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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우리속담 ⑤ 보리까끄라기도 쓸데가 있다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5. 16.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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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보리의 계절입니다. 들판을 넘실대는 곧고 푸른 보리의 물결은 봄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곧 더운 여름이 찾아오겠지요. 혼식混食 검사를 하던 어릴 때 기억이 떠오릅니다. 쌀 소비량을 줄이고 보리 소비량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밥을 지을 때 보리를 많이 섞으라고 권장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도시락 검사를 대비해 친구들의 도시락에서 보리 낟알을 꾸던 기억이 선명한데 어느새 국내 쌀 소비량이 너무 줄어 걱정이라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보리는 예부터 서민들의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대변하는 음식이었습니다. 벼농사를 지어도 가을걷이가 끝난 뒤 나라에 세금 내고 땅 주인에게 땅을 빌린 만큼의 대가를 치르고 나면 정작 농사를 지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쌀의 양이 많지 않았습니다. 겨울을 나기가 어려웠지요. 특히 봄이 되면 추수한 곡식도 거의 다 떨어져서 끼니를 때우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보리를 수확하기 전까지 배고픔을 이겨야 했던 시기를 '보릿고개'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보리 수확 직전인 4~5월은 보릿고개가 절정에 이른 시기였습니다. '보릿고개가 산보다 높다'는 속담은 이와 같은 궁핍의 시간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니 보리를 베러 가는 길은 얼마나 기쁘고 신이 났을까요? 발걸음이 깃털보다도 더 가벼웠을 겁니다. '보리를 베면서 가라면 하루에 갈 길을 평지에서 걸어가라면 닷새 더 걸린다'는 말도 그래서 생긴 말일 겁니다.

 

오래 묵은 배고픔을 달래 주던 보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겼던지 보리 낟알 겉껍질에 붙은 수염이나 동강까지도 버리지 않고 물에 끓여 먹곤 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거지요. 곡식의 낟알도 아닌 이 '까끄라기'를 쓸모없다 여기지 않는 마음, 바로 그 마음 안에 세상 그 어떤 존재나 대상도 하찮게 여기지 않는 '존엄의 문화'가 있습니다. '보리까끄라기도 쓸데가 있다'는 옛말이 이처럼 크고 귀한 존엄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요즘 아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 중에 '잉여'라는 것이 있습니다. 또 사회적으로 한때 '루저loser'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지요. 아이들에게 '잉여'는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로 자리 잡았습니다. '루저' 역시 무엇에 진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 세상에 서열이 있다면 그 서열의 뒷자락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세상은 어느덧 사람의 존재 가치를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으로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쓸모'의 정도에 따라 사회적으로 다른 대우를 받기도 합니다.

누가 '쓸모'의 가치를 판단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잣대에 따라 다른 사람을 재단하고 자신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을 함부로 대하기도 하지요. 다른 사람이 나를 내치는 것도 문제지만, 내가 나를 내친다면 나를 인정하고 끌어안을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보리까끄라기도 쓸데가 있다'는 속담은 우리에게 잉여의 가치를 웅변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찰흙으로 작품을 만들던 때가 떠오릅니다. 가장 창의적인 작품은 교과서에 나온 어떤 작품을 흉내 내어 만들고 남은 나머지 찰흙으로 만든 것들이었습니다. '나머지'야말로 새로운 사고, 새로운 만듦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토대가 아닐까요?

 

울타리 안에 있을 때 보지 못하던 것들을 울타리를 벗어나 보기도 하고, 배부르던 때 알 수 없던 것들을 배고플 때 비로소 깨닫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시인'이라는 제목하에 '배고플 때 지던 짐 배부르니 못 지겠네'라고 노래하기도 했지요. 창조나 생산의 힘은 잉여로부터 나오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쓰고 남은 '나머지'의 존재가 되었을 때, 혹은 '쓸모없다'고 판정받은 나머지의 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리까끄라기도 쓸모가 있다고 여기는 마음 또한 가난과 궁핍의 토양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의 것들, '모자람'의 조건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부터 선인들은 모든 사물에 '쓸데'가 있고 모든 존재에 사람의 힘으로 가늠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작은 고추가 맵다'거나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거나 '개똥도 약에 쓴다'거나 '허수아비도 제 몫을 한다'는 말이 모두 그런 존엄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잉여의 생산적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옛말들은 이제 우리에게 세상 어떤 것도 하찮게 여길 수 없다는 진정한 겸손과 경외의 마음을 가르칩니다.


 

글_ 김영희
경기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구비 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비극적 구전 서사의 연행과 '여성의 죄'>, <한국 구전 서사 속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신경증 탐색>, <한국 구전 서사 속 '부친살해' 모티프의 역방향 변용 탐색> 등의 논문과 <구전 이야기의 현장>, <숲골마을의 구전 문화>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