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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배 씨
김남극
돌배는 딱 깨물어 씨방을 갈랐을 때 씨가 까맣게 두 눈을 동그랗
게 뜨고 세상을 내다보면 다 익은 것이다
그러니까 검은 눈동자가 늘 문제다
유년기를 갓 벗어난 어느 날 개울을 건너다 본 그 허벅지가 유난
히 흰 그 계집애의 눈동자가 별나게 검었다
최루탄 속에서 돌아갈 길이 아득한 눈물 속으로 내 손을 끌어주던
그 여자의 눈동자도 별나게 검은 빛이었다
지금 내 옆에 반듯하게 조용히 잠든 아내가 하늘거리는 짧은 치마
속으로 내 마음을 끌고 들어갔을 때 어둠 속에서 본 그 유난히 검은
눈동자
검은 빛은 완숙의 경지고 매혹의 경지고 그래서 그 속에 들면 자발
적 수형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하늘 가득 매달린 돌배들이 어설픈 푸른빛 얼굴로 나를 내려다본
다
돌배를 하나 따서 딱 깨물어본다
씨가 검다
물기가 남았다
씨는 씨방 속에서 참 많이 울었나보다
울음 속으로 들어가 본다
나는 이 마가리*를 떠날 수 없다
*마가리: 영동 방언, 골짜기의 맨 끝
-반년간『서정과 현실』(2012년 상반기호)
-웹진 시인광장 선정『2012 올해의 좋은 시 100選』(아인북스, 2012)
2012-10-02 화요일 1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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