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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
정와연
수선집 사내의 어깨에 말의 문신이 매어져 있다
길길이 날뛰던 방향 쪽으로 고삐를 묶어둔 듯
말 한 마리 매여 있다
팔뚝에 힘을 줄 때마다
아직도 말의 뒷발이 온 몸을 뛰어다닌다
고삐를 풀고 나갈 곳을 찾고 있다는 듯 연신 땀을 흘린다
저 날리는 갈기를, 콧김을, 이빨 드러내는
투레질을 굵은 팔뚝에 가둬두고 있다는 것을
저 사내 알기나 할까
어쩌면 질풍노도의 시절에 스스로 마구간을 짓고
지독한 결심으로 고삐를 매어두었을지도 모른다
말은 복종하는 발굽과 항거하는 발굽이 다르다
앞발을 굽힐 때 뒷발은 더 빡세게 버티는 법이다
어느 뒷골목의 시간들을 붙잡아
사내의 안쪽을 향하게 단단히 묶었으나
꿈틀거리는 역마살이란 언제까지 갇혀 있을 발굽이 아니다
비좁은 마방에서 수년 째 구두를 깁는 일이
자못 수상하기까지 하다
닳고 닳은 뒤축을 깁는 일과
말의 박차를 박는 일에 우연(偶然)이 있다면 그것은 다 길의 파본이다
발굽을 갈아 끼울 때마다 사내는
박차고 나가려는 팔뚝의 불뚝한 말을 오래 쓰다듬듯 주무른다
이제야 말 한 마리를 다룰 줄 안다는 듯
말과 주인이 따로 없다는 듯이
(2013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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