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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臥溫 - 함태숙 / 김경성 / 송상욱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3. 1.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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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臥溫

 

함태숙 
 
 

지는 해 보자고 순천만 갈대밭 달려갔더니
해는 막 지고
내 살 네 살 없이 안고 누운 겨울 뻘밭 보았네
덥게 누웠다 하여 와온臥溫이라니
지는 해 받느라 더운 게 아니고
남의 찬 살 보듬느라 따스한 게 온기인가
한 몸을 쪼개어 둘로 떨어진 운주사 와불님네
부처가 꿈꾸는 내세가 있다면 저와 같을 것이라
한 이불 속 누웠다 떠난 인연들
허공에 둥둥 떠 오면 저와 같을 것이라
어느 생에선가 당신을 잃은 줄만 알았는데
당신은 처음부터 여기 있어
만난 바도 떨어진 바도 없다 하니
산다든지 죽는 것도 모두 이 반죽 속이라네
제 몸 떼어 제가 먹는 익반죽 속이라네
나, 살다가 못내 사무치는 게 있으면
불 꺼진 겨울 순천만 찾아가려네
당신은 더웁게 누워 나를 맞이하기 바라겠네.

 

 


-계간『시와정신』(2005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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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臥溫

 

김경성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으니
멈추는 곳이 와온臥溫이다
일방통행으로 걷는 길 바람만이 스쳐갈 뿐
오래전 낡은 옷을 벗어놓고 길을 떠났던 사람들의 곁을 지나서
해국 앞에서도 멈추지 못하고
세상의 모든 바람이 비단실에 묶여서 휘청거리는
바람의 집으로 들어선다
눈가에 맺힌 눈물 읽으려고
나를 오래 바라봤던 사람이여
그 눈빛만으로도 눈부셨던 시간
실타래 속으로 밀어 넣는다
흔들리는 것은 바람만이 아니다
흘러가버린 시간의 날줄에 걸쳐 있는
비릿한 추억, 삼키면 울컥 심장이 울리는 떨림
엮어서 갈비뼈에 걸어 놓는다
휘발성의 사소한 상처는
꼭꼭 밟아서 날아가지 못하게 하고
너무 깊은 상처는 흩어지게 펼쳐 놓는다
소용돌이치는 바람의 집
네 가슴 한껏 열고 들어가서
뜨거운 기억 한 두릅에
그대로 엮이고 싶은 날이다

 

 

 

-시집『와온』 (문학의전당,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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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臥溫)


―송상욱(1939∼)

 

 

마을 뒷산이 누워 계신 와불(臥佛)같다

품 안의 젖내음 나는

짐승들 누운 산이 따스하다

빈 속 쓸어내는 저녁답, 이맘때면 으레 그러듯

동네 삽살개 한 마리가 나룻배 닿는 갯가로 내려가

저만치서 뻘밭을 나오는 아낙들을 마중한다

바다 건너 화포 마을 포구에는 닻을 내린 어부들이

막사발 부딪는 소리, 뱃전에 끼륵이는 갈매기들 소리

귓전에 아련히 들려오다 파도에 쓸린다

해 저물어 누울

바다의 잠 자리 와온(臥溫)

속옷 갈아입는 듯

맨살 드러낸 뻘밭에 바닷물이 든다

갯펄에서 조개를 잡던 아낙들이

갯가로 나온 갯바구니 속, 바지랭이들이

뻘물 짜뜰름에 숨결 보챈다

밤이 되면 포구에 든 바다는

밤새 깊은 고뇌에 찬 듯 쏴아 쏴아

한숨을 내쉰다. 그러다

아침이면 고기잽이 배들 제 등에 둥둥 싣고 떠난다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72』(동아일보. 2013년 03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