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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나비 / 김기림 - 나비의 여행 / 정한모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8. 2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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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모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어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바다와 나비』.선문화연구소. 1946)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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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여행


정한모

 

 

아가는 밤마다 길을 떠난다
하늘하늘 밤의 어둠을 흔들면서
수면의 강을 건너
빛 뿌리는 기억의 들판을
출렁이는 내일의 바다를 나르다가
깜깜한 절벽
헤어날 수 없는 미로에 부딪치곤
까무라쳐 돌아온다.


한 장 검은 표지(表紙)를 열고 들어서면
아비규환하는 화약 냄새 소용돌이
전쟁은 언제나 거기서 그냥 타고
연자색 안개의 베일 속
파란 공포의 강물은 발길을 끊어 버리고
사랑은 날아가는 파랑새
해후는 언제나 엇갈리는 초조
그리움은 꿈에서도 잡히지 않는다.


꿈길에서 지금 막 돌아와
꿈의 이슬에 촉촉이 젖은 나래를
내 팔 안에서 기진맥진 접는
아가야
오늘은 어느 사나운 골짜기에서
공포의 독수리를 만나
소스라쳐 돌아왔느냐.

 

 

 

(『아가의 방』. 문원사. 1970 : 『정한모 시전집』. 포엠토피아 2001)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