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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말 ③ '참 거시기하구마이' - 아이들의 언어 습관을 위한 국어 교사의 고군분투기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3. 2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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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때 남도를 다녀왔다. 문화 유적을 탐방했는데 해설사께서 재미있는 말씀을 들려주셨다. "전라도 말에 거시기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뭔 말인지 아시는 분?"
이때 나는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내가 학교에서 듣고 싶지 않아도 아이들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말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거시기는 그 거시기가 아니었다.
"그랑께 전라도에서 거시기라 하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한마디로 말하자면 내용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것 그런 뜻이지라. 이 말은 국어사전에 공식 단어로 등재되어 있당께요."
이 말을 듣고 나는 명색이 국어 교사라는 사람이 표준어도 못 알아보고 거시기를 그 거시기로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개학을 하면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거시기의 뜻을 같이 찾아보고 거시기를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존나'의 뜻을 친절히? 가르쳐 주고 있는 것처럼…….

"선생님! 4교시 빨리 마쳐요. 존나 배고파요."
'헉!'. 이런 말을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도 선생님 앞에서 태연하게 내뱉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하자고 타일렀으나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존나'를 익히 들어 귀에 딱지가 앉은 터라 어른들이 싫어하는 말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을 뿐, 실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학생은 드물었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말뜻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이 말이 얼마나 부끄러운 뜻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기 시작한 것이다.
 
"'존나'는 성교육 용어로 말하자면 '발기'예요. 성기가 자극을 받아 커진다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존나 기분 좋다'는 '내가 기분이 좋아 지금 나의 성기가 발기해 있다' 이런 뜻이에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이 말을 듣고 아이들은 얼굴이 빨개지며 "에이 선생님~." 하며 염치를 차리는데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덧붙였다. "이제 여러분들도 '존나'가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고 있으니 이제부터 여러분 중에 '존나'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그 사람의 하체를 살펴볼 거예요."
"아악, 싫어요. 선생님! 제발 그러지 마세요."
그런데 나는 한번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 실제로 수업 시간이건 쉬는 시간이건 '존나'라는 말이 들려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아이의 하체를 빤히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이가 민망함에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이렇게 했더니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 입에서 '존나'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언어는 습관이기에 한순간에 확 바뀌지는 않았지만 이 말을 밥 먹듯 사용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이 말이 부끄럽고 속된 말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의 눈길을 애써 피하며 "선생님!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라고들 한다.
3월이다. 학기 초에 또 나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하체를 살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이 싫지 않다. 모르는 것을 알게 하는 것, 그것이 교육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국어 선생이 이렇게까지 한다는 게 참 거시기하구마이.'
 

글_신재영


국어 교사. 경기도 화성에 있는 대안 학교 두레자연고에서 14년째 아이들과 뒹굴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더 많이 배우는 것에 늘 기뻐하고 있는 교사다. 다시 태어나도 국어 교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