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으로부터 바람
이제니
빨강과 파랑이 섞이는 풍경을 보고 있었다.
밤으로 만든 의자에 앉아서.
너는 걸어 다니는 시,
울면서, 잠들면서, 노래하면서,
순간의 순간에서 순간의 순간으로
리듬에서 시작해서 리듬으로 끝나는
만난 적 없는 색깔이 섞이는 밤이다.
너에 대해 속삭이고 속삭이는 밤이다.
하나의 몸에서 나뉘어진 두 개의 장면.
반짝이면서 하얗게 사라지는 전날의 거울.
거울의 뒤편에서 거울의 뒤편으로,
머나먼 곳으로부터 오는 바람 속으로,
웃음, 나는 울지.
울음, 나는 웃지.
언젠가 앉아 있던 잿빛의 계단
두 개에서 세 개로 증식하던 너의 얼굴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우린 이미 만났지요.
나무의 흔들림을 바라보면서, 어제의 믿음을 버리면서, 흔들리는 그림
자의 윤곽을 지우면서,
나는 울지, 그 대목에서.
나는 웃지, 그 거리에서.
멀리서 둥둥 북소리 들려온다. 숲은 고요하고 나무는 자란다. 하늘은
맑고 구름은 없다. 나의 구두는 반짝이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길 위에서.
천천히, 점점 빠르게 내달리면서.
내가 기억하는 몇 개의 단어
내가 말할 수 있는 몇 개의 사물
하늘엔 두 겹의 구름이 층층이 부풀어 오르고
나의 늙고 오래된 개는 말이 없다.
눈멀고 귀 멀어 자신의 고독 속에서,
사는 것이 죽는 것이다.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순간의 순간에서 순간의 순간으로
리듬으로 시작해서 리듬으로 끝나는
나는 울지, 그 계단에서
나는 웃지, 그 어둠으로
구름이 다가온다. 빛이 사라진다.
먼 곳으로부터 바람, 먼 곳으로부터 오는 네가 있다.
-『세계의 문학』(201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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