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에서 들어온 외래어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이 언어들은 근대 이후 서구 문명의 주축 역할을 한 언어이기 때문에 우리말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에서도 외래어로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우리말에는 이 언어들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네덜란드어, 라틴어 등 유럽의 다른 언어에서 들어온 외래어도 적지 않습니다.
스포이트 끝에서 황금빛 액체가 유리컵 속으로 방울방울 떨어졌다.
소설 속에서 대학을 나와 직업 없이 사회를 비판하는 주인공은 당시 인텔리겐치아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포르투갈어에서 온 외래어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아마 '빵pão'일 것입니다. 빵의 한 종류인 '카스텔라castella'도 포르투갈어에서 들어온 말입니다. 이집트 문명 하면 떠오르는 '미라mirra'도 알고 보면 포르투갈어에서 온 말이랍니다. 러시아어에서는 '근거지'나 '소굴'을 뜻하는 '아지트←Агитпункт',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지식층'을 뜻하는 '인텔리겐치아интеллигенция'와 같은 말들이 들어왔습니다. '스포이트spuit'와 '메스mes'는 네덜란드어에서 우리말로 바로 들어온 말이고, '가방かばん←kabas'은 네덜란드어에서 일본어를 거쳐 들어온 말입니다. '게릴라guerilla'와 '엘니뇨el Niño' 등은 에스파냐어에서 온 말이고, '미사missa, 레퀴엠requiem,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등은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짜장면 한 그릇으로는 허기가 가시지 않아 군만두 하나를 더 시켰다.
비도 오고 출출한데 중국집에서 뜨끈한 짬뽕이나 시켜 먹자.
중국어에서 들어온 말로는 저 유명한 '짜장면炸醬麵'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짜장면과 짝을 이루는 '짬뽕ちゃんぽん'은 일본어에서 들어온 말이라는 사실입니다. 말레이-인도네시아어에서 유래한 말로는 '오랑우탄orangutan' 등이 있습니다. '숲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본래 터키 사람들이 만들어 먹기 시작한 '요구르트yogurt'는 터키어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그리고 불교 용어인 '보살菩薩←bodhisattva, 반야般若←prajñā' 등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중국어를 거쳐 우리말에 들어왔습니다.
이처럼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아랍어, 히브리어 등 모두 30여 개 언어에서 차용한 외래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모국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의사소통을 돕자는 취지로 1887년에 자멘호프Zamenhof, L. L. 박사가 인공적으로 창안한 언어인 에스페란토Esperanto에서 유래한 말도 있다는 점인데, '카프KAPF'가 그 주인공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사회주의 계열의 문인들이 조직한 '카프'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을 뜻하는 에스페란토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의 머리글자를 딴 말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말들을 살펴보면서, 참 다양한 언어에서 외래어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낱말 중에서 여러 외국어에 들어가 그 언어의 외래어로 쓰이는 말들은 얼마나 있을까요? 아직은 '김치, 불고기, 태권도' 등 몇 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말을 더욱 아끼고 우리말로 좋은 글들을 많이 쓴다면 외국인들도 앞으로는 우리말에서 여러 낱말들을 가져다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말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의 문화를 발전시키려면 무엇보다 우리의 정체성을 오롯이 담은 우리말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근대 학문 발전 시기에 독일인들은 그들의 언어로 학술 용어를 만들어 쓰는 데 힘을 쏟았는데, 그 덕분에 오늘날 독일어는 다양한 분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언어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우리말을 더욱 적극적으로 살려 써서, 우리말에서 비롯된 말들이 세계의 여러 언어에서 쓰이는 날이 올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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