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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편지 이스라엘편 - 이스라엘에 내리는 겨울비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5. 1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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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을 배경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사막과 365일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중동을 떠올리면 흔히 연상되는 이미지 중 하나다. 중동 끝자락에 자리 잡은 이스라엘에서도 그러한 풍경을 종종 볼 수 있다. 국토 면적은 대한민국의 4분의 1 정도 되는데 그중 남쪽 절반은 네게브 사막이고, 5월부터 10월까지는 그야말로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뜨거운 날들이 계속된다. 한여름 대낮에 사해死海나 광야 지역에서는 40도에 육박하는 강렬한 열기를 느낄 수 있는가 하면, 해안가에 자리한 주요 도시들에서는 뜨겁고 습기가 많은 지중해성 기후를 경험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우기, 겨울
 

한편 이스라엘의 겨울은 다른 계절과 사뭇 다르다. 물론 겨울이라고 해도 우리나라처럼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는 없지만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크고 쌀쌀한 편이다. 늦봄과 여름, 초가을이 건기에 해당한다면, 이스라엘의 우기는 겨울이다. 이 시기에 내리는 비가 한 해 강수량의 약 70%를 차지할 정도이다. 이스라엘의 수원水源이라 할 수 있는 갈릴리 호수에 물이 넉넉하게 차오르는 시기도 바로 겨울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겨울에 내리는 비를 가리켜 '축복의 비Geshem Beracha'라고 부른다. 이처럼 특별한 지형적 특성 때문인지 유대 문헌에도 비와 축복을 연결 짓는 구절들이 종종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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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내가 세운 규례를 따르고 내가 명한 계명을 그대로 받들어 지키면, 나는 철 따라 너희에게 비를 내리겠다. 땅은 소출을 내고, 들의 나무들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구약성서 레위기 26:3
당신들이 들어가서 차지할 땅은 당신들이 나온 이집트 땅과는 다릅니다. 이집트에서는 채소밭에 물을 줄 때처럼, 씨를 뿌린 뒤에 발로 물을 댔지만, 당신들이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는 산과 골짜기가 많아서, 하늘에서 내린 빗물로 밭에 물을 댑니다.구약성서 신명기 11:10~11

 

또한 탈무드에 따르면, 세 가지 종류의 축복의 열쇠를 신이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비의 축복이다.

 

……랍비 유다가 말하길 ‘우리를 위하여 내려 주시는 빗방울마다 감사 드립니다.’ 따라서 랍비 요하난이 결론 짓기를 ‘만일 우리 입이 바다와 같이 노래들로 가득 찼다면 당신에게 충분히 감사 드리지 못했을 겁니다.탈무드 브라호트 59b 일부

 

한편 비는 한 해 농사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그런 까닭에 2차 성전 시대에 이스라엘에서는 유대력으로 새해가 시작된 후 맞이하는 명절인 초막절Sukkoth, 태양력으로는 매년 그 날짜가 다르며 대략 9월 중순에서 10월 말 사이임 기간에 그해에 필요한 비를 기원하는 의식Nisuch ha-Mayim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곳의 겨울비는 축복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서 비는 모두 축복으로만 여겨질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초막절에 그해에 내릴 풍성한 비를 위해 기원하지만, 정작 초막절 기간에 큰비가 쏟아지면 낭패다. 이유인즉, 유대인들은 초막절 기간에 집 밖이나 베란다에 직접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먹고 마시며 조상들이 겪었던 광야 생활을 기념하는 풍습이 있는데, 그때 폭우가 쏟아지면 더 이상 초막에 머무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초막절에 내리는 비는 '저주의 비Geshem Kelalah'라고 불린다. 그래서 오늘날 유대교에서는 초막절 첫날에는 이슬을 내려 달라는 기도를 하고, 비를 기원하는 기도는 초막절 기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다.

 

비와 축복을 동일시하는 문화적 배경 때문인지 다소 쌀쌀한 겨울에 비가 내린다 해도 사람들이 불편해하거나 싫어하는 기색은 거의 없다.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면 우산 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옷이 흠뻑 젖게 되지만, 비는 축복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
눈과 비를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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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곳에서도 겨울에 눈 내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북쪽 골란Golan 고원에 있는 헤르몬 산Mt. Hermon은 매년 겨울 눈으로 뒤덮여 있다. 또한 이곳에서는 눈이 조금이라도 쌓이면 대중교통 운행이 통제되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휴교령을 내린다. 그래서 눈이 어느 정도 쌓였다 하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눈밭에서 뛰어노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겨울비와 눈. 누구나 흔히 생각하는 중동의 이미지와는 다소 동떨어질지도 모르지만 물이 부족한 이 땅에서 겨울에 내리는 비와 눈은 축복의 상징이다.


 
 

글_장기은
고려대학교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월간 가이드포스트Guideposts에서 번역 및 취재 기자로 활동하였다. 현재 이스라엘 예루살렘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대학원에서 성서학 및 고대 근동학을 수학하고 있으며, 비교 셈어학Semitics에도 관심을 갖고 공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