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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비굴도(卑屈圖)
김나영
까닭 있는 적의가 내 안에서 가성소다처럼 부풀어 올랐다 한 번쯤 폭발
했어야할 청춘은 끝내 평화로웠다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씹어대지 않으면
부끄러운 피를 견딜 수 없었다 태양은 내 반대편에서 떠오르고 나와 관계
없이 졌다 한번도 격렬하게 싸워보지도 않고 나는 비열하게 졌다 가족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날이 예삿날이 되었다 말을 점점 잃어갔다 발설되지
못한 말을 기록하려고 펜을 들었지만 저작저작 껌을 더 많이 씹었다 어디
로든 취하고 싶었지만 취할 용기도 없었다 가스통이라도 껴안고 불 속으
로 나를 장렬하게 소화시켰어야 했다 성냥 하나 살 돈이 없어서 끝내 무
사했던 내 청춘, 그후 내 생은 아무리 살아도 지리멸렬한 여생이다
-웹진『젊은시인들』(201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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