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사 애기똥풀
황인산
개심사 들머리 애기똥풀은 모두 옷을 벗고 산다.
솔밭에서 내려온 멧돼지 일가 헤집는 바람에 설사병이 났다.
개중에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얼굴 마주보며 괴춤만 내리고 쉬를 하고도 있지만
무리무리 옷을 훌렁 벗어젖히고 부끄러움도 모른 채 물찌똥을 누고 있다.
사천왕문 추녀 밑에서도 노스님 쉬어 가던 너른 바위 옆에서도
산길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엇이 노란 똥물을 갈기고 있다.
부글부글 끓는 배를 옷 속에 감추고 산물을 두드린다.
이 문만 들어서면 아침까지 찌들었던 마음도 애기똥풀 되어 모두 해소될 것 같다.
산 아래서부터 산불을 놓아 젊은 비구니 얼굴을 붉게 물들인 지가 언제인데
절집 위 옹달샘 풀숲까지 노란 산불에 타들어 가고 있다.
개심사 해우소는 천 길이나 깊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요동치는 배를 잡고 허리띠를 풀며 뛰어 들어갔지만 이런 낭패가 있나, 깊이가 몇 길은 되어 보이는데 얼기설기 판자로 바닥만 엮어 놓고 군데군데 구멍만 뚫어 놓았지 칸막이가 없다.
엉거주춤 볼일 보던 사람, 앉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 것도 아닌 자세로 오줌을 누는 사람들의 시선이 참 어정쩡하다.
몇몇의 눈길이 동지애를 느끼며 같은 자세를 취하길 원하였지만 안사부인 볼일 보는 화장실을 열어본 것처럼 놀라 아랫배를 내밀고 엉덩이에 댄 두 손에 힘을 주고 나왔다.
천 년 전 처음 이곳에 볼일을 본 스님은 자꾸 다시 들어오라 하는 것 같은데
보잘 것 없는 내 아랫도리 하나로 하늘도, 가냘픈 애기똥에 기댄 마음도 옷을 벗지 못한다.
개심사를 감싸고 있는 상왕산은 노란 산불에 타들어 가고 옆 칸에서 나오다 눈길 마주친 젊은 비구니의 얼굴엔 진달래 산불이 다시 옮아 붙고 있다.
(『제15회 신인지용문학상 당선작』.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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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종각 앞에서
최영철
무거우면 무겁다고 진즉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어요
이제 그만 이 짐 내려달라 하시지 그러셨어요
내가 이만큼 이고 왔으니
이제부터는 너희들이 좀 나누어 지라고 하시지 그러셨어요
쉬엄쉬엄 한숨도 쉬고 곁눈도 팔고
주절주절 신세타령도 하며 오시지 그러셨어요
등골 휘도록 사지 뒤틀리도록 져다 나른 종소리
지금 한눈팔지 않고 저 먼 천리를 달려가고 있습니다
뒤틀린 사지로 저리 바쁘게 달려가는 당신 앞에서
어찌 이승의 삶을 무겁다 하겠습니까
고작 반백년 지고 온 이 육신의 짐을
어찌 이제 그만 내려달라 하겠습니까
-시집 『찔러본다 』(창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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