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조선 여성 기질 《사해공론》1938. 8.
[전략] 그러나 이러한 기사를 『여성』지 3월 호에서 읽어 보고 이 즈음 여학생들의, 불과 한 달이 지나면 당당한 숙녀가 되는 결혼 적령기 처녀들의 가슴에 품고 있는 무지개가 얼마나 빈약하고, 또한 실리적인 것임에 일경一驚을 끽喫한 이는 결코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다른 조항은 다 말고 '취미'와 '직업'을 물은 곳만 생각해 보아도 이들이 생각하는 바가 어떠한 정도의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의 취미를 물은 곳에서 이들 89명의 처녀들은 제1로 문학을 들었다. 그 수가 35명, 그 다음 33명은 스포츠, 제3위로 음악이 28명이다. 이 이외에도 또 여럿이 있으나 그중 주의할 것은 대부분이 '문학과 음악' '문학과 스포츠' '스포츠와 음악' – 이렇게 두 개씩을 겸하였다고 하는 동지 기자의 주가 붙은 곳이다. [중략]
그런데 한편 눈을 돌려 남편의 직업은? 하고 물어 보았을 때 그곳에 나타난 숫자는 단연 실업가가 제1위로 33인, 전체의 3분지 1이 훨씬 넘는다. 교원이 17인, 월급 생활자가 14인, 의사가 9인, 변호사가 5인 등등이다. 이상 5위까지의 직업을 보면 모두가 현세에 있어 가장 튼튼한 직업뿐이다. 그들은 무엇보다 생활의 안정을 구하는 것이다. 이 통계로 보면 신여성이 결혼을 일종의 취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극언하여도 대답할 길이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자산을 물은 곳을 이곳에다 함께 놓고 보면 직업은 상당하더라도 기본 자산으로 1~2만 원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 24명, 중류중간 정도의 소득 수준이면 된다는 뜻라고 한 것이 15명, 5만 원이 7명, 10만 원이 6명이다.
이상 직업으로 실업가를 희망한 처녀 중에서 취미로서 문학이나 음악을 들은 이는 적지 아니할 것이다. 과연 지금과 같은 상태로써 실업가라고 지칭되는 분들 중에 문학을 독서하고 음악을 즐길 자가 얼마나 될는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그러므로 이들, 이노센트한 처녀들의 희망대로 그들의 눈앞에 대실업가가 나타났다고 하여도, 그가 또한 음악이나 문학을 취미로 하는 자일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이런 상대자실업가가 하나의 고상한 취미도 갖지 않았고이와 대조적인 부류, 즉 타방 불안한 생활이기는 하나 높은 취미는 가지고 있다는 자(者)의 들즉, 이상의 두 부류‘들’을 놓고 어느 것을 취하겠는가고 물을 때에 이 귀여운 처녀들이 무엇에다 점을 칠지는 명확한 일이 아니냐? 그들은 서슴지 않고 돈 잘 버는 실업가요 – 했을 것이다.
*푸른 문구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용자가 보충한 것입니다.
김남천金南天1, <당대 조선 여성 기질>, 《사해공론》1938. 8.
'일등 남편감'에 대한 설문 조사의 역사는 꽤나 유구한 것 같다. 이 글을 쓴 김남천은 평론가이자 소설가로 당대의 윤리 의식에 유난히 민감했던 사람이다. 그는 여성 잡지에 실린 이상적인 남편상에 대한 설문 조사를 보고 어느 정도는 비웃으려는 의도로 이 글을 썼을 것이다. "결혼을 일종의 취직으로 생각하고 있다."라는 말이 신랄하다. 1930년대만 해도 고등 교육을 받은 인구는 극소수였고, 그중에서도 여자에게는 기회가 더욱 제한돼 있었다. 글쓴이는 그런 교육받은 '신여성'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남편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지는 것은 안정적인 직업과 경제력일 것이다. 1938년 경성의 신여성들에게는 실업가가 압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리고 솔직하게도 남편의 희망 재산에 대해서도 묻고 답한다.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 가늠하고 싶다면, 직접 따져 보시기 바란다. 당시의 월급 수준은 인력거꾼이 15원, 신문 기자가 50원, 변호사가 200원 정도였다. 재미있는 것은, '남편의 취미'를 묻고 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문학이 1위다. 식민지 조선에서 문학의 위상은 그러했다.
아무에게나 '대실업가'가 나타나 주지도 않겠지만, 나타난다고 해도 모두 연애나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남자에게도 그만의 이상적인 배우자상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남자의 경제력이 아무리 중요한 조건이라 해도 단지 그 이유만으로 결혼을 결심하는 여자가 얼마나 되겠나. 이탈리아 시인 체사레 파베세Cesare Pavese는 이에 대해서도 이렇게 신랄한 반박을 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돈 때문에 결혼하는 여자는 없다. 여자들은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전에 그와 사랑에 빠질 만큼 충분히 영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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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천. 1911~1953. 소설가, 문학평론가. 평남 성천에서 태어나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도쿄 호세이 대학 재학 중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KAPF에 가입하였다. 대표작으로 장편 <대하大河> 1939, 중편 <맥麥>1941, <경영經營>1940 등이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논쟁에 대해 러시아와는 다른 한국의 특수 상황에 대한 고찰을 꾀한 '리얼리즘론'을 전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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