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러진 길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시집『부엌의 불빛』(시학,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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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길
이만섭
비켜가는 길이 있다 괜찮다는 듯이,
올곧게 자라는 들메나무에 자리 하나 내주고
그 곁을 흐르는 도랑물을 위해 몸을 안쪽으로 밀어 넣으며
길 밖의 것들 거느리고 간다
가다 보면 까맣게 잊고 지내는 풍경들
민낯을 드러내며 만나서 반갑다고
길이 아니면 세상천지 이처럼 조우할 수 있겠느냐며
지도에 없는 안부를 전해준다
산경에 들면 어느 비탈은
발길을 경배처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데
무지개 등을 밟듯 걷노라면
구절양장을 걸어온 삶은 어느덧 사라지고
저만치 발아래 옹기종기 모인 풍경을
지나온 길이 다독거리고 있다
담장이 비켜선 골목인들 다를까,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그늘을 밟고 가다가
전봇대 근처에서 햇빛에 얼굴 내보이고
다시 몸 구부려 가는 길
비켜가고 비켜가서 손 내밀어 악수한다
세상의 방식을 익혀 사는 게
길인 것을 안다
―월간『유심』(201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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