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의 집
이상국
그 해 겨울 영랑호 속으로
빚에 쫓겨온 서른 세 살의 남자가
그의 아내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가던 날
미시령을 넘어온 장엄한 눈보라가
네 켤레의 신발을 이내 묻어주었다
고니나 청둥오리들은
겨우내 하늘 어디선가 결 고운 물무늬를 물고 와서는
뒤뚱거리며 내렸으며
때로 조용한 별빛을 흔들며
부채를 청산한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인근 모래기*까지 들리고는 했다
얼음꽃을 물고
수천 마리 새떼들이 길 떠나는 밤으로
젊은 내외는 먼 화진포까지 따라나갔고
마당가 외등 아래서
물고기와 장난치던 아이들은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애들이 얼마나 추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의 빰을 적신다
그래도 저녁마다
울산바위가 물 속의 집 뜨락에
오래 가는 놀빛을 떨어뜨리고 가거나
산 그림자 속 화암사 중들이
일부러 기웃거리다가 늦게 돌아가기 때문에
영랑호는 문을 닫지 않는 날이 많다
그런 날은 물 속의 집이 너무 환하게 들여다보였다
* 모래기는 영랑호 주변에 있는 마을 이름.
-월간『현대시학』(1996,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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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송찬호
저 물의 깨진 안경을 보오
저 물의 젖은 손수건도 보오
물속에 4人가족 자동차가 살고 있소
물은 고요하고 깊으오
물의 벽지를 바꿔도 좋소
물의 침대를 새로 들여도 괜찮소
자동차는 바닥의 진흙에 박혀 더 산뜻하오
유서는 없었소,
저들은 지상에서
맨몸으로
수 없이 폭풍과 눈보라를 찍었소
그러니, 저 물에 빠진 도끼를 다시 꺼내지 마오
저들이 어떻게 사나 가끔씩
돌을 던져보아도 좋소
물가까지 쫓아온 빚쟁이들도 안부를 묻고 가오
찢어진 물은 곧 아물 거요
벌써 미끄러운 물위로 바람이 달리고 있소
-계간『문학들』(201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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