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선인장 입구 / 강정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2. 10. 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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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입구


강정


           "표적은 죽음으로써 긴장과 공포로부터 해방된지.
            그것 때문이지, 그렇게 웃는 얼굴이 되는 건."
            -스즈키 세이준 감독, 영화 <피스톨 오폐라>에서

 


상처를 천 년 정도 문지르면 꽃이 필까
이 몸이 만 년을 견디는 나무가 될까
그러나,
가시는 최초의 고백이거나
최후의 사정射精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입술이 천지를 헤매다
한낮 소나기로 지난밤의 지도를 바꾼다
우뚝 선 허공에 물기가 마른다
은박銀箔을 두른 태양이 애인의 머나먼 창문 앞에서 혼절한다
신기루 같은 기억의 방사선이
대기의 과녁으로 떠오르면
나는 백 개의 다른 이름으로 쪼개져
세계의 궁륭 깊숙이 칼침을 던진다
마지막 물기를 베어 물고
낱낱의 공기입자로 바스러지는 바람
매 순간의 절벽 앞에서
사랑은 더운 향기를 깨물고
온몸에 가시를 두르는 천형 아닌가
독 오른 신열이 한 줄로 꿰어내는 땅과 하늘 사이
숨어 있는 빛의 허물이 이 몸 안에서 눈뜰 때
뭇매 맞은 영혼들 데불고 천진한 원귀寃鬼를 두르려 깨우리
이곳은 대지의 마지막 문
제 몸과 사별하는 도마뱀과
만 년을 침묵하는 이구아나와
시체를 먹고 살찐 까마귀 떼도 정렬하라
최선의 종말로 최악의 이해를 얻는,
웃음이 가시로 뻗친 초록의 총구銃口 앞으로

 

 

 

-계간『문예중앙』(2011년 가을호)
-웹진 시인광장 선정『2012 올해의 좋은 시 100選』(아인북스, 2012)
2012-10-02 화요일 13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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