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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흔적 ① 옛날의 밥 / 오늘의 밥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5. 1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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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밥 오늘의 밥 《신동아》197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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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맛있게 지은 밥을 먹기는 틀렸다. 구공탄 불에 우르르 끓여 스테인 밥그릇에 처덕처덕 퍼 담은 밥을 먹으면서 일말의 鄕愁향수를 느끼는 것은 밥맛이 어쩌고 맛있는 밥은 어떤 거고 따질 겨를이 없는 맛없고 멋없는 현대라는 것이다.
전기밥솥에 익힌 밥은 끓인 밥이 아니고 찐 밥이요, 개스 불로 끓인 밥은 끓인 건지 삶은 건지 알 수 없다. 찐 밥이나 삶은 밥, 구공탄 열기로 끓인 밥, 게다가 오염된, 소독내가 퐁풍 나는 수도물로 지은 밥이 「밥 같은 것」이지, 밥이 아니다. 맛있는 밥은 다섯 가지 요소가 갖추어져야 한다. 우선 쌀이 좋은 놈이어야 하고, 물이 좋아야 하며, 솥이 문제되는데 무쇠솥이라야만 한다. 다음이 솜씨다.
밥을 짓는다고 했다. 밥을 짓는 것은 기술이다. 반찬을 만드는 것도 기술이다. 기술이라기보다는 예술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에는 정성이 따라야 한다. 「밥을 짓는다」는 말은 밥을 기계적으로 끓인다는 뜻이 아니라. 묵은 쌀을 일정한 시간 물에 불렸다 씻어 안치고 햅쌀은 그냥 씻어 안치나 물받이가 다르기 때문에 물 붓는 요령도 필요하다. 쌀에 따라 물받기가 다르므로 쌀의 품종에 따라 가늠해야 한다. 쌀 씻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밥맛이 있느냐 없느냐의 하나는 쌀을 덜 씻어 안친다면 밥맛이 무겁고, 쌀을 너무 깨끗이 씻어 안치면 너무 맑고 맛의 뒤가 없다. 티 하나 돌 하나 잘 조리질하고지금은 필요 없다 잘 닦아 놓은 솥에 안치되 물 붓는 솜씨도 있어야 한다. 솥은 씻은 쌀을 편안히 안치고 마지막으로 물을 대중하면서 살핀다. 끝물을 부을 때는 뿌리듯 하고 손을 넣어 쌀을 고루 만진다. 이미 장작불은 탄다. 물의 대중은 장작불의 열량과 비례한다.
밥이 끓어 밥물이 흐른다. 밥이 익기도 전에 솥뚜껑을 열어 보면 안 된다. 불을 물리는 시간을 판단한다는 건 밥을 잘 짓느냐 못 짓느냐의 끝솜씨며 이 판단력은 오랜 경험에서 오는 육감 같은 것이다. 불을 냈다가 군불로 잦힌다. 밥을 푸는 자세도 빼놓을 수 없다. 다 된 밥의 솥뚜껑을 아무 데나 놓지 않는다. 마치 다 푼 솥을 정결하게 닦고 훔치듯 솥뚜껑 안에 먼지나 티가 묻을까 봐 주의를 하는 것이다. 마른 행주로 깨끗이 닦은 식구대로의 밥그릇을 순서대로 놓고 밥주걱나무주걱으로 밥을 푼다.
밥의 위를 한번 걷고 長幼장유의 순대로 푼다. 푹 눌러 푸지 않는다. 밥주발에 담을 때는 서리서리 담는다. 밥이 눌려 주발에 담아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밥은 놋주발이든 사기주발이든 가득 담지 않는다. 뚜껑에 눌린 밥은 보기에도 흉하고 먹기에도 뭣하다.

 
*표기는 원문의 것을 그대로 인용하되, 띄어쓰기는 일부 수정함.
 
박치원朴致遠1, 〈옛날의 밥 오늘의 밥〉, 《신동아》1974. 12.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현재나 미래를 비관하는 시선은 언제나 있었다. 글쓴이는 맛있는 밥을 먹지 못하게 된 세태를 개탄하고 있다. 구공탄 불, 가스 불, 전기밥솥이 일차적 원흉이고, 수돗물과 스테인리스 그릇, 밥 짓는 이의 솜씨 들도 문제로 지적된다. 밥은 끓이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밥을 짓는다’는 말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옷을 짓다’라거나 ‘집을 짓다’, ‘이름을 짓다’라는 식으로 쓰는 게 ‘짓다’라는 동사다. ‘글을 쓴다’ 대신 ‘글을 짓다’로도 쓸 수 있다. ‘밥을 한다’ 대신 ‘밥을 짓다’로 쓰는 것처럼. ‘짓다’를 넣은 문장은 정결해진다. 깨끗하고 질서 있는 법도가 풍긴다.
우리는 지금 ‘밥’이 아닌 ‘밥 같은 것’을 먹고 있는가. 장작불을 때어 가마솥에 밥을 지어 먹는 가구는 얼마 없을 것이다. 대신, 글쓴이가 개탄하는 전기밥솥이 그 일을 어느 정도는 해내고 있다. 점점 진화되고 있는 전기밥솥 중 어느 모델은 “**가 맛있는 맛을 완성했습니다.”라며 밥이 다 된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밥을 짓는 일은 ‘육감의 영역’이라 했다. 육감이 없는 사람은 노력해도 끝내 할 수가 없다는 무서운 말이다. 그러니 밥맛의 민주화를 얼마쯤 이루어 준 전기밥솥은 문명의 이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글쓴이의 이 말은 참 좋다. 밥은 서리서리 퍼야 한다는 말. 삶은 국수나 가는 명주실을 가지런히 놓듯, 눈이 조용히 땅에 닿듯, 밥은 그렇게 푸는 것이다.
 
 


1
박치원. 1927∼1990. 시인. 서울에서 태어나 국학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용산고등학교, 진명여자고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시집으로 〈하나의 행렬〉1955, 〈위치〉1957, 〈사월 이후〉1960, 〈공휴일〉1968, 〈꽃의 의지〉1975, 〈얼굴을 주제로 한 다섯 개의 시〉1985 등이 있고 소설집 〈여학생 지대〉1967가 있다. 현대 문명과 도시인의 일상을 서정적으로 노래하며 도시인의 감성이 담긴 주지적인 경향의 시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