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내가 훔치고 싶은 ♠ 시

어머니 / 양명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7. 1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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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양명문

 


어머니,
마음 푸욱 놓으시고
어서 여기 앉아 계셔요.


봄이면 살구꽃 곱게 피고,
가을이면 대추 다닥다닥 열리는 집 들,
네모났던 섬돌이 귀가 갈리어
두루뭉실하게 된, 진짜
우리 집이올시다.


어머니,
아무런 일이 일어나도,
가령 땅 위에다
꿇는 피로 꽃무늬를 놓더라도,
여기를 떠나지 마시고
앉아 계셔요.


여기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적부터,
돌도끼로 나무 찍던 그 옛날부터 살아 온,
하늘 맑고 물 맑은 동네.


여기는
아들의 아들 아들 아들,
아들의 아들 아들 아들,
또 그 아들의 아들 아들 아들들이
살아야 할, 잘 살아야 할, 진짜
아들의 땅이니까요.


어머니,
여기 앉으셔요.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