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적도 없이 / 정선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1. 1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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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없이


정선희

 

 

사람들은 놀라워하지
아직도 스마트폰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아직도 018로 시작하는 것에 대해,
 

018은 외롭고
018은 고집스럽고
018은 촌스럽고
018은 게으르고
018은 무식하고
018은 반항적이야
 

아직 멀쩡한 018을 버리다니 말도 안돼
새 애인이 생겼다고 옛 애인을 버릴 순 없잖아
여러 가지 기능이 다양한 것도 싫어
안 그래도 머리가 아픈데 너까지
복잡한 건 용서할 수 없어
나는 단순한 것들이 좋아
휴식을 주는 것들이 좋아
달콤한 것들이 좋아
머리는 나쁠수록 좋고
디자인은 촌스러울수록 정겨워
사람들은 점점 세련되고 화려한 것들을 좋아하지
나는 손때가 묻은 것들이 좋아
유행이 지난 것들이 좋아
나는 좀 덜 떨어진 인간
진화가 덜 된 원시인
 

그거 아니?
내가 지금
별것도 아닌 것에 반항하고
적도 없이 싸우고 있다는 거,
 

 

 

-월간『우리詩』(201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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