멱라의 길 1
이기철
걸어가면 지상의 어디에 멱라가 흐르고 있을 것인데
나는 갈 수 없네. 산 첩첩 물 중중
사람이 수자리 보고 짐승의 눈빛 번개쳐
갈 수 없네
구강 장강 물 구비치나 아직 언덕 무너뜨리지 않고
낙타를 탄 상인들은 욕망만큼 수심도 깊어
이 물가에 사금파리 같은 꿈을 묻었다
어디서 이소(離騷) 한 가닥 바람에 불려오면
내 지상에서 얻은 病 모두 쓸어 저 강물에 띄우겠네
발목이 시도록 걸어가는 나날은
차라리 삶의 보석을 갈무리한다고
상강으로 드는 물들이 뒤를 돌아보며 주절대지만
문득 신발에 묻은 흙을 보며 멱라의 길이 꿈 밖에 있음을 깨닫고
혼자 피었다 지는 꽃 한 송이에 눈 닿는 것도
이승의 인연이라 생각한다
일생이 아름다워서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
일생이 노역과 상처 아문 자리로 얼룩져 있어도
상처를 길들이는 마음 고와서 아름다운 사람은 있다
때로 삶은 우리의 걸음을 비뚤어지게 하고
독 묻은 역설을 아름답게 하지만
멱라 흐르는 물빛이 죽음마저도 되돌려주지는 못한다
아무도 걸어온 제 발자국 헤아린 자 없어도
발자국 뒤에 남은 혈흔 쌓여
한 해가 되고 일생이 된다
*멱라 중국 호남성에 있는 강 이름. 중국 서정시의 효시인「초사(楚辭)」를 시작한 전국시대 초나라의 굴원이 주위의 참소로 분함을 못 이겨 빠져 죽은 강으로 유명함. 여기서는 내 정신의 강으로 비유됨.
**이소(離騷) 시름을 만난다는 뜻으로 굴원이 멱라에 빠져 죽을 결심을 하기까지의 시름을 적은 장시.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문학과지성사. 1993)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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