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론
야성의 육체에 깃든 사랑의 핏줄
- 김왕노 시인의 최근작을 중심으로
박 완 호
김왕노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의 육체로부터 터져 나오는 뜨겁고도 끈적끈적한 숨결의 언어를 지닌 시인이다. 첫 시집인 『슬픔도 진화한다』와 두 번째 시집 『말 달리자 아버지』에서 그는 이미 그러한 자기 시의 특징을 긴 호흡의 육성肉聲이 담긴 시들을 통해 유감없이 펼쳐 보인 바 있으며, 세 번째 시집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특징을 지니면서도 한결 부드러워진 정서와 간결해진 언어가 잘 어우러진 사랑의 시편들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근 발표되는 그의 시편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치열한 주제 의식과 함께 깊이 있는 사유와 유연해진 언어가 효과적으로 결합된 시적 표현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 있는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는 김왕노 시인의 근작 몇 편과 신작시를 읽어 나가면서 그 속에 담겨 있는 몇 가지 의미들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죽음의 ‘탁발’- 생에 대한 역설적 인식
김왕노 시인의 최근 작품 및 신작시를 관통하는 두 개의 축은 ‘죽음-이별’과 ‘시’라고 할 수 있다. 첫 시집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는 ‘죽음 – 소멸’과 ‘위독 – 결핍’의 문제의식을 지속적으로 다루어 왔는데, 근작인 「아버지의 탁발」은 김왕노 시인이 지닌 죽음에 대한 인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의 말대로라면 삶이란 결국 ‘죽음을 탁발’하는 것이며, 죽음은 ‘생을 탁발’하는 것이다. “늙은 수탉처럼 자주 죽음을 탁발하러”다니지만 항상 허탕만 치고 돌아오는, 늘 ‘죽음’에 배가 고파하던 아버지는 한 개인의 혈육을 넘어 인간의 생의 본질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원래 인간이란 엄마의 자궁에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죽어가는 존재가 아닌가? 끊임없이 죽음을 탁발하다 ‘탁발에 성공’하는 순간 죽어버리고 마는 그런 존재 말이다. 하지만 막상 평생 죽음을 탁발하는 자의 삶이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일까? 죽음의 탁발에 실패하고 돌아온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는 고통스런 삶을 살아온 그의 내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러던 그는 마침내 ‘탁발’에 성공하여 그토록 갈망하던(?) 죽음을 끌어안는다. 그런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주저앉고 무너지는가? 그러나 시인은 죽음 앞에서 마냥 슬퍼하기보다는 이제는 “생을 탁발하러 풀꽃으로 피어나거나/ 구름으로 흘러”올 아버지를 생각하며 손 탁탁 털며 돌아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죽음’이란 곧 ‘생’이며, ‘죽음’이란 것이 탁발에 성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 또한 탁발에 성공하는 것일 뿐이다.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생명들이 막혀 있던 숨을 토하기 시작하는 봄, 아버지는 생을 탁발하러 풀꽃이 되어 구름이 되어 세상을 끝없이 들락날락하고 있으리라. 그러한 ‘죽음’과 ‘삶’에 대한 순환의 상상력은 김왕노의 시가 지닌 건강한 그리움의 토대가 되어준다.
아버지 눈길은 질경이 자욱한 풀밭을 지나
늙은 수탁처럼 자주 죽음을 탁발하러 갔다가
허탕치고 오셨다.
그런 날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는 유난히 컸다.
죽음을 탁발하러 온 새가
참죽나무 숲에서 죽어 갈 때
아버지도 죽음에 유난히 배고팠던지 새처럼 울었다.
가끔은 탁발을 끝낸 듯 미동도 없는 날
나는 놀라서 자주 가던 길을 놓치기도 했다.
어머니는 접시를 놓쳐 산산이 부수기도 했다.
아버지 탁발에 성공하여 선산에 씨앗처럼 뿌리고
손 탁탁 털며 돌아올 때
아버지 이제 생을 탁발하러 풀꽃으로 피어나거나
구름으로 흘러오리라는 생각도 꼭꼭 다지면서 돌아왔다.
아버지 이제는 생을 탁발하러 부지런히 오기 쉬운 봄
끝없이 세상으로 들락날락하여야 할 아버지의 탁발
- 「아버지의 탁발」 전문
그러나 어떤 죽음은 ‘탁발’을 나갈 경황조차 없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 죽음 앞에서는 누구라도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시인 K의 갑작스런 죽음을 떠올리게 만드는(나로서는) 「파란만장」은 새파란 나이의 이름이 물고 온 ‘부고’가 일으킨 마음의 ‘파문’으로 종일 ‘일파만파’의 충격을 겪고 있는 화자의 모습을 통해 그것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탁발’의 상상력을 통해 아름답게 승화시킬 만큼의 정신력을 지닌 그이지만, “죄 하나 짓지 않아 저 투명한 이름, 꽃처럼 향기 나던 이름, 개울의 징검다리처럼 정이 가던 이름, 세상 한쪽을 잘 받치고 있던 이름”의 낯선 부고 앞에서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 “살아야 될 이유가 죽어야 될 이유보다 더 많은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대하는 화자의 마음가짐이야말로 김왕노 시인이 얼마나 따뜻한 품성을 지닌 사람인가를 한 마디로 보여주는 것이다.
낯익은 이름 하나가 봄 초입에 부고를 물고 내게 왔다. 난 만우절인가 했다.
한창 살아야 할 새파란 나이의 이름이 부고를 물고 와 창밖 나뭇가지에 앉아 까치처럼 온 몸을 끄덕거린다. 살아야 될 이유가 죽어야 될 이유보다 더 많은 그이기에 죽어도 아직 생생한 이름으로 끄덕거린다.
죄 하나 짓지 않아 저 투명한 이름, 꽃처럼 향기 나던 이름, 개울의 징검다리처럼 정이 가던 이름, 세상 한 쪽을 잘 받치고 있던 이름이 부고를 물고 와 이른 아침 창밖 나뭇가지에 앉아 까치처럼 짖고 있다. 저러다 저 이름 어디로 날아가 이승의 가지를 물어다가 저승의 따뜻한 둥지를 만들려는지, 까치 같은 이름 하나 부고를 물고 와 저기 앉아 짖고 있다.
저 이름 까치처럼 짖을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데 저 정든 이름 하나 먼 곳으로 떠나려는 수순을 밟으려는지 정을 떼려는지 그만 짖어라 할 때까지 짖으려 한다.
짖다가 훌쩍 가버리는 이름이 일으킨 파문으로 내 가슴이 종일 일파만파다. 파란만장이다.
- 「파란만장」 전문
김왕노 시인에게 있어 ‘죽음 - 이별’은 역설적 깨달음을 통해 ‘생 - 기쁨’의 뜻을 지니고 새롭게 태어난다. 그에게 있어 ‘이별’은 관념이 아니라 ‘육체성’을 획득한 한 마리 짐승과 같은 존재이며, 사랑의 공백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존재와의 마주침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이별’은 더 이상 아프고 슬픈 일이라기보다는 ‘기쁜 이별’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이별은 “흔적마다 대꽃처럼”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며, 그러기에 화자는 “열일 다 제쳐두고 이별을 마중”하는 것이리라.
이제 이 세상에 웃을 게 없어 이별에 웃습니다.
이 세상에 기뻐할게 없어 이별을 기뻐합니다. 이별의 흔적마다 대꽃처럼 꽃이 피는데 이별의 후폭풍에 가슴은 너덜거리는데 이 세상에 사랑할게 없어 이별을 사랑합니다.
가는 길도 이제는 이별의 길, 맞이하는 것도 이별의 아침, 다가오는 것도 이별의 기차
이별의 연안부두 그래도 세상에 놀아날 마땅한 게 없어 이별과 놀아납니다.
이별과 한 철 잘 놀아납니다. 이별과 깨가 쏟아집니다. 이별을 다 탕진해버릴 때까지
세상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이별과 작당한다고 정신없습니다.
- 「기쁜 이별」 부분
별점을 쳐서 어디로 가나 - 시의 본향을 찾아가는 길
별점을 쳐서 자야를 노래했다는 백석에게 가나
나는 백석을 사랑하고 백석은 나를 모르고
나의 자야는 시름시름 아파간다는 자야라는
시에 가서 사나흘 굶다가 오나
저렇게 별자리가 뚜렷하고 별은 익었는데
난 뜨겁게 별점을 쳐서 윤동주의 족적을 따라가나
별을 헤이는 그 밤으로 막배처럼 떠나가나
나는 동주를 사랑하고 동주는 나를 모르고
나의 별을 헤는 밤은 시름시름 아파간다 라는
시를 쓰기 위해 자야의 꿈속까지 찾아가나
별점을 치기 좋은 밤, 그리움마저 포근한 밤
난 자야라는 시를 읽었고 난 별점을 쳐서 어디로 가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끝없이 이야기 하는 박인환의 시 속으로 떠나가나
자야라는 시를 읽고 있는 사이에도 먼별에서
패, 경, 옥이 그리운지 개 짖는 소리 들리는데
- 「별점을 쳐서」 전문
시인 스스로 정원숙 시인의 「자야」(웹진 ‘시인광장’ 2010년 7월호)를 읽고 나서 쓴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는 시 「별점을 쳐서」는 둘 다 ‘자야子夜’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는 있지만, 시적 동기가 되었을 뿐 전혀 다른 한 편의 시이며, 김왕노 시인의 ‘자야’ 또한 정원숙 시인의 ‘자야’와는 또 다른 의미의 ‘자야’라고 볼 수 있다(여기서 굳이 백석과 자야까지를 말할 필요까지는 없으리라.).
문맥으로 볼 때 “별점을 쳐서/ 자야를 노래했다는”으로 끊어 읽어야 할 이 시에서 시인은, ‘백석 – 윤동주 – 박인환’으로 이어지는 ‘공전의 궤도’를 따라 시(=시인)의 길을 걷고 또 걷는다. 그것은“먼저 간 백석이니 윤동주니 박인환이니 아니면 진이정이니 박영근의 불운했던 시인의 생 속을 우물 속처럼 빤히 들여다보게 되는”(「바람이 끝없이 너의 안부를 물어올 때」(계간‘시작’2011년 겨울호)) 통로이며, 시인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매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 하나하나는 단순한 통로나 매개로서만이 아니라 김왕노 시인이 꿈꾸는 시의 본향과도 같은 의미를 갖는 존재들인 것이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이 시는 시에 있어서 금기라고 할 수도 있는 상투를 거부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한 입에 꿀꺽 삼켜버림으로써 ‘상투’가 더 이상 ‘상투’가 아니게 만드는 면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의미의 맥락’보다는 ‘리듬의 맥락’을 중시하는 시작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는데 김왕노 시의 음악성은 주로 통사 구조의 반복을 통한 리듬의 형태로 나타난다.
현대시의 운율은 무엇보다도 시인들이 저마다 지니고 있는 남들과는 다른 호흡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김왕노의 시에서 나타나는 운율 감각은 파도의 운동성을 닮았다. 그것은 나뭇가지를 건드리는 새의 숨결처럼 섬세한 것이 아니라 바닷가 절벽을 향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의 몸짓과도 같은 것이며, 음운이나 음절의 형태가 아닌 제법 큰 덩치를 지닌 문장 구조의 반복을 통해 주로 이루어진다. 또한 그것은 ‘성적 이미지’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김왕노의 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성적 이미지는 세련되고 부드러운 것이라기보다는 거칠고 원초적인 기질을 그대로 드러낸다. 끊임없이 출렁이며 밀려드는 바다의 몸짓을 그대로 닮은 그의 호흡은 때로는 파도치듯 격정적인 모습으로 때로는 잔잔해진 수면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 바닥에는 쉴 새 없이 요동치는 내면의 흐름이 고요히 깃들어 있다.
김왕노 시의 ‘원초적 생명 의식’은 ‘도시’와 ‘문명’에 대한 불만과 비판 의식을 그 바탕에 깔고 있으며, 그것은 야성적 삶에 대한 갈망과 분방한 성적 이미지의 표출을 통해 구체화된다. 첫 번째 시집과 두 번째 시집에서 그는 그러한 자신의 시적 세계를 유감없이 펼쳐 보인 바 있다. 그 모든 것들의 바탕에 깔려 있는 주제 의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또한 대단히 거칠고 야성적인 호흡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세 번째 시집에 이르러서는 예전에 비해 많이 간결해지고 한결 부드러워진, 김왕노 시인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사랑의 숨결을 보여준다.
말馬 또는 말言 - 주체할 수 없는 시의 욕망
김왕노 시인은 시에 관한 한 누구보다도 강한 욕망을 지닌 시인이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그런 욕망을 품고 있겠지만 그는 그것을 숨기거나 절제하려고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분출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저 말, 누대의 남근을 달고 섰다.
덜렁거리는 저 커다란 말씀
가슴에 쭉쭉 사정되어올 비린 말씀이
꽉 들어찬 저 말의 단단한 불알
그 말씀의 힘을 침 꼴깍 넘어가면서
수줍게 훔쳐보았을 이 땅의 여자들
끝없이 말 달려온 남정네를
소리 없이 기다린 아낙네들
그래 우리 함께 말 달리자
태몽 깊은 밤을 지나
북벌을 향해 뜨거운 말갈기 날리며
저 말, 지금 달리려 히힝 거리고 있다.
- 「말」 전문
말은 ‘馬’이며, 또한 ‘言’이다. ‘말 = 言 혹은 詩’라면, 그것은 “덜렁거리는 말씀(남근)”이며 “가슴에 쭉쭉 사정되어 올 비린 말씀”이다. 여기서도 김왕노 시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성적 발화가 두드러진다. 김왕노 시인의 시어는 야성의 육체를 지닌 언어이며 걷잡을 수 없는 성적 이미지로 충만한 한 마리 말과도 같다. 그런 그의 거침없는 성적 발화가 천박하게 느껴지지 않고 독특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읽혀지는 것은 화자 스스로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인간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 그것은 더도 덜도 아닌 진실 그 자체이며, 원초적 생명성을 추구하는 시인의 태도와 직결되어 있다. 시인은 그러한 시적 발화를 통해 원초적 생명성을 향한 치열한 추구 의지를 발판으로 하여 현대 문명의 무생명성을 적극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야성의 육체에 깃든 사랑의 핏줄은 끊임없이 사랑하고 또 노래하면서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계속해서 앞만 보고 달려갈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어딘가를 향해 줄기차게 달려가는 중이다. 그가 끝끝내 가 닿고 싶은, 누군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 [시와 표현] 2012년 여름호
- 박완호 시인 블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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