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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지표생물
김원경
어느 날 신생아실에서
우는 한 아가의 울음소리
에 더 크게 따라 우는 아기들을 보았습니다
쓸쓸한 가죽을 쓰고 태어난 이 세상 모든 연약한 생물들의
아름다운 동맹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마지막에 울었던 울음은
우리가 맨 처음 누군가를 위해 울었던 본성을 기억하기 위한 마중물입니다
당신이 드라마를 보면서 꺼억꺼억 따라 우는 것은
아득한 기억에서 그날의 아름다운 동맹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울음은 일종의 선약입니다
지금은 유빙처럼
각자 다른 방식으로 떠내려가지만
언젠가 한 곳에서 만나 몸을 녹이며 악수를 청하게 될 것입니다
외로운 다큐멘터리처럼
지금 긴 침묵의 보호색은 배경을 의심하며
여기저기 소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당신의 투명한 침묵은
더 이상 천연기념물이 아닙니다
그러니 호주머니 속으로 사라진
희미한 손가락을 꺼내
울음이 깃든 곳을 방문하고 가십시오
환경지표생물처럼
이 견고한 세계의 억양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가십시오
어쩌면 모든 것이 무효로 돌아갈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요
그럼에도 불구不屈하고
우주가 당신을 뱉어냈던 한 호흡으로
죽음에 임박한 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듯
이 세상 모든 연약한 생물들이 냈던 울음소리를 온몸으로 기록하고 가세요
당신의 그 쓸쓸한 가죽이 울음에 젖어 있는 동안
그 어떤 태양도 당신을 태우지는 못할 것이니
-계간『녹색평론』(2012년 봄호)
-웹진 시인광장 선정『2012 올해의 좋은 시 100選』(아인북스, 2012)
2012-10-02 화요일 1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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