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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時間) - 미란타왕문경을 읽으면서
고창수
참말로 사람은 시간을 깨닫지 못한다.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시간은 사람에게 들리거나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 시간이
이명처럼 귀청을 울려주거나
낯익은 사람처럼
어깨에 손을 얹어주기를 바란다.
시간은 고통처럼
기척도 없이 사람 주위를 서성거리다가
사람의 얼굴에, 살과 뼈에
엄청난 상처를 내기도 한다.
사람의 살과 뼈에서
고통을 떼어낼 수 없듯,
시간을 떼어낼 수 없다.
사람은 찰나의 프리즘으로
영겁을 보기를 바라나
찰나와 영겁의 불연속을 견디지 못한다.
찰나와 찰나 사이의 틈은
사람의 집착으로 빈틈없이 메우지만,
어린 노루 한 마리 천적에 쫓겨
하늘로 뛰어오를 때
찰나는 영겁만큼
넓고 깊은 입을 벌린다.
그러나, 사람은
삶과 죽음이 서로를 비쳐주듯
찰나와 영겁이 서로를 비쳐주고,
찰나가 영겁 속에서 빛나듯
영겁이 찰나 속에서 빛나기를 바란다.
―월간『유심』(201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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