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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문학은 쓰디쓴 것…핏덩이처럼 써라"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1. 7.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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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문학은 쓰디쓴 것…핏덩이처럼 써라"

일기 `바람의 사상`·대담집 `두 세기의 달빛` 출간 매일경제 | 입력 2013.01.07 17:03 | 수정 2013.01.07 19:11

 

1970년대 어느 날 밤이었다. 문인들과 마신 술에 불콰해져 불 꺼진 집에 들어섰다. 라디오 소리만 방을 지키고 있었다. 조곤조곤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다 문득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은 시인(80)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의식을 치르듯 반드시 몇 자를 적고서야 잠을 이룬다.

고은 시인의 70년대 일기 '바람의 사상'과 대담집 '두 세기의 달빛'을 한길사가 묶어 내놨다. 7일 한국언론재단(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전쟁이나 논쟁으로만 역사가 진행되는 건 아니다. 배추 값 같은 시정잡배들 미시사적인 서술행위도 의미가 있다. 비정치 분야 삶의 화석들, 궤적들, 고고학들이 우리를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가"라고 말했다.

'바람의 사상'은 73년 4월 6일부터 77년 4월 11일까지 하루하루를 담았다. 그의 일기는 시인의 개인사이자 당대 정치사회사다. 술 좋아하고 원고 쓰는 일에 쫓기고 그나마 받은 원고료를 또다시 술에 퍼붓는, 그의 표현대로 '폐허'처럼 살았던 모습과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지식인의 면모, 자기 글을 향한 비장한 각오도 엿보인다.

"문학 달지 마라. 문학 쓰디쓴 것이기를. 귀신이 토해내는 검은 핏덩이처럼 써라. 못 먹을 만큼 쓰디쓸 것. 달콤한 작가, 달콤한 계집, 달콤한 언어들을 살육하라."(1973년 4월 13일) 그는 "70년대의 나는 아주 순정 덩어리였다. 지금처럼 숙련된 눈으로만 파악해야 하는 시대와 상황이 아니었고 비논리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고 거리를 보고 울고 웃고 그랬다. 그때가 우리들의 소녀시절이었다"면서 "시인 고은의 시작점이자 또 하나의 고향이 70년대"라고 말했다.

반면 '두 세기의 달빛'에서는 소설가 김형수와 마주 앉아 그의 삶과 문학, 마주한 역사와 문명을 육성으로 들려준다. 그가 들추고 회상하는 과거는 1930년대에서 50년대 초까지다. 모국어를 잃은 식민지 소년이 광복을 맞고, 전쟁 뒤 폐허의 귀퉁에에서 마침내 시작의 첫걸음을 내디딜 때까지를 세밀한 기억력으로 더듬는다.

그렇게 술을 좋아하던 시인은 "요즘 술 먹는 시간이 아깝다.술보다 책이 더 좋다. 20대엔 언어도단이 나를 가장 신나게 했고 책을 부정하는 삶을 살았는데 후반 생애에 오면서는 전천후적으로 책과 함께 살고 있다"며 "그렇게 황홀하던 술집도 책보다는 부차적이 됐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문학의 시대가 쭈그러들고 있지만, 문학의 힘이 새로워질 거라는 확신을 늘 갖고 있다"고 했다.

신년에는 제법 긴 시간 외국에 머물 예정이다. 최근 이탈리아 베네치아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한 학기 강의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곳에 가서 장래 구상도 해볼 생각이다. 5월에는 아프리카 남아공에서 시인 몇몇과 모여 축제에 참여한다. 그는 "우리 조상이 시작됐다는 기점인 아프리카 체험을 해보고 돌아오면 시 몇 편이 나올지 모르겠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