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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의 도둑
장석남
나는 그녀의 분홍 뺨에 난 창을 열고 손을 넣어 자물쇠를 풀고
땅거미와 함께 들어가 가슴을 훔치고 심장을 훔치고 허벅지와 도
톰한 아랫배를 훔치고 불두덩을 훔치고 간과 허파를 훔쳤다. 허나
날이 새는데도 너무 많이 훔치는 바람에 그만 다 지고 나올 수가
없었다. 이번엔 그녀가 나의 붉은 뺨을 열고 들어왔다. 봄비처럼
그녀의 손이 쓰윽 들어왔다. 나는 두 다리가 모두 풀려 연못물이
되어 그녀의 뺨이나 비추며 고요히 고요히 파문을 기다렸다.
-천양희|장석남 외 지음『시, 사랑에 빠지다』(현대문학. 2009)
|시작노트|
그녀의 심장을 읽는다. 이렇게 써 있다. 넌 누구냐? 넌 누구냐?
넌 여기 있을 만한가? 내 지게는 무겁고 어깨는 부실하고 작대기
는 삭아간다. 홀짝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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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인천 출생. 1987년 ≪경향신문≫으로 등단. 시집『새떼들에게로의 망명』『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젖은 눈』『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등. <소월시문학상>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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