
비손 - 손을 비비면서 신에게 소원을 비는 일. 비숙원
냇내 - 연기의 냄새, 또는 연기에 밴 연기의 냄새.

▷ 어른이는 : [동] 어른대다. 어른거리다. 소월시에서 -거리다 -대다가 -이다로 교체된 경우가 많다.
▷ 냇내 : [명] 낸내. 연기(煙氣). 평북방언.
▷ 매던 : [동] 맺히다. 맺힌.
▷ 가까웁는 : [형] 가깝다. 가까운. 가까웁는. 선어말 어미 -오/우-는 발화자의 의도를 나타내는 기능이 있다. 소월시에서 자주 나타난다.

냇내 - 연기의 냄새, 또는 연기에 밴 연기의 냄새.
08.02.06/ 밤 9시 56분


69
비단 안개

눈들이 비단 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러라.
만나서 울던 때도 그런 날이오,
그리워 미친 날도 그런 때러라.

눈들이 비단 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홀목숨은 못살 때러라.
눈 풀리는 가지에 당치맛귀로
젊은 계집 목매고 달릴 때러라.

눈들이 비단 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종달새 솟을 때러라.
들에랴, 바다에랴, 하늘에서랴,
아지 못할 무엇에 취(醉)할 때러라.

눈들이 비단 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러라.
첫사랑 있던 때도 그런 날이오
영 이별 있던 날도 그런 때러라.



▷ 때러라 : 때더라.
▷ 홀목숨 : '혼자 사는 목숨'을 줄인 말로, '혼자 사는 사람'을 뜻한다.
▷ 당치맛귀 : 당(唐)치마의 귀. 당(唐)옷이나 당의(唐衣)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옷으로, 조선시대 여자들이 저고리 위에 덧입었던 예복의 하나이다. 일명 당저고리라고도 한다. 당치마가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당치맛귀는 당옷의 끝자락에 덧붙인 긴 헝겁조각을 의미하거나, 혹은 당치마(?)의 끝자락에 덧붙인 긴 헝겁조각을 뜻한다.


70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하루에도 몇 번(番)씩 내 생각은
내가 무엇하려고 살려는지?
모르고 살았노라, 그럴 말로
그러나 흐르는 저 냇물이
흘러가서 바다로 든댈진댄.
일로조차 그러면, 이 내 몸은
애쓴다고는 말부터 잊으리라.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그러나, 다시 내 몸,
봄빛의 불붙는 사태흙에
집 짓는 저 개아미
나도 살려 하노라, 그와 같이
사는 날 그날까지
살음에 즐거워서,
사는 것이 사람의 본뜻이면
오오 그러면 내 몸에는
다시는 애쓸 일도 더 없어라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 든댈진댄 : 든다고 할진댄.
▷ 일로조차 그러면 : 일이라고 그러면.
▷ 애쓴다고는 : 애쓴다고 하는.
▷ 개아미 : [명] 개미.
08.02.06/ 밤 10시 46분



71
삭주구성(朔州龜城)

물로 사흘 배 사흘
먼 삼천리(三千里)
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삼천리(三千里)
삭주구성(朔州龜城)은 산(山)을 넘은 육천리(六千里)요

물 맞아 함빡히 젖은 제비도
가다가 비에 걸려 오노랍니다
저녁에는 높은 산(山)
밤에 높은 산(山)

삭주구성(朔州龜城)은 산(山) 넘어
먼 육천리(六千里)
가끔가끔 꿈에는 사오천리(四五千里)
가다오다 돌아오는 길이겠지요

서로 떠난 몸이길래 몸이 그리워
님을 둔 곳이길래 곳이 그리워
못 보았소 새들도 집이 그리워
남북(南北)으로 오며 가며 아니 합디까

들 끝에 날아가는 나는 구름은
밤쯤은 어디 바로 가 있을 텐고
삭주구성(朔州龜城)은 산(山) 넘어
먼 육천리(六千里)


▷ 삭주구성(朔州龜城) : 삭주(朔州)와 구성(龜城). 삭주는 평안북도 삭주군의 면. 구성은 평안북도 구성군의 읍.
▷ 함빡히 : [부] 흠뻑.
▷ 몸이길래 : 몸이기에.
08.02.06/밤 10시 52분

72
산(山)

산(山)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山)새는 왜 우노, 시메산(山)골
영(嶺) 넘어 갈라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
칠팔십리(七八十里)
돌아서서 육십리(六十里)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不歸), 다시 불귀(不歸),
삼수갑산(三水甲山)에 다시 불귀(不歸).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년(十五年) 정분을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물에는 녹는 눈,
산(山)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갑산 (三水甲山) 가는 길은 고개의 길.


▷ 오리나무 : [명] 자작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 적양(赤楊).
▷ 시메산(山)골 : [명] 두메산골. 깊은 산골.
▷ 삼수갑산(三水甲山) : 삼수(三水)와 갑산(甲山). 삼수는 함경남도 삼수군의 읍. 갑산은 함경남도 갑산군의 면.
▷ 속 : [명] 마음.
08.02.06/밤 10시 59분


73
산(山) 위에

산(山) 위에 올라서서 바라다보면
가로막힌 바다를 마주 건너서
님 계시는 마을이 내 눈앞으로
꿈 하늘 하늘같이 떠오릅니다

흰 모래 모래 비낀 선창(船倉)가에는
한가한 뱃노래가 멀리 잦으며
날 저물고 안개는 깊이 덮여서
흩어지는 물꽃뿐 안득입니다

이윽고 밤 어두운 물새가 울면
물결조차 하나 둘 배는 떠나서
저 멀리 한바다로 아주 바다로
마치 가랑잎처럼 떠나갑니다

나는 혼자 산(山)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해 붉은 볕에 몸을 씻으며
귀 기울고 솔곳이 엿듣노라면
님 계신 창(窓)아래로 가는 물노래

흔들어 깨우치는 물노래에는
내 님이 놀라 일어나 찾으신대도
내 몸은 산(山) 위에서 그 산(山) 위에서
고이 깊이 잠들어 다 모릅니다

08.02.11/ 00시 50분
▷ 안득입니다 : 아득합니다.
▷ 한바다 : 넓고 큰 바다.
▷ 아주 바다로 : '아주 먼 바다'라는 뜻을 가진 '아주'와 '바다'의 결합어로 볼 수도 있지만, '아예 바다'로 떠나갔다는 의미를 가진 말로 볼 수도 있다.
▷ 솔곳이 : [부] 솔깃이. 형용사 솔곳하다의 어근에 부사파생접사 -이가 결합한 형태이다. 솔깃하다를 표준어로 삼기도 한다.

74
산유화(山有花)


산(山)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山)에
산(山)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山)에서 우는 적은 새요
꽃이 좋아
산(山)에서
사노라네

산(山)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08.02.13/ 0시 41분
▷ 갈 : [명] 가을.
할아버지를 조롱하는 과시(科詩)로 향시에 장원을 한 김병연은 하늘 보기 부끄럽다고 평생을 삿갓을 쓰고 살았다 해서 본명인 김병연보다 김삿갓으로 더 잘알려져 있듯이 시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들도 본명인 김정식은 몰라도 소월은 다 알고 있지요.

저 산에는 나와 관계없이 사시사철 꽃이 피고 지는 듯 싶지만 살아있는 존재에게 상관없는 사물은 없지요. 다만 윤회처럼 끊임없는 반복 속에 또 다른 고독한 자아가 있을 뿐이지요.

75
새벽

낙엽(落葉)이 발이 숨는 못물가에
우뚝우뚝한 나무 그림자
물빛조차 어섬푸레히 떠오르는데,
나 혼자 섰노라, 아직도 아직도,
동(東)녘 하늘은 어두운가.
천인(天人)에도 사랑 눈물, 구름 되어,
외로운 꿈의 베개, 흐렸는가
나의 님이여, 그러나 그러나
고이도 붉으스레 물 질러 와라
하늘 밟고 저녁에 섰는 구름.
반(半) 달은 중천(中天)에 지새일 때.

08.02.13/ 00시 45분
▷ 발 : [명] 발(足).
▷ 물 질러 와라 : '물(못)을 질러서 와라'라는 말로 길로 둘러서 오지 말고 곧 바로 물을 가로질러 지름길로 오라는 뜻이다.


76
생(生)과 사(死)

살았대나 줄었대나 같은 말을 가지고
사람은 살아서 늙어서야 죽나니,
그러하면 그 역시(亦是) 그럴듯도 한 일을,
하필(何必) 코 내 몸이라 그 무엇이 어째서
오늘도 산(山) 마루에 올라서서 우느냐

▷ 하필(何必)코 : 어쩌면 꼭 그러하고.
08.02.13/ 00시 48분


77
서울 밤

붉은 전등(電燈).
푸른전등(電燈).
넓다란 거리면 푸른 전등(電燈).
막다른 골목이면 붉은 전등(電燈).
전등(電燈)은 반짝입니다
전등(電燈)은 그무립니다.
전등(電燈)은 또 다시 어스렷합니다.
전등(電燈)은 죽은 듯한 긴 밤을 지킵니다.

나의 가슴의 속모를 곳의
어둡고 밝은 그 속에서도
붉은 전등(電燈)이 흐드겨 웁니다.
푸른 전등(電燈)이 흐드겨 웁니다.

붉은 전등(電燈).
푸른 전등(電燈).
머나먼 밤하늘은 새캄합니다.
머나먼 밤하늘은 새캄합니다.

서울 거리가 좋다고 해요
서울 밤이 좋다고 해요
붉은 전등(電燈).
푸른 전등(電燈).
나의 가슴 속모를 곳의
푸른 전등(電燈)은 고적(孤寂)합니다
붉은 전등(電燈)은 고적(孤寂)합니다


08.02.13/ 밤 11시 45분
▷ 그무립니다 : [동] 그물거리다. 전등 불빛이 꺼질 것처럼 약해지거나, 흐릿해지다.
▷ 어스렷합니다 : [형] 어스레하다. 빛이 어둑어둑하다.
▷ 흐드겨 : [동] 흐느끼다.
▷ 고적(孤寂)합니다 : [형] 고적(孤寂)하다. 외롭고 쓸쓸하다.


78
설움의 덩이

꿇어앉아 올리는 향로(香爐)의 향(香)불.
내 가슴에 조그만 설움의 덩이.
초닷새 달그늘에 빗물이 운다.
내 가슴에 조그만 설움의 덩이.

08.02.13/밤 11시 47분
▷ 향로(香爐) : [명] 향을 피우는 조그마한 화로. 향정(香鼎). 훈로(薰爐).

79
수아(樹芽)

설다 해도
웬만한,
봄이 아니어,
나무도 가지마다 눈을 텄어라!


▷ 수아(樹芽) : [명] 나무가지 끝에 처음으로 돋아난 눈. 어린 잎. 나무의 싹.
애채 - 나무의 새로 돋은 가지.


80
실제(失題)(1)


동무들 보십시오 해가 집니다
해지고 오늘날은 가노랍니다
웃옷을 잽시빨리 입으십시오
우리도 산(山)마루로 올라갑시다

동무들 보십시오 해가 집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빛이 납니다
이제는 주춤주춤 어둡습니다
예서 더 저문 때를 밤이랍니다

동무들 보십시오 밤이 옵니다
박쥐가 발부리에 일어납니다
두 눈을 인제 그만 감으십시오
우리도 골짜리고 내려갑시다


▷ 잽시빨리 : [부] '재빨리'라는 뜻의 평안도 방언. 매우 날쌔게.
▷ 산(山)마루 : 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
▷ 예서 : [부] 여기서. 이곳으로부터.
▷ 발부리 : [명] 발끝의 뾰족한 부분. 족첨(足尖).


81
실제(失題)(2)

이 가람과 저 가람이 모두처 흘러
그 무엇을 뜻하는고?

미더움을 모르는 당신의 맘

죽은 듯이 어두운 깊은 골의
꺼림직한 괴로운 몹쓸 꿈의
퍼르죽죽한 불길은 흐르지만
더듬기에 지치운 두 손길은
불어 가는 바람에 식히셔요
밝고 호젓한 보름달이
새벽의 흔들리는 물 노래로
수줍움에 추움에 숨을 듯이
떨고 있는 물 밑은 여기외다.

미더움을 모르는 당신의 맘

저 산(山)과 이 산(山)이 마주서서
그 무엇을 뜻하는고?


▷ 가람 : [명] 강(江)의 옛말.
▷ 모두처 : 부딪쳐.??


82
안해 몸

들고 나는 밀물에
배 떠나간 자리야 있스랴.
어질은 안해인 남의 몸인 그대요
아주, 엄마 엄마라고 불니우기 전(前)에.

굴뚝이기에 연기(煙氣)가 나고
돌바우 아니기에 좀이 들어라.
젊으나 젊으신 청하늘인 그대요,
착한 일 하신 분네는 천당(天堂) 가옵시리라

▷ 안해 : [명] 아내.
▷ 돌바우 : [명] 돌바위.
▷ 좀이 들어라. : 좀이 들다. 좀이 쑤시다.
▷ 청하늘 : 청천(靑天). 푸른 하늘.
08.02.15/ 저녁 6시 36분

83
애모(愛慕)


왜 아니 오시나요.
영창(映窓)에는 달빛, 매화(梅花)꽃이
그림자는 산란(散亂)히 휘젓는데
아이. 눈 꽉 감고 요대로 잠을 들자.

저 멀리 들리는 것!
봄철의 밀물소리
물나라의 영롱(玲瓏)한 구중궁궐(九重宮闕), 궁굴(宮闕)의 오요한 곳,
잠 못 드는 용녀(龍女)의 춤과 노래, 봄철의 밀물소리.

어두운 가슴속의 구석구석……
환연한 거울 속에, 봄 구름 잠긴 곳에,
소솔비 내리며, 달무리 둘려라.
이대도록 왜 아니 오시나요. 왜 아니 오시나요.

어두운 가슴속의 구석구석……
환연한 거울 속에, 봄 구름 잠긴 곳에,
소솔비 내리며, 달무리 둘려라.
이대도록 왜 아니 오시나요. 왜 아니 오시나요.


▷ 영창(映窓) : [명] 방과 마루 사이에 낸 두 쪽의 미닫이 창.
▷ 구중궁궐 : [명] 깊은 대궐. 구중심처(九重深處).
▷ 오요(奧요)한 : 깊숙하고 가장 구석진. 원래 오(奧)는 방의 서남쪽 모퉁이를 뜻한다.
▷ 용녀(龍女) : [명] 용왕의 딸.
▷ 환연한 : 환연(渙然)한.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맑은.
▷ 이대도록 : [부] 이토록.
08.02.15/ 저녁 6시 42분


84
어버이

잘 살며 못 살며 할 일이 아니라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있나니,
바이 죽지 못할 것도 아니지마는
금년에 열 네 살 , 아들딸이 있어서
순복이 아버님은 못 하노란다.


▷ 순복 : 사람의 이름.
08.02.15/ 저젼 6시 47분

85
어인(漁人)

헛된 줄 모르고나 살면 좋와도!
오늘도 저 넘에 편(便) 마을에서는
고기잡이 배 한 척(隻) 길 떠났다고.
작년(昨年)에도 바닷놀이 무서웠건만


▷ 어인(漁人) : 고기잡는 사람. 어부(漁夫).
▷ 넘에 : [명] 너머.
▷ 바닷놀 : 바다 노을

08.02.15 / 저녁 6시 49분


86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江邊)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江) 모래빛,
뒷문(門)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江邊) 살자,!

08.02.15/ 저녁 6시 51분


87
엄숙

나는 혼자 뫼 위에 올랐어라.
솟아 퍼지는 아침 햇살에
풀잎도 번쩍이며
바람은 속삭여라.
그러나
아아 내 몸의 상처(傷處)받은 맘이여
맘은 오리려 저프고 아픔에 고요히 떨려라
또 다시금 나는 이 한때에
사람에게 있는 엄숙을 모두 느끼면서.


▷ 저프고 : 저프다('두렵다'를 옛스럽게 이르는 말)의 활용형.
08.02.15/ 저녁 7시 25분


88
여름의 달밤


서늘하고 달 밝은 여름밤이여
구름조차 희미한 여름밤이여
그지없이 거룩한 하늘로써는
젊음의 붉은 이슬 젖어 내려라.

행복(幸福)의 맘이 도는 높은 가지의
아슬아슬 그늘 잎새를
배불러 기어 도는 어린 벌레도
아아 모든 물결은 복(福)받았어라.

뻗어 뻗어 오르는 가시덩굴도
희미(稀微)하게 흐르는 푸른 달빛이
기름 같은 연기에 멱감(煙氣)을러라.
아아 너무 좋아서 잠 못 들어라.

우긋한 풀대들은 춤을 추면서
갈잎들은 그윽한 노래 부를 때.
오오 내려 흔드는 달빛 가운데
나타나는 영원(永遠)을 말로 새겨라.

자라는 물벼 이삭 벌에서 불고
마을로 은(銀) 슷듯이 오는 바람은
눅잣추는 향기(香氣)를 두고 가는데
인가들은 잠들어 고요하여라.

하루 종일(終日) 일하신 아기 아버지
농부(農夫)들도 편안(便安)히 잠들었어라.
영 기슭의 어득한 그늘 속에선
쇠스랑과 호미뿐 빛이 피어라.

이윽고 식새리소리는
밤이 들어가면서 더욱 잦을 때
나락밭 가운데의 우물 물가에는
농녀(農女의 그림자가 아직 있어라.

달빛은 그무리며 넓은 우주(宇宙에
잃어졌다 나오는 푸른 별이요.
식새리이 울음의 넘는 곡조(曲調)요
아아 기쁨 가득한 여름 밤이여.

삼간집에 불붙는 젊은 목숨의
정열(情熱)에 목맺히는 우리 청춘(靑春)은
서늘한 여름 밤 잎새 아래의
희미한 달빛 속에 나부끼어라.

한때의 자랑 많은 우리들이여
농촌(農村)에서 지나는 여름보다도
여름의 달밤보다 더 좋은 것이
인간(人間)에 이 세상에 다시 있으랴.

조그만 괴로움도 내어버리고
고요한 가운데서 귀기울이며
흰달의 금물결에 노(櫓)를 저어라
푸른 밤의 하늘로 목을 놓아라.

아아 찬양(讚揚하여라 좋은 한때를
흘러간느 목숨을 많은 행복(幸福을
여름의 어스러한 달밤 속에서
꿈같은 즐거움의 눈물 흘러라.


▷ 하늘로써는 : 하늘로부터는.
▷ 멱감을러라 : 멱감다('미역감다'의 준말로 물속에 몸을 담가 씻거나 놀다)의 활용형.
▷ 우긋한 : [형] 우긋하다.
▷ 풀대들은 : 풀줄기들은.
▷ 슷듯이 : 스치듯이.
▷ 눅잣추는 : 눅신하게 잇달아 풍겨오는. 눅잦추다는 '눅'과 '잦추다'의 결합형.
▷ 식새리 : 쓰르라미. 저녁 매미.
▷ 그무리며 : [동] 그물대다. 그물거리다. 뚜렷하지 않게 흐려지다. 밝은 빛이 약해지다.
▷ 목을 놓아라 : 목놓다(지나칠 정도로 크게 울거나 소리내다)의 활용형.

잦추다 - 동작을 재게하여 잇달아 재촉하다.
닭잦추다 - 새벽에 닭이 재우쳐서 울다.
재우치다 - 빨리 몰아치거나 재촉하다.
08.02.15/ 밤 7시 59분



89
여수(旅愁)



유월(六月) 어스름 때의 빗줄기는
암황색(暗黃色)의 시골(屍骨)을 묶어 세운 듯,
뜨며 흐르며 잠기는 손의 널쪽은
지향(指向)도 없어라, 단청(丹靑)의 홍문(紅門)!


저 오늘도 그리운 바다,
건너다 보자니 눈물겨워라!
조그마한 보드라운 그 옛적 심정(心情)의
분결 같던 그대의 손의
사시나무보다도 더한 아픔이
내 몸을 에워싸고 휘떨며 찔러라,
나서 자란 고향(故鄕)의 해 돋는 바다요.

▷ 시골(屍骨) : [명] 죽은 사람의 뼈.
▷ 널쪽 : 홍살문의 붉은 살을 표현한 대목인 듯함.
▷ 홍문(紅門) : 홍살문의 준말. 능(陵)원(園)묘(廟).궁전(宮殿) 등의 정면에 세웠던 붉은 색칠을 한 문. 지붕없이 둥근 기둥 두 개를 세우고 붉은 살을 박은 문.

▷ 사시나무 : [명] 백양(白楊). 버드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 산 중턱 밑의 화전(火田) 터에 많이 있다.


90
여자(女子)의 냄새

푸른 구름의 옷 입은 달의 냄새.
붉은 구름의 옷 입은 해의 냄새
아니, 땀 냄새, 때묻은 냄새,
비에 맞아 추거운 살과 옷 냄새.

푸른 구름의 옷 입은 달의 냄새.
붉은 구름의 옷 입은 해의 냄새.
아니, 땀 냄새, 때묻은 냄새,
비에 맞아 추거운 살과 옷 냄새.

푸른 바다…… 어즐이는 배……
보드라운 그리운 어떤 목숨의
조그마한 푸릇한 그무러진 영(靈)
어우러져 비끼는 살의 아우성……

다시는 장사(葬事) 지나간 숲속의 냄새.
유령(幽靈) 실은 널뛰는 뱃간의 냄새.
생고기의 바다의 냄새.
늦은 봄의 하늘을 떠도는 냄새.

모래 둔덕 바람은 그물 안개를 불고
먼 거리의 불빛은 달 저녁을 울어라.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08.02.16/아침 9시 10분
▷ 추거운 : [형] 축축한.
▷ 어즐이는 : 어즐이는
▷ 그무러진 : [동] 그무레지다. 약간 침침해지며 흐릿하다.
▷ 어우러져 : [동] 어우르다. 한 덩어리가 되는.
▷ 장사(葬事) : [명] 죽은 사람을 묻거나 화장하는 일.
▷ 그물 안개 : 그물 모양의 안개.



91
열락(悅樂)

어둡게 깊게 목메인 하늘.
꿈의 품속으로써 굴러나오는
애달피 잠 안오는 유령(幽靈)의 눈결.
그림자 검은 개버드나무에
쏟아져 내리는 비의 줄기는
흐느껴 비끼는 주문(呪文)의 소리.

시커먼 머리채 풀어헤치고
아우성하면서 가시는 따님.
헐벗은 벌레들은 꿈틀일 때,
흑혈(黑血)의 바다, 고목(枯木) 동굴(洞窟).

탁목조(啄木鳥)의
쪼아리는 소리, 쪼아리는 소리.


08.02.16/ 아침 9시 34분
▷ 열락(悅樂) : [명] 기뻐하고 즐거워함.
▷ 개버드나무 : 개울가 버드나무. 버드나무는 버드나무과의 낙엽 교목을 말한다. 높이가 10m 이상이고 잎의 끝이 뽀족하다. 개울가나 들에서 잘 자란다. 버들. 양류(楊柳).
▷ 고목(枯木) : [명] 말라 죽은 나무.
▷ 탁목조(啄木鳥) : [명] 딱따구리. 삼림지대에 살며 암수가 다른 빛깔임. 부리가 송곳처럼 곧고 뾰족하다. 나무를 쪼아 구멍을 내고, 그 속의 벌레를 잡아먹는 익조(益鳥).

92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기 그리울 줄도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08.02.16/ 아침 9시 36분

93
옛낯

생각의 끝에는 졸음이 오고
그리움 끝에는 잊음이 오나니,
그대여, 말을 말어라, 이후(後)부터,
우리는 옛낯 없는 설움을 모르리.


08.02.16/ 아침 9시 38분
▷ 옛낯 : 옛날의 얼굴. 지난 시절의 모습이나 얼굴.



94
옛이야기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면은
어스러한 등(燈)불에 밤이 오면은
외로움에 아픔에 다만 혼자서
하염없는 눈물에 저는 웁니다

제 한 몸도 예전엔 눈물 모르고
조그마한 세상(世上)을 보냈습니다
그때는 지난날의 옛이야기도
아무 설움 모르고 외웠습니다

그런데 우리 님이 가신 뒤에는
아주 저를 버리고 가신 뒤에는
전(前)날에 제게 있던 모른 것들이
가지가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한때에 외워 두었던
옛이야기뿐만은 남았습니다
나날이 짙어가는 옛이야기는
부질없이 제 몸을 울려줍니다

08.02.16/ 오전 9시 47분
▷ 어스러한 : 어스럼한 빛. 밝지 않고 희미한 불빛.


95
오는 봄

봄날이 오리라고 생각하면서
쓸쓸한 긴 겨울을 지나보내라.
오늘 보니 백양(白楊)의 뻗은 가지에
전(前)에 없이 흰새가 앉아 울어라.

그러나 눈이 깔린 두던 밑에는
그늘이냐 안개냐 아지랑이냐.
마을들은 곳곳이 움직임 없이
저편(便) 하늘 아래서 평화(平和)롭건만.

새롭게 지껄이는 까치의 무리.
바다를 바랍며 우는 까마귀.
어디로서 오는지 종경 소리는
젊은 아기 나가는 조곡(吊曲)일러라.

보라 때에 길손도 머뭇거리며
지향없이 갈 발이 곳을 몰라라.
사무치는 눈물은 끝이 없어도
하늘을 쳐다보는 살음의 기쁨.

저마다 외로움의 깊은 근심이
오도가도 못하는 망상거림에
오늘은 사람마다 님을 여이고
곳을 잡지 못하는 설움일러라.

오기를 기다리는 봄의 소리는
때로 여윈 손끝을 울릴지라도
수풀 밑에 서리운 머리카락들은
걸음 걸음 괴로이 발에 감겨라.


▷ 백양(白楊) : [명] 사시나무. 황철나무. 버드나뭇과의 낙엽 교목.
▷ 두던 : [명] 두덕. 둔덕.
▷ 망상거림 : 이리저리 생각만 하고 태도를 정하지 못하는 모습. 주저하면서 망설이는 태도.
▷ 여이고 : [동] 여이다. 여의다. 사별(死別)하다. 멀리 떠나 보내다.


96
오시는 눈

땅 위에 쌔하얗게 오시는 눈.
기다리는 날에는 오시는 눈.
오늘도 저 안 온 날 오시는 눈.
저녁불 켤 때마다 오시는 눈.

08.02.24/오후 2시 37분
▷ 쌔하얗게 : [형] 새하얗게(매우 하얗게)의 센말.


97
왕십리(往十里)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재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결 ,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往十里) 건너가서 울아나 다오,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天安)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山)마루에 걸려서 운다.


08.02.24/ 2시 40분
▷ 스무날 : 초하룻날에서 스무 번째 되는 날. 염일(念日)이라고도 한다.
▷ 삭망(朔望) : [명] 삭망전(朔望奠)의 준말.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
삭망전(朔望奠) - 상중에 있는 집에서 매달 초하루, 보름에 지내는 제사.
▷ 왕십리(往十里) : 서울시 성동구 하왕십리동과 행당동 일대. 예로부터 서울 동부지구 중심지의 하나였다.
▷ 울려거든 : 울려고 하거든
▷ 벌새 : 벌샛과에 속하는 새의 총칭. 몸길이가 5-22cm로서 새 가운데 가장 작다.
▷ 천안(天安)에 삼거리 : 천안삼거리는 삼룡동에 있는 삼거리로, 옛날 경상감영으로 가는 진천로(鎭川路)와 전라감영으로 가는 공주로(公州路)가 갈리는 분기점이었다. 민요 천안삼거리(天安三巨里) 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98
우리 집

이바루
외따로 와 지나는 사람 없으니
밤 자고 가자 하며 나는 앉아라.

저 멀리, 하느편(便)에
배는 떠나 나가는
노래 들리며

눈물은
흘러나려라
스르르 내려 감는 눈에.

꿈에도 생시에도 눈에 선한 우리 집

또 저 산(山) 넘어 넘어
구름은 가라.

08.02.24/오후 2시 45분
▷ 이바루 : 이 정도(일정한 정도의 거리나, 대략적인 거리의 정도를 지칭하는 말. 평북방언).
▷ 하느편(便) : [명] 서쪽.



99
원앙침(鴛鴦枕)


바드득 이를 갈고
죽어 볼까요
창(窓)가에 아롱아롱
달이 비친다

눈물은 새우잠의
팔굽베개요
봄꿩은 잠이 없어
밤에 와 운다.

두동달이 베개는
어디 갔는고
언제는 둘이 자던 베갯머리에
죽쟈 사쟈 언약도 하여 보았지.

봄 메으 멧기슭에
우는 접동도
내 사랑 내 사랑
조히 울 것다.

두동달이베개는
어디 갔는고
창(窓)가에 아롱아롱
달이 비친다.


08.02.24/ 일요일...오후2시 49분


▷ 원앙침(鴛鴦枕) : [명] 원앙을 수놓은 베개.
▷ 두동달이베개 : 두동베개. 부부가 함께 베는 긴 베개. 주로 신혼 부부가 베고 잔다. 원앙침(鴛鴦枕). 평북방언.
두동베개 - 갓 혼인한 부부가 함께 베는 길이가 긴 베게.


100
월색(月色)

달빛은 밝고 귀뚜라미 울 때는
우둑히 시멋 없이 잡고 섰던 그대를
생각하는 밤이여, 오오 오늘밤
그대 찾아 데리고 서울로 가나?

08.02.24/ 오후 5시 15분

101
잊었던 맘

집을 떠나 먼 저곳에
외로이도 다니던 내 심사를




잊었던 맘

집을 떠나 먼 저곳에
외로이도 다니던 내 심사(心事)를!
바람불어 봄꽃이 필 때에는,
어째타 그대는 또 왔는가,
저도 잊고 나니 저 모르던 그대
어찌하여 옛날의 꿈조차 함께 오는가.
쓸데도 없이 서럽게만 오고 가는 맘.

08.02.24/ 오후 5시 18분
▷ 어째타 : [부] 어찌하여. '어째'에 '-타'가 결합하여 의미를 강조한 형태.

102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그림자 같은 벗 하나이 내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쓸데없는 괴로움으로만 보내었겠습니까!

오늘은 또 다사, 당신의 가슴속, 속 모를 곳을
울면서 나는 휘저어 버리고 떠납니다그려.

허수한 맘, 둘 곳 없는 심사(心事)에 쓰라린 가슴은
그것이 사랑, 사랑이던 줄이 아니도 잊힙니다.

08.02.24/오후 5시 22분

▷ 하나이 : 하나가. 주격조사 '-가'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이'가 주로 사용되었다.
▷ 허수한 : [형] 공허하고 서운하다.
▷ 심사(心事) : [명]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일.
▷ 줄 : 불완전명사.
▷ 아니도 : 아니와 도의 결합형. 도는 강조를 나타내는 특수조사.


103
자주(紫朱) 구름

물 고운 자주(紫朱) 구름,
하늘은 개여 오네.
밤중에 몰래 온 눈
솔숲에 꽃피었네.

아침볕 빛나는데
알알이 뛰노는 눈

밤새에 지난 일은……
다 잊고 바라보네.

움직거리는 자주(紫朱) 구름


▷ 자주(紫朱) 구름 : 짙은 남빛에 붉은 빛을 띤 구름.
▷ 개여 : [동] 개다. 흐리거나 궂은 날씨가 맑아지다.


104
저녁 때

마소의 무리와 사람들은 돌아들고, 적적(寂寂)히 빈 들에,
엉머구리 소리 우거져라.
푸른 하늘은 더욱 낫추, 먼 산(山) 비탈길 어둔데
우뚝우뚝한 드높은 나무, 잘 새도 깃들어라.

볼수록 넓은 벌의
물빛을 물끄럼히 들여다보며
고개 수그리고 박은 듯이 홀로 서서
긴 한숨을 짓느냐, 왜 이다지!
온 것을 아주 잊었어라, 깊은 밤 예서 함께
몸이 생각에 가볍고, 맘이 더 높이 떠오를 때.
문득, 멀지 않은 갈숲 새로
별빛이 솟구어라.

08.02.24/ 오후 5시 28분
▷ 적적(寂寂)히 : [부] 조용하고 쓸쓸히.
▷ 엉머구리 : 개구리의 일종.
▷ 낫추 : 낮찹고. 낮추는 낮찹고의 변이형.
▷ 예서 : 여기서.
▷ 새 : 사이.


105
전망(展望)

부옇한 하늘, 날도 채 밝지 않았는데,
흰눈이 우멍구멍 쌓인 새벽,
저 남편(便) 물가 위에
이상한 구름은 층층대(層層臺) 떠올라라.

마을 아기는
무리 지어 서제(書齊)로 올라들 가고,
시집살이하는 젊은이들은
가끔가끔 우물길 나들어라.

소삭(蕭索)한 난간(欄干) 위를 거닐으며
내가 볼 때 온 아침, 내 가슴의,
좁혀 옮긴 그림장(張)이 한 옆을,
한갓 더운 눈물로 어룽지게.

어깨 위에 총(銃) 매인 사냥바치
반백(半白)의 머리털에 바람 불며
한번 달음박질. 올 길 다 왔어라.
흰눈이 만산편야(滿山遍野)에 쌓인 아침.

08.02.24/ 오후 5시 42분
▷ 우멍구멍 : [부] 평탄하지 못한 모양. 고르지 않은 상태.
우멍구멍 - 울퉁불퉁
▷ 남편(便) : 남(南)쪽.
▷ 소삭(蕭索)한 : 소삭하다. 쓸쓸하고 고요하다.
▷ 그림장(張) : 그림을 그린 종이. 장은 얇고 넓적한 물건의 조각을 뜻한다.
▷ 사냥바치 : [명] 사냥꾼. 사냥과 -바치의 결합형. -바치는 인칭접미사.
▷ 만산편야(滿山遍野) : 온산과 들에 그득히 덮임.

106
접동새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津頭江)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津頭江)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津頭江)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山) 저 산(山)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 아우래비 : '아홉 오라버니'를 줄인말.
▷ 진두강(津頭江) : 진두(津頭)는 나루를 뜻한다. 진두와 강(江)의 합성어인 강나루(?). 혹은 진두라는 강(?).
▷ 불설워 : 매우 서럽다. 불과 섧다의 결합형. 혹은 불쌍하다와 섧다의 합성어.
▷ 오랩동생 : 오라버니와 동생을 아울러 일컫는 말.
▷ 야삼경(夜三更) : [명] 한밤중 야(夜)와 삼경(三更)의 결합형. 삼경은 밤 11부터 새벽 1시까지이다.



107
제비

하늘로 날아다니는 제비의 몸으로도
일정(一定)한 깃을 두고 돌아오거든!
어찌 설지 않으랴, 집도 없는 몸이야!

08.02.24/ 오후 5시 52분
▷ 설지 : [형] 서럽지.

108
지연(紙鳶)

오후(午後)의 네길거리 해가 들었다,
시정(市井)의 첫겨울의 적막(寂寞)함이여,
우둑히 문어귀에 혼자 섰으면,
흰눈의 잎사귀, 지연(紙鳶)이 뜬다.

08.02.24/ 오후 6시 1분
▷ 지연(紙鳶) : [명] 종이연(鳶). 종이에 대가지를 붙여 실로 꿰어 공중에 날리는 장난감.


109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08.02.24/6시 3분

▷ 역겨워 : 몹시 싫어져 견디기 힘들어.
▷ 영변(寧邊) : 평안북도 영변군의 면.
▷ 약산(藥山) : 평안북도 영변 서쪽에 있는 산. 관서팔경(關西八景)의 하나인 약산동대(藥山東臺)가 있고, 옛부터 진달래가 유명하다.
▷ 즈려밟고 : '짓밟다'를 뜻하는 평안도 사투리


110
집 생각


산(山)에나 올라서서
바다를 보라
사면(四面)에 백(百) 열리(里), 창파(滄波) 중에
객선(客船)만 둥둥…… 떠나간다.

명산대찰(名山大刹)이 그 어디메냐
향안(香案), 향합(香盒), 대그릇에,
석양(夕陽)이 산(山)머리 넘어가고
사면(四面)에 백(百) 열리(里), 물소리라

젊어서 꽃 같은 오늘날로
금의(錦衣)로 환고향(還故鄕)하옵소사.
객선(客船)만 둥둥…… 떠나간다
사면(四面)에 백(百) 열리(里), 나 어찌 갈까

까투리도 산(山) 속에 새끼치고
타관만리(他關萬里)에 와 있노라고
산(山) 중만 바라보며 목메인다
눈물이 앞을 가리운다고

들에나 내려오면
쳐다 보라
해님과 달님이 넘나든 고개
구름만 첩첩……떠돌아간다


08.02.24/6시 7분
▷ 창파(滄波) : [명] 큰 바다의 푸른 물결.
▷ 향안(香案) : [명] 향로를 바치는 상.
▷ 향합(香盒) : [명] 향을 담는 합. 향을 담는 그릇.
▷ 환고향(還故鄕)하옵소사. : 금의환향(錦衣還鄕)을 풀어 쓴 말. 성공하여 고향에 돌아오다.
▷ 까투리 : [명] 암꿩.
▷ 첩첩 : [명] 첩첩(疊疊). 겹겹.


111
찬 저녁

퍼르스렷한 달은, 성황당의
데군데군 헐어진 담 모도리에
우둑히 걸리웠고, 바위 위의
까마귀 한 쌍, 바람에 나래를 펴라.

엉긔한 무덤들은 들먹거리며,
눈 녹아 (黃土) 드러난 멧기슭의,
여기라, 거리 불빛도 떨어져 나와,
집 짓고 들었노라, 오오 가슴이여

세상은 무덤보다도 다시 멀고
눈물은 물보다 더 더움이 없어라.
오오 가슴이여, 모닥불 피어 오르는
내 한세상, 마당가의 가을도 갔어라.

그러나 나는, 오히려 나는
소리를 들어라, 눈석이물이 씨거리는,
땅 위에 누워서, 밤마다 누워,
담 모도리에 걸린 달을 내가 또 봄으로.

08.02.24/ 밤 11시 40분

▷ 데군데군 : [부] 군데군데.
▷ 모도리 : [명] 모서리. 모퉁이. 평북방언.
모도리 - 조금도 빈틈없이 썩 모이게 생긴사람.
▷ 눈석이물 : 눈석임물. 눈이 녹은 물.
눈석임물 - 쌓인 눈이 속에서 녹아 흐르는 물.
눈석이
▷ 씨거리는 : 씨걱거리는. 찌걱거리는. 의성어 씨와 -거리다의 결합형.

112
천리만리

말리지 못할 만치 몸부림하며
마치 천리만리(千里萬里)나 가고도 싶은
맘이라고나 하여 볼까.
한줄기 쏜살같이 뻗은 이 길로
줄곧 치달아 올라가면
불붙는 山의, 불붙는 山의
연기(煙氣)는 한두 줄기 피어올라라.

08.02.24/ 밤 11시 49분

113
첫치마

봄은 가나니 저문 날에,
꽃은 지나니 저문 봄에,
속없이 우나니,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나니 가는 봄을.
꽃 지고 잎 진 가지를 잡고
미친 듯 우나니, 집난이는
해 다 지고 저문 봄에
허리에도 감은 첫치마을 눈물로 함빡히 쥐어짜며
속없이 우노나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노나, 가는 봄을.

08.02.24/ 밤 11시 52분

▷ 집난이 : [명] 시집간 딸. 평북, 함남
▷ 함빡히 : [부] 함빡. 흠뻑의 작은 말.


114
초혼(招魂)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虛空) 중(中)에 헤여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主人)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西山) 마루에 걸리웠다.
사슴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山)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08.02.24/ 00시 15분
초혼 - 초어스름 - 해가 지고 땅거미가 어슴프레하게 지기 시작할 무렵.

115
추회(追悔)



나쁜 일까지라도 생(生)의 노력(努力),
그 사람은 선사(善事)도 하였어라
그러나 그것도 허사(虛事)라고!
나 역시(亦是) 알지마는, 우리들은
끝끝내 고개를 넘고 넘어
짐 싣고 닫던 말도 순막집의
허청(虛廳)가, 석양(夕陽)손에
고요히 조으는 한때는 다 있나니.
고요히 조으는 한때는 다 있나니.


▷ 추회(追悔) : 지난 뒤에 후회함.
추회追懷 - 지나간 일을 그리워하며 생각함.

▷ 닫던 : [동] 닫다. 달리던. 빨리 가던.
▷ 순막집 : [명] 주막집.
▷ 석양(夕陽)손 : 석양 무렵.
▷ 조으는 : [동] 졸다. 조는.


116
춘향(春香)과 이도령(李道令)


평양(平壤)에 대동강(大同江)은
우리 나라에
곱기로 으뜸가는 가람이지요

삼천리(三千里) 가다 가다 한가운데는
우뚝한 삼각산(三角山)이
솟기도 했소

그래 옳소 내 누님, 오오 누이님
우리 나라 섬기던 한 옛적에는
춘향(春香)과 이도령(李道令)도 살았다지요

이편(便)에는 함양(咸陽), 저편(便)에 담양(潭陽),
꿈에는 가끔가끔 산(山)을 넘어
오작교(烏鵲橋) 찾아 찾아가기도 했소

그래 옳소 누이님 오오 내 누님
해 돋고 달 돋아 남원(南原) 땅에는
성춘향(成春香) 아가씨가 살았다지요


08.02,24/ 00시 26분
▷ 삼각산(三角山) : 서울 북쪽과 경기도 고양군에 걸쳐 있는 산. 이외에도 또 다른 삼각산이 있는데, 평안북도 태천군 강동면과 창성군 청산면 사이에 있다. 이 시에서는 서울에 있는 삼각산을 지칭한다.

▷ 춘향(春香)과 이도령(李道令) : 판소리 춘향가에 나오는 주동인물. 서로 사랑하는 연인관계에 있었다.

▷ 오작교(烏鵲橋) : 칠석날 견우와 직녀의 상봉(相逢)을 위해 까막까치가 놓은 다리. 남원 광한루 연못의 다리 이름.


117
풀따기

우리 집 뒷산(山)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山)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

흘러가는 시내의 물에 흘러서
내어던진 풀잎은 옅게 떠갈 제
물살이 해적해적 품을 헤쳐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가여운 이 내 속을 둘 곳 없어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지고
흘러가는 잎이나 맘해 보아요.


08.02.25/ 00시 32분
▷ 해적해적 : 해작해작. 헤작헤작(헤적헤적의 작은말). 물이 찰랑거리며 잔잔하게 움직이는 모양.
▷ 맘해 보아요 : 마음에 두어 보아요.

118
하늘 끝

불현듯
집을 나서 산(山)을 치달아
바다를 내다보는 나의 신세(身勢)여!
배는 떠나 하늘로 끝을 가누나!


08.02.26/ 아침 10시 1분

119
하다못해 죽어 달려가 올라


아주 나는 바랄 것 더 없노라
빛이랴 허공이랴,
소리만 남은 내 노래를
바람에나 띄워서 보낼밖에.
하다못해 죽어 달려가 올라
좀 더 높은 데서나 보았으면!

한세상 다 살아도
살은 뒤 없을 것을,
내가 다 아노라 지금까지
살아서 이만큼 자랐으니.
예전에 지나 본 모든 일을
살았다고 이를 수 있를진댄!

물가의 닳아져 널린 굴꺼풀에
붉은 가시덤불 뻗어 늙고
어득어득 저문 날을
비바람에 울지는 돌무더니
하다못해 죽어 달려가 올라
밤의 고요한 때라도 지켰으면!


▷ 굴꺼풀 : 굴의 껍질.
▷ 어득어득 : 어둑어둑.
어득어득 - 몹시 어둑하다.
▷ 울지는 : 울부짖는.


08.02.26/ 10시 6분
120
합장(合掌)


나들이. 단 두 몸이라. 밤 빛은 배여와라
아, 이거 봐, 우거진 나무 아래로 달 들어라.
우리는 말하며 걸었어라, 바람은 부는 대로.
등(燈)불 빛에 거리는 헤적여라, 희미(稀微)한 하느편(便)에
고이 밝은 그림자 아득이고
퍽도 가까힌, 풀밭에서 이슬이 번쩍여라.

밤은 막 깊어, 사방(四方)은 고요한데,
이마즉, 말도 안하고, 더 안가고,
길가에 우뚝하니. 눈감고 마주서서.

먼먼 산(山). 산(山)절의 절 종(鍾)소리. 달빛은 지새어라.

▷ 헤적여라 : 헤적거리는.
▷ 가까힌 : 가까운. 가까이에는.
▷ 이마즉 : 아마직. 거리의 정도를 나타내는 이만큼의 약한 말인 이마큼에 해당한다.
▷ 우뚝하니 : [부] 우두커니

121
해가 산(山)마루에 저물어도

해가 산(山)마루에 저물어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저뭅니다.

해가 산(山)마루에 올라와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밝은 아침이라고 할 것입니다.

땅이 꺼저도 하늘이 무너져도
내게 두고는 끝까지 모두다 당신 때문에 있습니다.

다시는, 나의 이러한 맘뿐은, 때가 되면,
그림자같이 당신 한테로 가우리다.

오오, 나의 애인(愛人)이었던 당신이여.


08.02.26/ 오전 11시 30분

122
황촉(黃燭)불

황촉(黃燭)불, 그저도 까맣게
스러져 가는 푸른 창(窓)을 기대고
소리조차 없는 흰 밤에,
나는 혼자 거울에 얼굴을 묻고
뜻없이 생각없이 들여다보노라.
나는 이르노니, 우리 사람들
첫날밤은 꿈속으로 보내고
죽음은 조는 동안에 와서,
별(別) 좋은 일도 없이 스러지고 말어라


▷ 황촉(黃燭)불 : [명] 밀초불. 밀랍으로 만든 초에 켜진 불.

123

후살이

홀로된 그 여자(女子)
근일(近日)에 와서는 후살이 간다 하여라.
그렇지 않으랴, 그 사람 떠나서
이제 십년(十年), 저 혼자 더 살은 오늘날에 와서야……
모두다 그럴듯한 사람 사는 일레요.


▷ 후살이 : [명] 여자가 다시 시집가서 사는 일. 개가(改嫁). 후가(後嫁). 재가(再嫁).
▷ 일레요 : 일일레요/래요의 준말.


124

훗길

어버이님네들이 외우는 말이
딸과 아들을 기르기는
훗길을 보자는 심성(心誠)이로라..
그러하다, 분명(分明)히 그네들도
두 어버이 틈에서 생겼어라.
그러나 그 무엇이냐, 우리 사람!
손들어 가르치던 먼 훗날에
그네들이 또다시 자라 커서
한결같이 외우는 말이
훗길을 두고 가자는 심성(心誠)으로
아들딸을 늙도록 기르노라.

▷ 외우는 : 외우다(노상 말하다. 항상 이야기하다)의 활용형.
▷ 훗길 : [명] 후(後)길. 미래의 기대나 희망.

08.02.36/ 오후 2시 24분

125
희망(希望)

날은 저물고 눈이 나려라
낯 설은 물가으로 내가 왔을 때.
산(山) 속의 올빼미 울고 울며
떨어진 잎들은 눈 아래로 깔려라.

아아 숙살(肅殺)스러운 풍경(風景)이여
지혜(智慧)의 눈물을 내가 얻을 때!
이제금 알기는 알았건마는!
이 세상 모든 것을
한갓 아름다운 눈어림의
그림자뿐인 줄을.

이울어 향기(香氣) 깊은 가을밤에
우무주러진 나무 그림자
바람과 비가 우는 낙엽(落葉) 위에.


▷ 숙살(肅殺)스러운 : 을씨년스런. 스산하고 썰렁한.
▷ 우무주러진 : 우므러들고 오그라진. 우물어들고 줄어진.

08.02.26/ 오후 2시 26분


소월 시............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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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솜히 생각이 날때마다 - 잊혀지지 않아 눈 앞에 아른거르는 것 같이. 삼삼히
꾸둑꾸둑하다 - 물기가 있는 물건이 버쩍 말라서 아주 단단하다.
멧밭. 산밭 - 산에 일군 밭.

섶나무 - 잎나무, 풋나무, 물거리 들을 통털어 일컫는 말.
#섶나무에는 벌써 어린 벌레가 어물어물 구물거린다.

자개돌. 자갈 - 시내나 강 따위의 바닥에서 오래 갈리어 반들반들한 잔돌.
자질구레하고 아무렇게나 생긴 돌.
#자개돌 질러 놓은 「어린애」의 무덤들이 비탈진 골짜기에 산산하였다.
비탈진 골짜기 바위 틈에는 바알간 진달래꽃이 저 혼자 곱살스러이 피어 있다.

밭귀 - 밭의 귀퉁이


니악하다. 이악하다 - 이욕에만 정신이 있다.


산산하다 - 좀 시원한 느낌이 들 만큼 사늘하다.
산산한 날씨. 산산한 바람. 선선하다.
누리그무어지다 - 날이 우주충하다
끄므레하다 - 날이 흐리고 침침하다.
파르족족하다 - 칙칙하게 파르스름하다.
잊을만한 첫 십일월(十一月)의 아침은 하늘빛도 파르족족하고 집 앞 바다의 물빛도 가무족족하게 어떻게도 몸에 추워 보였다. 바닷물은


맥아리. 매가리 - 맥의 낮은 말. 맥아리가 없다. 기운이 없다.

두룽다리 - <평북>웃옷과 아래옷이 한데 붙어 자루처럼 된 어린아이의 옷

미쁘다 - 믿음성이 있다
미쁜 남편을 따라
鴨綠江)을 건너서 우리의 조토(祖土)를 뒤로 등지고 사랑하는 남편(男便)을 따라 미쁜 애인(愛人)의 기다림에 맞추어 용감(勇敢)한 청년

우멍구멍 - 울퉁불퉁
우멍구멍한 산(山)길을 허방지방 오르내리는 듯한 감(感)이 바이 없지 않은지라, 꽤 사정(


벌바람 - 벌판에 부는 바람.
난들 -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넓은 들.
난바다 -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넓은 받.
난들에 말라 벌바람에 여위는 갈대 하나가 오히려 아직도 더 가까운, 우리 사람의 무상(無常)과 변전(變轉)을 설워하여 주는 살틀한 노래의 동무가 아니며, 저 넓고 아득한 난바다의 뛰노는 물결들이 오히려 더 좋은, 우리 사람의 자유(自由)를 사랑한다는 계시(啓示)가 아닙니까




희끔희끔 - 희끔하다 - 빛깔이 좀 허연 듯 하다.
해끔하다 - 빛깔이 좀 하얀 듯 하다.
해끔한 얼굴

날빛은 새리새리하여 진다. 부엉이 소리 뻐꾸기 소리 참새 소리 멧새 소리 애닯게 울지기 시작한다. 그 계집 아이의 그림자는 어디로 사라져 갔나! 말집에는 희끔희끔 날리는 빨래 서답이 맘좋게 이리저리 날라 비친다.


아릿자릿. 아릿자릿하다 - 아릿아릿하고 자릿자릿하다.
자, 각지(各地)서 오신 많은 씨름꾼 여러분, 이제 대중소(大中小) 차서(次序)대로, 웅장쾌활(雄壯快活)한 재주를 각기 자랑하여 주십시오. 너무, 아릿자릿한 판에 구경(求景)하시던 분네들 바지에 오줌 누지 마십시오. 하하, 무투리 없는 말대로 개회사(開會辭)라고 두어마디 여쭈었드니, 혹시 잘못된 말이 있어도 씨름판 인사(人事)냐고, 책망은 말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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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벼개 노래調

자, 각지(各地)서 오신 많은 씨름꾼 여러분, 이제 대중소(大中小) 차서(次序)대로, 웅장쾌활(雄壯快活)한 재주를 각기 자랑하여 주십시오. 너무, 아릿자릿한 판에 구경(求景)하시던 분네들 바지에 오줌 누지 마십시오. 하하, 무투리 없는 말대로 개회사(開會辭)라고 두어마디 여쭈었드니, 혹시 잘못된 말이 있어도 씨름판 인사(人事)냐고, 책망은 말아 주십시오.이러구러 제돐이 왔구나. 지난 갑자년(甲子年) 가을이러라. 내가 일찍이 일이 있어 영변읍(寧邊邑)에 갔을 때 내 성벽(性癖)에 맞추어 성내(城內)치고도 어떤 외따른 집을 찾아 묵고 있으려니 그 곳에 한낱 친지(親知)도 없는지라, 할 수 없이 밤이면 추야장(秋夜長) 나그네 방(房) 찬자리에 갇히어 마주보나니 잦는듯한 등(燈)불이 그물러질까 겁나고, 하느니 생각은 근심되어 이리 뒤적 저리 뒤적 잠 못들어 할 제, 그 쓸쓸한 정경(情境)이 실로 견디어 지내기 어려웠을레라. 다만 때때로 시멋없이 그늘진 뜰가를 혼자 두루 거닐고는 할 뿐이었노라.

그렇게 지내기를 며칠에 하루는 때도 짙어가는 초밤, 어둑한 네거리 잠자는 집들은 인기(人氣)가 끊겼고 초년(初年)의 갈구리달 재 너머 걸렸으매 다만 이따금씩 지내는 한 두사람의 발자취 소리가 고요한 골목길 시커먼 밤빛을 드둘출 뿐이러니 문득 격장(隔墻)에 가만히 부르는 노래 노래 청원처절(淸怨凄絶)하여 사뭇 오는 찬 서리 밤빛을 재촉하는 듯, 고요히 귀를 기울이매 그 가사(歌詞)됨이 새롭고도 질박(質朴)함은 이른 봄의 지새는 새벽 적막(寂寞)한 상두(狀頭)의 그늘진 화병(花甁)에 분분(芬芬)하는 홍매(紅梅)꽃 한 가지일시 분명(分明)하고 율조(律調)의 고저(高低)와 단속(斷續)에 따르는 풍부(豊富)한 풍정(風情)은 마치 천석(泉石)의 우멍구멍한 산(山)길을 허방지방 오르내리는 듯한 감(感)이 바이 없지 않은지라, 꽤 사정(事情)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윽한 눈물에 옷깃 젖음을 깨닫지 못하게 하였을레라.

이윽고 그 한밤은 더더구나 빨리도 자취없이 잃어진 그 노래의 여운(餘韻)이 외로운 벼개머리 귀밑을 울리는 듯하여 본래(本來)부터 꿈많은 선잠도 슬픔에 지치도록 밤이 밝아 먼동이 훤하게 눈터올 때에야 비로소 고달픈 내 눈을 잠시 붙였었노라.

두어 열흘 동안에 그 노래 주인(主人)과 숙면(熟面)을 이루니 금년(今年)으로 하면 스물 하나, 당년에 갓스물, 몸은 기생(妓生)이었을레라.

하루는 그 기녀(妓女) 저녁에 찾아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밤 보내던 끝에 말이 자기(自己) 신세(新勢)에 미침에 잠간 낯을 붉히고 하는 말이, 내 고향(故鄕)은 진주(晉州)요, 아버지는 정신(情神)없는 사람되어 간 곳을 모르고, 그러노라니 제 나이가 열세살에 어머니가 제 몸을 어떤 호남행상(湖南行商)에게 팔아 당신의 후살의 밑천을 삼으니 그로부터 뿌리 없는 한 몸이 청루(靑樓)에 영락(零落)하여 동표서박(東漂西泊)할 제 얼울 없는 종적이 남(南)으로 문사(門司), 향항(香港)이며, 북(北)으로 대련(大連), 천진(天津)에 화조월석(花朝月夕)의 눈물 궂은 생애(生涯)가 예까지 굴러 온 지도 이미 반년(半年) 가까이 되었노라 하며 하던 말끝을 미처 거두지 못하고 걷잡지 못할 서름에 엎드러져 느껴가며 울었을러니, 이 마치 길이 자 한치 날카로운 칼로 사나이 몸의 아홉구비 굵은 심상(心腸)을 끊고 찌르는 애닯은 뜬 세상(世相)일의 한가지 못보기라고 할런가.

있다가 이윽고 밤이 깊어 돌아갈 즈음에 다시 이르되 기명(妓名)은 채란이로라 하였더니라.

이 팔벼개 노래조(調)는 채란이가 부르던 노래니 내가 영변(寧邊)을 떠날 임시(臨時)하여 빌어 그의 친수(親手)로써 기록(記錄)하여 가지고 돌아왔음이라. 무슨 내가 이 노래를 가져 감(敢)히 제대방가(諸大方家)의 시적(詩的) 안목(眼目)을 욕(辱)되게 하고자 함도 아닐진댄 하물며 이맛 정성위음(鄭聲衛音)의 현란스러움으로써 예술(藝術)의 신엄(神嚴)한 관전(官展)에야 하마 그 문전(門前)에 첫발걸음을 건들어 놓아보고자 하는 참람(僭濫)한 의사(意思)를 어찌 바늘만큼인들 염두(念頭)에 둘 리(理) 있으리오마는 역시(亦是)이 노래 야비(野卑)한 세속(世俗)의 부경(浮輕)한 일단(一端)을 칭도(稱道)함에 지나지 못한다는 비난(非難)에 마출지라도 나 또한 구태여 그에 대(對)한 둔사(遁辭)도 하지 아니하려니와, 그 이상(以上) 무엇이든지 사양없이 받으려 하나니, 다만 지금(只今)도 매양 내 잠 아니오는 긴 밤에 와 나 홀로 거닐으는 감도는 들길에서 가만히 이 노래를 읊으면 스스로 금(禁)치 못할 가련(可憐)한 느낌이 있음을 취(取)하였을 뿐이라 이에 그대로 내어버리랴 버리지 못하고 이 노래를 세상(世上)에 전(傳)하노니 지금(只今) 이 자리에 지내간 그 옛날 일을 다시 한번 끌어내어 생각하지 아니치 못하여 하노라.

첫날에 길동무
만나기 쉬운가
가다가 만나서
길동무 되지요.

날끊다 말어라
가장(家長)님만 님이랴
오다가다 만나도
정붙으면 님이지.

화문석(花紋席) 돗자리
놋촉대(燭臺) 그늘엔
칠십년(七十年) 고락(苦樂)을
다짐둔 팔벼개.

드나는 곁방의
미닫이 소리라
우리는 하루밤
빌어얻은 팔벼개.

조선(朝鮮)의 강산(江山)아
네가 그리 좁더냐
삼천리(三千里) 서도(西道)를
끝까지 왔노라.

삼천리(三千里) 서도(西道)를
내가 여기 왜 왔나
남포(南浦)의 사공님
날 실어다 주었소.

집 뒷산(山) 솔밭에
버섯 따던 동무야
어느 뉘집 가문(家門)에
시집 가서 사느냐.

영남(嶺南)의 진주(晉州)는
자라난 내 고향(故鄕)
부모(父母)없는
고향(故鄕)이라우.

오늘은 하루밤
단잠의 팔벼개
내일(來日)은 상사(想思)의
거문고 벼개라.

첫닭아 꼬꾸요
목놓지 말아라
품 속에 있던 님
길차비 차릴라.

두루두로 살펴도
금강(金剛) 단발령(斷髮令)
고개길도 없는몸
나는 어찌 하라우.

영남(嶺南)의 진주(晉州)는
자라난 내 고향(故鄕)
돌아갈 고향(故鄕)은
우리 님의 팔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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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 시에 나오는 단어

▷ 연달아 : 연(連)달아. 연이어. 계속해서 이어지는.
▷ 흐릅디다려 : '흐릅디다'와 '그려'의 융합형

▷ 퍼스렷한 - [형용사]푸르스름하다.
▷ 섶나무 - [명사]잎나무, 풋나무, 물거리 따위의 땔나무를 통틀어서 일컫는 말.
▷ 멧골 - 산골
▷ 가주난 - [동사]갓나다. 금방나다. '가주난 아기' 는 '갓난아이' 라는 뜻.
▷ 가늘라. 갓난애. 갓난이. 갓난아이 - 난 지 얼마되지 않는 아이./ 신생아
▷ 속살거려라 - [동사]속살거리다. 잇달아 속닥거리는 소리가 나다.

▷ 성긋한 - [동사]성긋하다 - 이리저리로 사이가 떠서 빈 자리가 많다. 의 활용형
▷ 잦을 - ]동사]잦다 - 설레이던 기운이 잠잠해지거나 가라앉다. 의 활용형

▷ 청(靑)노새 : [명] 푸른빛을 띤 노새.
▷ 백년처권(百年妻眷) : 처권은 아내와 친족(親族)을 뜻함. 백년가족. 백년식구.
▷ 저문 : 날이 저문. 날씨가 저물은. 평북방언 길쎄는 날씨를 뜻한다.

▷ 개아미 : [명] 개미.


개여울 - 개울의 여울
개울 - 골짜기에서 흐르는 작은 내.
여울 - 강이나 바다에 물살이 세게 흐르는 얕은 곳.
헤적이다 - 무엇을 들추거나 벌리며 헤치다. 해작이다.
바람이 낙엽을 헤적이다. 헤작이기만 하고 밥을 먹지는 않았다.

▷ 않노라심은 : '않노라'와 '하심은'의 융합형.


미욱하다 - 됨됨이나 하는 짓이 어리석고 미련하다.
매욱하다 - 어리석고 아둔하다.
우치愚癡 - 매우 어리석고 미욱함.

▷ 개여울 : 개와 여울의 결합형. 개는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 혹은 개울을 뜻 한다. 여울은 물살이 세고 빠르게 흐르는 곳을 말한다.
▷ 영 : [명] 영(嶺). 재.
▷ 미욱한 : [형] 미욱하다. 됨됨이가 어리석고 미련하다.
▷ 굴며 : [동] 구르다. 구르며.
▷ 불귀신(鬼神) : [명] 불을 맡아 다스리거나 불을 낸다고 하는 귀신.
▷ 밤도아 : 밤새도록.
▷ 태와 : 태워.

▷ 애스러라 : 애(哀)스럽다(가엽고 애처럽다)의 활용형.
▷ 못한대서 : 못한다고 하여서.

▷ 뜯는 : [동] 뜯다. 내리다.
▷ 순막집 : [명] 주막집.

▷ 야밤중 : [명] 한밤중. 야(夜)밤중(中).
▷ 뒤재도 : [동] 뒤척이다. 뒤척여도.

▷ 시멋 없이 : 생각없이 멍하니.
▷ 적이 : [부] 적잖이. 얼마간.
▷ 머리낄 : [명] 머리카락.
▷ 단장 : [명] 단장(短墻). 나지막한 담.
▷ 슷고 : [동] 스치다.

▷ 정주곽산(定州郭山) : 정주와 곽산. 곽산군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주군에 통 합되었다. 정주군 곽산면.

▷ 멧나물 : [명] 산나물.
▷ 얼결 : [부] 엉겁결. 갑자기, 얼떨결.

▷ 저저마다 있노라 : 저마다 각각 있노라.
▷ 솔대 : 소나무와 대나무

▷ 헤적임 : 헤적이다(들추거나 파서 헤치다)의 명사형.

▷ 어스름 : [명] 새벽이나 저녁의 어스레한 빛.
▷ 함빡히 : [부] 함빡. 흠뻑의 작은 말.

▷ 차라지면서 : 나이가 차지면서. 나이 들면서.
▷ 가늣한 : [형] 가느다란.
▷ 야젓이 : [부] 의젓이의 작은 말.
▷ 일어라. : 일어나라.
▷ 홰치는 소리 : 닭이나 새가 날개를 탁탁치는 소리.
▷ 빗보고는 : 빗보다. 실제와 다르게 보다. 착각하여 잘못보다.

▷ 만수산(萬壽山) : 개성 송악산의 다른 이름. 중국 북경시 북서쪽 교외에 있는 산.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명승지로서 완소우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태종 이방원의 시조에도 만수산이 등장한다. 소월의 고향 근처 산을 지칭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정주 근방의 산이름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 제석산(帝釋山) : 높이 218m의 잔구(殘丘)로서 정주평야에 있는 작은 산.
잔구殘丘 - 준평원 위에 홀로 남아 있는 언덕. 주위의 땅이 낮아짐으로써 이루어진다.

▷ 그대인가고 : '그대인가 하고'를 줄인말.
▷ 낙천(樂天) : 하는 일에 긍정적이며, 어려움을 예상하지 않는 태도를 말함.

▷ 무쇠다리 : [명] 무쇠로 만든 다리. 주철(鑄鐵)로 된 다리.
▷ 숨 고르고 : 숨을 고르다(정상적인 상태로 순조롭게 하다)의 활용형.

▷ 초파일 : 본음은 초팔일. 불교에서는 팔일(八日)을 파일이라 한다.
▷ 수양(垂楊) : [명] 수양버들의 준말.
▷ 휘젓이 늘어져서 : 휘청이듯이 길게 늘어진 모양을 나타내는 말.
▷ 겹지 : 겹다(정도가 지나쳐 배겨내기 어려운 기분. 북받쳐 누를 수 없는 감정상태를 나타 내는 말)의 활용형.

▷ 고초(苦草) : [명] '고추'의 원말.

▷ 추거운 : [형] 축축한. 평안방언.

▷ 고적(孤寂)한 : 외롭고 적적함.

▷ 독엣물 : [명] 독(물동이)에 담아 놓은 물.
▷ 찌었지마는 : [동] 말라서 줄어들다.
▷ 살 : [명] 화살.
▷ 표적이외다 : 표적입니다.
▷ 죽지 : 날개.
▷ 길신가리 : 길일(吉日)을 정해 죽은 사람의 복을 빌어주는 것. '길신(吉辰)'과 '가리'의 결합형.
길신吉辰 - 좋은 날.

▷ 새라 : 새로운.
▷ 삼성 : [명] 삼성(參星). 오리온(Orion) 자리에 있는 삼성(參星). 오리온 자리는 겨울철 남 쪽 하늘의 별자리인데, 눈에 띠기 쉬워 겨울 밤하늘의 왕자라고 할 수 있는 별자리이다. 그리스 신화의 용사 오리온을 상징하며, 3개의 별은 용사의 띠에 해당한다.

▷ 새어올 : [동] 새다. 새어오다. 밝아오다.
▷ 산란(散亂)한 : 어지럽고 어수선하다. 산란은 파동(波動)이나 입자선(粒子線)이 물체에 부 딪쳐 여러 방향으로 불규칙하게 흩어진 모습을 말한다.

▷ 내력(來歷) : [명] 겪어온 자취. 지나온 경로(經路).
▷ 새 없이 : '-할 사이 없이'. 경황없이. 곧바로

▷ 감발 : [명] 발감개. 발감개를 한 차림새.
▷ 길심매고 : [동] 길을 떠날 때 옷의 차림새를 단단하게 여미다.
▷ 다시금 : '다시'와 '-금'의 결합형. -금은 중세국어의 -곰에 해당한다. -곰은 강조를 나 타내는 특수조사였다.

▷ 들돌이 : 들(野)과 돌(回)과 명사파생접사 -이의 결합형으로 산과 들을 돌며 노는 일을 뜻하는 말.
▷ 분전 : 분전(焚田). 화전(火田).
▷ 소리개 : [명] 솔개. 수릿과의 새. 몸빛은 암갈색이며 가슴에 흑색의 세로 무늬가 있다.

▷ 강(江)두덕 : : [명] 강의 둔덕.
▷ 쌔울지라도 : [동] 쌓이다. 쌓일지라도. 소월시에서 '쌓다'의 피동형 '쌓이다'는 '쌔우다' 로 나타난다.
▷ 터야 아니랴 : 터가 아니겠는가.

▷ 심사(心思) : 마음. 생각.
▷ 바이없는데 : 바이없다(전혀 없다, 아주 없다)의 활용형.
▷ 누 : [명] '누구'의 바뀐말.

딴지 따니 - 두 명 이상이 쇠돈을 바람벽에 힘껏 쳐서 멀리 튕겨져나가게 하고, 그 거리의 차례 대로 돈 떨어진 자리에 서서,
그 돈으로 다음 자리에 떨어진 돈을 맞혀서 따 먹는 돈치기



목욕탕에서
-그 애비와 그 자식

콸콸콸콸
대야에 넘치는 물이 하수구로 사정없이 흘러간다
한 사내 대야 앞에서 때를 밀고 수염은 민다

그 옆에 네댓살 사내아이의 대야에서도
물이 넘쳐 흐른다

콸콸콸콸

사내아이 뜻없이 넘치면 엎고 또 엎고 한다

십리 길 걸어서 황톳물 머리에 이고오는
아프리카 아낙에 목욕탕 훈짐 속에 어리고

차이 관습과 사랑은 하나

그대
겨드랑이에 팔짱을 껴보라
왼쪽이 아래로 들어가는가 오른손이
밑으로 들어가는가

팔겨드랑이를 켜보라



행복의 척도

목욕탕 최씨는 구정 다음날도 출근하면서도
이곳이 제일 편하다고 했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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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afefile/pds58/15_cafe_2008_01_24_09_26_4797db0ec29bf">
< 유고시집 :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앞날개에 실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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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e>


사십대 / 고정희


      < pre>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창작과 비평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고정희 遺稿詩集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고정희 시인은 43세에 지리산 등반 도중 실족사를 했기 때문에 사십대 이후를 살아보지 못했지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서 한창 수확하는 철에 뿌려놓은 것을 다 거두지도 못하고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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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e>

산유화(山有花)

      소월




      산(山)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山)에

 

      산(山)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山)에서 우는 적은 새요

 

      꽃이 좋아

 

      산(山)에서

 

      사노라네



      산(山)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김소월 ... 산유화 [김성태곡, 조수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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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bed invokeURLs="false" AllowScriptAccess="never" allowNetworking="internal" src=http://rudfo.com.ne.kr/music/bumo.wma> 김소월....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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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 김소월

< br />
낙엽(落葉)이 우수수 떠러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 br />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來日)날에

내가 부모(父母) 되어서 알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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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金素月, 1902-1934, 본성명 김정식 廷湜)

평북 정주 출생

민족시인

1920년대 민요조 서정시를 씀

오산중학 시절 스승인 김억(金億, 김안서)의 추천으로, [창조(創造)] 5호에 <낭인(浪人)의 봄> 등 5편 의 작품을 발표
1922년부터 김억의 주선으로 [개벽(開闢)]지를 통해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진달래꽃 >, <못잊어> 등 발표
1923년에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1924년 김동인 등과 함께 [영대(靈臺)] 동인으로 활동
민요조의 고운 가락, 그리움의 애달픈 정서 표현

1934년 12월 사업의 실패와 세상에 대한 실의로 고민하다 자살

1925년 그의 생전에 [진달래꽃] 출간

그의 사망 후 1939년 김억의 주관 하에 [소월시초(素月詩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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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상곡 - '마음에 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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