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2 (시 모음)
여자의 냄새
김소월
푸른 구름의 옷 입은 달의 냄새.
붉은 구름의 옷 입은 해의 냄새.
아니 땀 냄새, 때묻은 냄새,
비에 맞아 축업은 살과 옷 냄새.
푸른 바다……어즐이는 배……
보드라운 그리운 어떤 목숨의
조그마한 푸릇한 그무러진 령(靈)
어우러져 비끼는 살의 아우성……
다시는 장사(葬事) 지나간 숲속엣 냄새.
유령실은 널뛰는 뱃간의 냄새.
생고기의 바다의 냄새.
늦은 봄의 하늘을 떠도는 냄새.
모래두던 바람은 그물안개를 불고
먼 거리의 불빛은 달저녁을 울어라.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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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혼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운다.
떨어져 나가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빗겨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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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그 누가 나를 헤내는 부르는 소리
붉으스럼한 언덕, 여기저기
돌무더기도 움직이며, 달빛에,
소리만 남은 노래 서러워 엉겨라,
옛 조상들의 기록을 묻어둔 그곳!
나는 두루 찾노라, 그곳에서,
형적없는 노래 흘려퍼져,
그림자 가득한 언덕으로 여기저기
그 누가 나르 헤내는 부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내 넋을 잡아끌어 헤내는 부르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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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안서 선생 삼수갑산운(次岸曙 先生 三水甲山韻)
삼수갑산 내 왜 왔노 삼수갑산 이 어디뇨
오고나니 기험타 아아 물도 많고 산 첩첩이라 아하하
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삼수갑산 멀더라 아아 촉독지란(蜀道之難) 예로구나 아하하
삼수갑산 이 어디뇨 내가 오고 내 못 가네
불귀로다 내 고향아 새가 되면 떠가리라 아하하
님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내 못 가네
오다가다 야속타 아아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
내 고향을 가고지고 오호 삼수갑산 날 가두었네
불귀로다 내 몸이야 아아 삼수갑산 못 벗어난다 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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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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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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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동새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津頭江)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진달래꽃』. 매문사. 1925 : 『김소월 전집』. 문장. 1981)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7편 수록 중 1편. 2007)
2012-03-06 /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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