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
유홍준
내 친구 재운이 마누라 정문순 씨가 낀 여성문화 동인 살류쥬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강정구 교수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어이쿠, 했다 나도 앉아서 오줌 눈지 벌써 몇 년, 제발 변기 밖으로 소변 좀 떨구지 말아요 아내의 지청구에, 제기럴 앉아서 오줌 싸는 거 습관이 된 지 벌써 수삼 년, 날마다 변기에 걸터앉아서 나는 진화론을 곱씹는다. 이게 퇴화인가 진화인가 퇴행인가 진행인가 언젠가 여자들이 더 많은 모임에 가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박서영은 배를 잡고 웃고 강현덕은 그것이야말로 진화라고 웃지도 않고 천연덕스럽게 되받았다 역시 여자는 새침데기들이 더 무섭다 그건 그렇고 강정구 교수 전화번호라도 알아내어서 수다 좀 떨까 난 앉아서 오줌 싸니까 방귀가 잘 뀌어지던데, 낄낄낄 캑캑캑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끼리
ㅡ시집『喪家에 모인 구두들』(실천문학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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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
황정산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도 내가 앉아 오줌 누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래야 환경과 여성을 모두 생각할 수 있는
완전 소중한 남자가 된단다.
유홍준이라는 잘나가는 이름을 가진 어떤 시인이
진보적이고 문제적인 강정구 교수를 언급하며
자신들의 앉아 쏴!에 사회적 미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그래도 난 못한다.
내 핏속에 들어있는 단 한 방울의 기억 때문에라도
할 수가 없다.
내 고조할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의 또 그 고조할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는
어디 풀숲에 서서 오줌을 갈기다
얼핏 풍겨오는 여인네의 비릿한 냄새에
제대로 털지도 못하고 쫓아갔을 것이고
돌칼을 든, 그 고조할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는
짐승과 열매를 찾아 들판을 달리다
당당히 오줌을 지려 표식을 남겼을 것이다.
오줌은 유랑의 기록이고 수컷의 운명이다.
라면 봉지에 떨어지는 오줌발 소리에
부르르 몸 떨며 즐거워하고
사람 없는 평일이면 산에 올라
봉우리마다 오줌 방울을 날리기도 한다.
사랑하는 나의 여자여,
그대의 생활에 포섭되지 못하는
조금의 나를 남겨주면 안되겠니?
―계간『문학과 의식』(201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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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오줌 누고 싶다
이규리
여섯 살 때 내 남자친구, 소꿉놀이 하다가
쭈르르 달려가 함석판 위로
기세 좋게 갈기던 오줌발에서
예쁜 타악기 소리가 났다
셈여림이 있고 박자가 있고 늘임표까지 있던,
그 소리가 좋아, 그 소릴 내고 싶어
그 아이 것 빤히 들여다보며 흉내 냈지만
어떤 방법, 어떤 자세로도 불가능했던 나의
서서 오줌 누기는
목내의를 다섯 번 적시고 난 뒤
축축하고 허망하게 끝났다
도구나 장애를 한번 거쳐야 가능한
앉아서 오줌 누기는 몸에 난 길이
서로 다른 때문이라 해도
젖은 사타구니처럼 녹녹한 열등 스며있었을까
그 아득한 날의 타악기 소리는 지금도 간혹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로 듣지만
비는 오줌보다 따습지 않다
서서 오줌 누는 사람들 뒷모습 구부정하고 텅 비어있지만,
서서 오줌 누고 싶다
선득한 한 방울까지 탈탈 털고 싶다
ㅡ시집『뒷모습』(랜덤하우스, 2006)
ㅡ계간『작가세계』(200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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